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사촌에게서 전화가 왔다. “몇 년 만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안부 말이 끝나자마자 푸념이 쏟아진다. 조카인 현이가 재작년 여름에 MBA가 끝나고 미국의 최신 경영지식을 익히기 위해 좀 더 있다가 들어가겠다고 해서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결혼도 해야 할 나이이고 장남인데 미국에 더 있겠다고 고집을 부리니 고민이라고 한다.
조카가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경험을 쌓고 있으며 지금은 신자유주의 글로벌 시대로 세계가 하나의 단위로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시대이니 이곳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좋겠다고 했더니 사촌은 나의 의견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모양이다.
젊은 시절 장래를 위해서 올인하는 것도 보람이 있을 것이다. 이제 곧 무비자로 미국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도 자유왕래가 시행되는 21세기인데 이민 1세대가 느꼈던 귀속감의 상실이나 고향을 떠난 외로움을 느낄 이유도 많이 사라졌다.
21세기는 어느 특정 국가인 이기보다 세계인이라고 지칭하게 될 것 같다. 먼저 세계인이고 다음 한국인이라는 의식이 드는 일일 생활권에서 살고 있다. 만인 대 만인의 경쟁사회에서 꿈을 이루려는 욕망의 실현은 쉽지 않을 것이다.
희망의 근원인 욕망 없이 이루어진 일이 있을까?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이성보다는 힘의 욕망 위에 세워졌다고 생각한다. 멀리는 트로이 전쟁이나, 중세 암흑시대의 교권과 왕권의 싸움, 20세기에 들어와서 1, 2차 세계대전 또 최근 계속되고 있는 중동에서의 전쟁 등 끝없이 계속되는 힘의 욕망을 위한 전쟁으로 인류의 역사는 바로 전쟁의 기록이다. 1년 중 지구상에서 전쟁이 없는 날이 일주일도 안 된다고 한다.
최근의 많은 학자들도 21세기는 보편적인 이성의 시효는 이제 만료되었다고 주장한다. 또 생의 서양 철학자들은 우리 삶에서 욕망이 그 활동을 멈추어버린다면 시체 이외에 무엇이 되겠는가 하며 생은 이성의 도덕보다는 의지 내지 욕망이 더욱 생의 내용을 좌우하는 근원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꿈을 이루려는 욕망이라는 마음은 양날을 가졌다. 사실 욕망의 성취를 위한 끝없는 노력으로 다른 한편으로 세계는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 꿈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는 간단한 방정식이다.
인간의 욕망은 그칠 줄 모르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역사적으로 개인이나 국가에 많은 재앙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욕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하고 동양철학에서도 ‘욕망은 불타는 번뇌의 씨앗’이라고 경고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생에 거뭇한 기미가 끼기 전에, 후회의 뻘밭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기 전에,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깨닫고 우리가 소유하는 모든 것도 일시적일 것이니 진정한 자아를 찾아서 욕망을 절제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특히 이민 온 우리들은 초지의 꿈을 실현하려는 욕망 때문에 진정한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 않았나 진지하게 돌이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요즈음 계속 비바람이 불고 있다. 가뭄 뒤에 계속된 장마로 홍수가 진 곳도 있고 교통이 마비된 곳도 여러 곳이다. 덕분에 나무들은 비에 흠뻑 젖어 생기가 돌고 가뭄도 해갈되었다. 아침빛이 쏟아지는 담 옆에 모여 있는 심비디움이 푸른 줄기를 허공으로 힘 있게 뻗고 있다.
인간이 생활환경과 꿈을 이루려는 욕망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듯이, 식물도 토양과 물과 온도와 영양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란 것을 본다. 뿌리가 비좁게 웅크려 있는 작은 화분이 난의 우주이고 삶의 현장이며 실존의 세계이다. 또한 자기보존을 위한 욕망의 산실이기도 하다. 화분의 욕망은 신비한 꽃의 언어, 바로 아름다움이다. 식물은 자연에 순응한다. 그들은 인간들처럼 치열하게 전쟁을 하면서 삶을 소비하지는 않는다.
조카가 젊은이답게 부단히 노력해서 그의 꿈을 이루기를 바란다. 오늘날 많은 전문인들은 자기 분야의 지식은 많으나 진리와 지혜는 적다고 한다. 성공하려는 욕망 때문에 삶의 아름다움을 외면하지 말고 정도를 가며 계획했던 대로 충만한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이다.
김인자
시인·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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