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들은 빠르다. 그리고 급하다. 한국사람과 접촉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말은 ‘빨리빨리’이다. 이곳에서 한인들과 일하는 타민족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기질이 본래적인 것인지 아니면 근대 이후 사회적 환경에 의해 형성된 것인지 쉽게 결론 내기는 힘들지만 고도성장을 특징으로 한 개발시대 이후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얼마나 빠른 걸 좋아 하는지 곳곳에서 ‘속성’이 판친다. 채소와 과일도 속성 재배요, 과외도 속성 과외가 인기다. 배움과 농사야말로 다른 무엇보다도 시간과 인내를 요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걸 기다릴만한 참을성이 없다. ‘효율 만능주의’ ‘결과 지상주의’의 표출이다.
한국의 인터넷 산업이 세계 최고수준에 이른 데는 이 같은 한국인들의 조급증이 원동력이 됐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했던가. 느린 것을 못 참다 보니 불만을 해소시켜 줄 새롭고 빠른 기술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한 것은 조급증을 채워 주는 새 기술이 등장할수록 이런 기질은 더 심화된다는 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원한다. 메신저로 대화할 때, 문자 메시지를 보냈을 때, 또 인터넷으로 필요한 내용을 검색할 때 시간 걸리는 걸 참지 못한다. 사회학자들은 네티즌들의 이런 특징을 ‘퀵백’이라고 부른다. 빨리빨리 피드백을 받지 못하면 불안해하는 심리를 뜻한다. 젊은층에 이런 기질이 더 두드러지고 있을 뿐이지 ‘퀵백’을 한국인들의 일반적 기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런 조급증 기질을 지닌 국민에게 이명박 정권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 당선인 자신이 다른 사람은 따라가기 힘든 속도감과 추진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런 요소가 국민들에게 절대적으로 어필해 그는 도덕적 논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지지를 받으며 가볍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힘이라는 게 묘해서 일단 그것을 손에 쥐게 되면 빨리 무언가 하고 싶은 욕구가 고개를 든다. 국가 권력은 물론이고 쥐꼬리 만한 힘도 마찬가지다. ‘개혁’이란 이름으로 기존 제도와 조직에 손을 대고 전임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 하게 된다. 몸이 근질거리는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개혁에의 가려움증’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국민들의 높은 기대 속에 탄생한 차기 정부는 정식 출범도 하기 전에 굵직굵직한 정책들을 쏟아내 왔다. 영어 공용어화에 준하는 혁신적 교육정책에서부터 한반도 운하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이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쾌도난마식의 정책 결정에 처음에는 “시원하다”는 목소리가 주류였다. 그런데 점차 불안해 하는 표정들이 늘고 있다.
정치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이다. 여기에는 인내와 타협의 기술이 요구된다. 한 기업이 사업방침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런데도 차기 정권은 벌써부터 이런 과정과 절차를 귀찮아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실용주의’라는 이름아래 벌어지고 있는 ‘속도전’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역대 다른 정권들도 과잉에 가까운 의욕을 보이며 출범의 돛을 올렸다. 그런데 초기에 80~90%에 가깝던 지지율이 정권을 접을 때 즈음이면 반 토막 혹은 3분의1 토막 나 있곤 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국가경영이 의욕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정책은 밥을 짓는 일과 똑같다. 뜸도 제대로 들이지 않은 설익은 정책은 국민들을 탈나게 만든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검토와 토론을 거쳐 내놓은 정책이라야 국가를 건강하게 만든다. 요즘 이 당선인을 적극 밀었던 보수언론들조차 ‘말의 정치’보다 ‘귀의 정치’를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귀의 정치’란 바로 뜸을 제대로 들이는 일이다.
의학계에서는 조급증이 두드러진 사람들을 A 타입, 느긋한 사람들을 B 타입 성격으로 분류한다. 마감을 설정하고 몰아붙이는 것과 인정받고픈 욕구가 강한 것이 A 타입의 특징이다. 이런 성격이 B 타입보다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몇 배나 높다는 것은 이제 정설이 됐다.
국가경영의 주체도 마찬가지다. A 타입 정권은 자칫 국가 건강에 심장병을 초래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지금 거론되고 있는 정책들은 ‘백년대계’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것들이다. 임기 내에 실과를 따려는 조급증을 보였다가는 전임 정권과 같은 길을 갈 가능성이 높다. 조정과 타협의 기나 긴 과정을 마다 않는, 씨를 뿌리는 느긋함이 있어야 한다.
이명박 정권 출범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오렌지’를 ‘오륀지’로 발음해야 맞다고 해 모처럼 웃을 일을 만들어 준 이경숙 정권 인수위원장과 그녀를 이끌고 밀어주는 이명박 당선인에게 충심 어린 고언을 하나 전하고 싶다. 개인의 삶도 그렇지만 국가경영 또한 ‘스피~드’(speed)보다는 ‘뒤렉션’(direction)이 더 중요하다는.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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