“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이 있다. 일이 잘 풀릴 때면 내가 잘해서 그런 것 같다가 일이 꼬이면 누군가 남의 탓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 심리를 꼬집는 말이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잘 되면 조상 탓, 못 되면 제 탓”이란 말도 있다. 남이 잘 되면 그건 조상을 잘 둔 덕이고 못 되면 그 자신이 모자라서 그렇다는 ‘해석’이다. 남 잘 되는 걸 좋게 봐줄 수 없는 심리,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과 비슷한 심리이다.
숭례문(남대문)이 우리 가슴에서 무너져 내린 지 1주일이 되었다. 백두산이나 한라산처럼 영원히 거기 있을 것으로 여겼던 600년 ‘나라의 상징’이 불덩이로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보면서 우리도 가슴 한가운데가 같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뒤이어 드러난 한 노인의 방화 동기는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했다. 전쟁도 아니고, 테러도 아니며, 자연재해도 아니라 한 개인의 ‘네 탓’ 심리에 남대문이 참혹하게 희생된 것이었다.
방화를 자백한 그 노인의 지난 10년은 분노로 낭비된 세월이었다. 20여년 살던 곳이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면서 토지 보상금을 받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남들은 다 받고 끝냈을 보상금에 그는 끝내 만족하지 못하고 소송과 민원제기를 거듭하느라 생업도 뒤로 하고 부인과도 이혼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 “그들 탓에 내 인생이 망쳐졌다”는 피해의식은 날로 깊어지고 ‘네 탓’의 눈먼 불길 속에 남대문이 무너지고 우리 모두의 가슴이 무너지고, 그는 역사의 죄인이 되었다.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반응은 두 가지이다.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음부터는 앞을 잘 보고 다녀야지”하고 반성을 하는 반응 혹은 돌부리 탓이라며 돌부리를 발로 걷어차는 반응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대부분은 종종 돌부리를 발로 차는 어리석음에 빠져들곤 한다. 책임추궁의 화살을 자신에게로 돌리자니 너무 아파서 외부로 돌리는 심리이다. 그래서 내가 승진을 하면 실력이 뛰어난 결과이고, 승진에서 밀리면 불공정한 상사 탓, 내 비즈니스가 잘 되면 내 경영능력이 좋은 덕분이고, 안되면 직원들이 무능한 탓이 되는 것이다.
병적으로 매사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심리는 두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자기도취형과 반사회적 인격장애 형이다. 남대문 방화범은 후자일 가능성이 높은 반면 주로 똑똑한 사람들 중에서 자기애가 너무 강해 일이 잘못될 때 그것이 ‘내 탓’이라는 생각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
힐러리 클린턴 선거진영이 ‘네 탓’ 심리의 악수를 계속 두고 있다. 2008년 새해는 힐러리로 볼 때 잔인한 시작이다. 대선이라는 무대 위에 우아하게 올라서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상황이 엉뚱하게 전개되고 있다. 예상 못한 오바마 돌풍에 당황한 클린턴 진영이 ‘네 탓’ 대응으로 허둥대는 형국이다.
우선 1월초 뉴햄프셔 예비선거 직전. 힐러리는 민권운동의 공헌을 마틴 루터 킹 목사보다 린든 존슨 대통령에 돌리는 듯한 말을 해서 한동안 시끄러웠다. 오바마에게 킹목사 이미지가 결부되는 것을 의식한 발언임은 물론이다. 그 결과 흑인 커뮤니티의 감정이 상한 것은 물론 존슨을 존 F. 케네디보다 높이 평가한 듯한 발언이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등을 돌리게 하고 말았다.
이어 1월말 사우스캐롤라이나. 오바마가 압승을 거두자 이번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말실수를 했다. “제시 잭슨도 이곳에서는 이겼다”며 흑인 밀집 주에서 흑인후보가 이긴 게 뭐 대단하냐는 투였다. 흑인표가 ‘흑인 대통령’ 클린턴으로부터 결정적으로 멀어진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는 지난 10일 힐러리는 캠페인 총괄 매니저를 전격 교체했다. 지지부진한 선거결과, 바닥 드러내는 선거자금의 책임을 매니저에게 돌렸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물러난 매니저가 히스패닉이고 새 매니저는 흑인이라는 점. 떨어져 나가는 흑인표를 의식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히스패닉 커뮤니티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
‘네 탓’의 화살은 특징이 있다. 첫째, 쏘기가 쉽다는 것, 둘째, 종종 부메랑으로 돌아와 자신에게 꽂힌다는 것이다. 돌부리를 걷어차면 그 순간 분은 풀리지만 다음 순간 찾아든 고통이 오래도록 남는다. ‘네 탓’ 화살의 부메랑이 얼마나 엄청난 비극을 몰고 올 수 있는 지를 숯덩이 남대문이 가르쳐 주고 있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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