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현대 정치사를 들여다보면 국민들이 통상 20년을 주기로 변화를 위한 대통령을 선택을 해 왔음을 볼 수 있다. 1940년 대공황과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던 미국의 자존심을 다시 세워 준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대통령 3선을 시작으로 1960년 젊고 신선한 이미지를 앞세워 바람처럼 등장한 케네디, 그리고 1980년 이란 인질사태로 미국의 위상이 바닥이었던 때 현직 카터를 물리치고 백악관에 입성한 로널드 레이건의 등장은 미국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는 전기가 된 역사적 이벤트였다.
이런 흐름이 우연 같아 보여도 저변에는 상당한 필연성을 배태하고 있다. 국가적 분위기가 20년 정도 변함없이 지속되다 보면 국민들 사이에 상당한 피로감이 누적된다. 이런 피로감이 변화 욕구로 표출되는 것이다. 지금 미국사회는 경제침체와 장기화 되고 있는 전쟁으로 상당한 피로감에 쌓여 있다. ‘바꿔 보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런 진단과 현대사의 흐름에 비춰 볼 때 2008년 대선에 ‘변화’가 화두로 등장한 것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누가 변화의 주도자가 되느냐 하는 것이다. ‘수퍼 화요일’이었던 5일 캘리포니아 등 24개주에서 한꺼번에 예비선거를 치렀지만 오는 11월 본선에서 진검승부를 벌일 양당 후보의 윤곽은 아직도 확연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사실 지난해 대선 레이스에 돌입할 때만 해도 올 2월5일이면 양당 후보가 거의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후보 간의 균형이 깨지면 선두 후보에 지지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이른바 ‘밴드왜건’ 효과에 토대를 둔 전망이었다.
그런데 민주당의 경우 ‘오바마 돌풍’으로 ‘힐러리 대세론’이 주춤하고 두 후보 간에 팽팽한 균형이 이뤄지면서 조기 후보확정은 물 건너간 형국이다. 민주당 후보 확정에 필요한 대의원은 2,025명. ‘수퍼 화요일’에 걸렸던 민주당 대의원은 모두 1,681명이었다. 민주당 예비선거는 ‘승자독식’이 아니다. 후보 지지율에 따라 각주 배정 대의원을 비례 배분한다. 따라서 압도적 차이로 연승하지 않는 한 누적 대의원은 엇비슷하게 간다. 이럴 경우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들은 예비선거와 관계없이 전당대회에서 독자적으로 표를 던질 수 있는 796명의 ‘수퍼 대의원들’이다.
그러나 현재의 팽팽한 물리적인 판세보다 전망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의 예비선거에서 드러날 민심 향배의 예측 불능성이다. 유권자들의 기본 심리를 요약해 본다면 ‘견제’와 ‘약자 동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심리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된 클린턴은 예비선거에서 죽을 쑤면서 레이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중반으로 가면서 클린턴에 지지표가 몰리기 시작했다. 예비선거에서 이런 현상은 예외적이 아니다. 1976년 공화당 예선에서 현직이었던 제럴드 포드가 초반 연거푸 승리하자 막판 예선에서는 경쟁자였던 레이건에게 표가 몰렸다. 결국 전당대회에 가서야 포드로 결판이 났다. 당시 민주당 경선에서도 초반 지미 카터가 앞서자 경쟁자 제리 브라운에게 일시적으로 표 쏠림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앞서 나간다 싶으면 다른 쪽에 표를 던져 균형을 잡으려 하는 것이 유권자들의 심리이다. 이른바 ‘역 밴드왜건’ 효과이다. 현재 공화당에서 다른 후보들을 따돌리고 멀찌감치 앞서 가고 있는 매케인이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 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밴드왜건’과 ‘역 밴드왜건’ 사이를 그네처럼 왔다 갔다 하는 민심 때문이다. ‘수퍼 화요일’에서 일단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된 민주당의 ---- 역시 이런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인들에게 민심은 유리잔과 같다. 함부로 다루다간 자칫 깨져 버린다. 또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알기 힘들다. ‘수퍼 화요일’로 윤곽은 조금 더 뚜렷해졌지만 후보들로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조심해야 할 일 또한 많다.
후보들로서는 피 말리는 싸움이겠지만 관전자들 입장에서는 이번 대선처럼 흥미진진한 레이스는 다시 구경하기 힘들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현역 대통령이나 부통령이 후보로 나서지 않아 신선함이 있는데다 누가 대권 고지에 오르느냐에 따라 대단히 큰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출연진 좋고 컨텐츠 좋으니 흥행에 필요한 요소를 두루 지니고 있는 셈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야구는 8대7 스코어로 끝날 때가 가장 재미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번 대선은 8대7 스코어의 야구경기처럼 마지막까지 땀을 쥐게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스코어의 경기는 실책 하나로 종종 승부가 뒤바뀐다. 거의 다 이겼다고 자만하면서 평범한 내야 땅볼 걷어 올리듯 민심을 쉽게 여겼다가는 다리 사이로 알을 까는 망신을 당할 수 있다. 1992년 현직이었던 ‘백전노장’ 부시가 ‘구상유취’한 클린턴에게 일격을 당했던 것이 대표적 케이스이다. 민심이란 그렇게 무섭고도 심술 맞은 것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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