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착 달라붙는 진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몸매도 날씬한 것이 매력적이었다. 그녀가 들어서는 순간 마켓 안에 있던 남자손님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기저기에서 입이 벌어지고 손에 들려있던 물건들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27살이라고 했다. 그리고 성인용품 가게에서 일한다고 했다. 건네주는 광고물에는 페이지마다 온갖 성인 상품을 안내하는 야한 옷차림의 야한 자세의 여인들로 가득 했는데 그래도 눈길을 사로잡고 놓지 않는 것은 바로 눈앞에 서있는 그녀였다. 그녀는 광고 속 어느 여자들 보다 귀엽고 제 나이 훨씬 아래로 보였다.
그녀는 그렇게 마켓을 왔다. 길 건너 아파트의 이층으로 이사 왔다고 했다. 하룻밤 사이에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아파트뿐만 아니라 길거리, 마켓 그리고 온 동네 남자들 사이에 쫘악 퍼졌다.
그녀는 유별난 곳에서 일하는 여자답게 매일 톡-톡- 튀는 색다른 옷을 입고 왔고 그녀가 마켓을 들어설 때면 짙은 화장과 향수 냄새가 마켓 안을 휘어 감았다. 처음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자신의 야한 모습이 박힌 명함과 야한 마사지 로션 샘플을 들고 와 카운터 앞에 서서는 들어오는 남자 손님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는데 눈 하나 깜짝 않고 빨아들이듯이 쳐다보는 그 눈길에 대부분의 남자들이 당황하곤 했다.
내가 “눈이 참 예쁘고 매력적이다”라고 말해 주었더니 다들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그 말을 해주니 정말 자기 눈이 예쁜걸 알겠다고 하면서 웃었다.
때때로 바구니에 하나 가득 물건을 담아와 카운터 앞에 내려놓으며 올려다보는 그녀의 검은 눈 깊숙히 마주 칠 때면 눈이 저렇게 예쁜 아이가 왜 그런데서 일을 하지? 하고 혼자 속으로 생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혼자서 다섯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정부 생활 보조금이 조금 나온다고 했다. 남자가 너무 많아 남편도 없고 남자 친구도 없다고 하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학교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아 정말로 몰랐다가 나이 들어 안 것 중의 하나는 순간적으로 남자의 혼을 빨아내듯 빤히 쳐다보는 여자의 눈길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거였다.
그녀는 이따금 맥주를 사가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날이 갈수록 점점 그 양이 늘어갔다. 맥주뿐만이 아니라 이웃가게에서 1.75리터 위스키도 사들고 우리 마켓으로 다시 건너와서는 싸구려 맥주와 기름에 튀겨낸 돼지껍질과 닭다리를 한 봉지씩 사가곤 했다. 이따금 머리가 흐트러져서 마켓을 보러왔고 어떤 때는 밤인데도 검은 안경을 쓰고 길을 가로질러 왔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주말 어느 날 늦게 그녀가 왔길래 물건을 플라스틱 봉지에 넣어주며 물었다. “너 무슨 일 있니? 전에는 거의 술을 안 마셨는데?” 그녀가 문을 나서다가 말했다. “남자 친구가 생겼어.”
새로 생긴 남자친구가 술꾼에 폭력까지 휘두르는 놈이 분명했다. 작년에도 이런 경우를 보았었다. 그 때는 여자가 칼을 들고 있다가 때리는 녀석을 칼로 지르는 통에 경찰이 출동하는 난리법석을 떨었었다. 같은 아파트에서였다.
한 두 달이 지났을 무렵 오후에 갑자기 그녀가 자기네 가게에서 파는 성인용품을 한 박스 갖고 들어왔다. 미처 말리기도 전에 그녀는 박스의 상품들을 몽땅 카운터 앞에 쏟아놓더니 그것을 다 사주던지 아니면 팔아 달라고 했다. 실제로는 1,000달러도 넘는 것인데 한 박스 몽땅 100달러만 달라고 했다.
말은 아니라고 하지만 몰래 빼내 온 것이 분명했다. 말하는 그녀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풍겼고 그토록 예쁘고 매력적이던 눈은 누렇게 떠서 붉은 실핏줄이 여러 갈래로 여기저기 퍼져 있었다. 여기 이곳으로 온지 채 일 년도 안 되는 사이에 그녀는 딴 여자가 되어있었다. 물건을 싸들고 나가자 밖에 서있던 장발의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녀석이 물건을 받아 들고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녀석이 박스를 길 한가운데로 내동댕이치며 그녀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차들이 멈춰서고 운전자들이 뛰어 내렸다.
녀석이 길 반대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쓰러진 그녀를 마켓 앞 쪽으로 데려왔다.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앰뷸런스가 오는 동안 몰려든 사람들이 길에 흩어져 뒹구는 점잖은 성인용품들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이윤홍
시인·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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