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3가 초등학교의 수지 오 교장이 최근 2주 동안 한국에 다녀왔다고 했다. 여러 학교에서 강연을 하며 많은 학부모들을 만났는데 그 과정에서 새삼 느껴지는 것이 있더라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급하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는 이제 ‘영어열풍’이 아니라 영어 ‘광증’ 수준이에요. 유아원 아이들까지 영어단어 외우게 만드느라 부모들이 안달이지요. 언어란 단어를 안다고 익혀지는 게 아니잖아요? 오랜 시간을 두고 그 사회의 문화와 역사를 고루 알아야 제대로 익힐 수 있는 건데, 부모들이 아이들을 너무 기계 다루듯 몰아가더군요”
마음 급하기는 이곳 한인사회도 다르지 않다. ‘단어 100개 외워라’ ‘책 10권 읽어라’ 식으로 닦달하는 걸 교육열로 아는 부모, 교사 된지 몇 년 되지도 않아 교장이 되고 싶어 조급증을 내는 젊은이들을 그는 주변에서 수시로 본다고 했다.
한인사회에 팽배한 ‘앞만 보고 달려라’ 생활방식이다. 좌우 살피느라 시간·정력 낭비하지 않는 야무진 생활태도, 많은 경우 성공의 지름길이지만,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열심히 일해 생활기반 잡고 자녀들 다 키워낸 중년층들 중에는 “왜 그렇게 달리기만 했을까?” 후회가 된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
시선을 오로지 ‘고지’에 맞추고 남들 한 계단 올라갈 때 두 계단씩 뛰어올라 가다 보니 어느 한 계단도 마음껏 즐겨보지를 못한 아쉬움이다. 한 상 가득 보란 듯이 음식을 차리기는 했지만 급하게 꿀꺽꿀꺽 삼키느라 한 가지 음식도 제대로 맛을 즐기지 못한 허탈함이다.
한 사나이가 주위도 둘러보지 않고 급하게 길을 가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본 현자가 그를 불러 세워놓고 물었다. “왜 그렇게 서두르는가?”
사나이가 대답했다. “삶을 쫓아가려고 그럽니다”
아침에 눈 뜬 순간부터 일, 일, 일 …에 매여 한순간도 자신을 돌아볼 틈 없이 동동거리며 하루를 보내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빗댄 이야기이다. ‘더 빨리, 더 많이’ 성취하려는 열심이 나중에는 족쇄가 되어 삶의 주체여야 할 우리가 삶의 노예로 전락해 버리는 현상이다.
스페인 속담 중에 “서두르는 자가 무덤에 먼저 간다”는 말이 있다. 비슷한 의미로 히말라야의 협괘 열차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다고 한다. “SLOW가 네 개의 철자로 되어있듯 LIFE가 그렇고, SPEED가 다섯 개의 철자로 되어있듯 DEATH가 그렇다”
너무 급하게 쟁취하려다 욕심에 발목이 잡혀 중도하차하는 케이스들은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서두를까? 남보다 앞서고 싶은 야심·욕심 혹은 혼자 뒤쳐질 것에 대한 두려움·걱정 때문이다. 앞날에 대한 걱정이 없다면 서두를 일도 없을 텐데, 걱정하느라 서두르고 서두르느라 걱정하면서 마땅히 누려야할 오늘의 행복과 즐거움을 까먹는다.
13세기 회교신비주의 시인의 말을 빌리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그래서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잘랄루딘 루미 ‘여인숙’중>
‘여인숙’의 한계는 손님을 선택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찾아오는 손님을 맞아들이는 게 ‘여인숙’의 숙명이다. 손님은 기쁨일 수도 있고 슬픔일 수도 있다. 기쁨의 손님이 오면 기쁨을 즐기고, 슬픔의 손님이 오면 가슴을 열고 슬픔을 맞아들이는 것이 인생의 지혜이다.
걱정이란 동구 밖에 나타난 불량배들이 모두 손님으로 쳐들어 올까봐 지레 마음을 졸이는 일. 그래서 정작 지금의 손님에게는 눈도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삶의 훼방꾼이다.
그런데 저 멀리에서 불량배가 10명쯤 모습을 보였다면 중간에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빠져나가고 정작 문 앞까지 오는 것은 한두명에 불과한 것이 걱정의 특징이라고 한다.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두고 우리가 쓸데없이 너무 많은 걱정을 한다는 말이다.
지나고 보면 인생은 짧다. 잠깐 산 것 같은데 어느새 50이고, 60이고, 70이다. 길지 않은 인생을 서두르느라 낭비하고 걱정하느라 허비한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걱정한다고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나지 않고, 서둘러서 빨리 갔다 싶으면 다른 장애물이 길을 막는 것이 인생이다.
조급해하는 젊은 학부모, 후배 교사들에게 수지 오 교장이 하는 충고가 있다 - “Don’t Hurry and Don’t Worry. Life is Short!” 새해 된지 한 달. 아직 특별히 각오한 게 없다면 이걸 올해의 새해결심으로 삼아도 좋겠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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