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인 미국에 금메달 2개를 안겨준 올림픽 영웅이 자신이 살고 싶은 곳조차 마음대로 고르지못했다면 믿어지는가. 48년 런던과 52년 헬싱키 올림픽 남자 다이빙 10m 플랫폼에서 잇달아 금메달을 따 낸 한인 안과의사 새미 리는 올림픽 후 백인 일색인 오렌지카운티 지역에 집을 사면서 뼛속 깊숙이 차별을 경험해야 했다. 백인들이 아시안인 그에게 집 팔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올림픽 전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조국에 금메달을 선사한 영웅에게까지 아시안이란 이유로 차별을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것이 50여년 전의 미국이었다. 당시 새미 리가 당한 차별스토리는 동족상잔의 상흔에 시달리던 한국에까지 알려져 한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아시안 이민역사는 150년을 훌쩍 넘어서지만 동등한 시민으로 대접받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1924년 만들어진 해외출생 아시안들의 시민권 취득 금지법으로 사실상 아시아로부터의 이민 문호가 막힌다. 1938년 일부 중국인들에게 시민권이 허용되긴 하지만 해외출생 아시안들이 시민권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한참 후인 1952년 ‘워런 매캐런’ 법이 통과되면서였다.
이때까지 한인과 중국인, 일본인 등 미국 내 아시안들은 ‘3등 시민’ 취급을 당해야 했다. 이나마 아시안들에 대한 배려가 이뤄진 것은 2차 대전 유럽전선에서 전공을 많이 세운 일본계 미군들 덕이었다. 이들을 이끈 지휘관들 중에는 물론 한인 김영옥 대령이 있었다.
‘워런 매캐런’ 법으로 시민권 문호가 열리긴 했지만 10여년 동안은 국가별로 명목상의 쿼타가 배정되는 ‘시늉내기’에 머물렀다. 여전히 아시안들은 ‘2등 시민’이었다. UC버클리 일레인 김 교수의 회상을 들어 보면 당시 아시안들이 감내해야 했던 차별이 실감난다.
김 교수가 펜실베니아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것은 고용상 인종차별이 금지되기 한해 전인 지난 1963년. 영문학과를 스트레이트 A로 졸업한 김 교수를 기다리고 있던 일자리는 아시안이 운영하는 식당의 웨이트리스나 보험회사 타이피스트 정도가 고작이었다. 김 교수도 타이피스트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괜찮은 자리는 실력이 훨씬 떨어지는 백인 남성들 차지였다.
1960년대 민권법과 개정이민법이 통과되면서 아시안들은 법적으로는 백인들과 유사한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러나 법 규정과는 별도로 현실 속에서는 여전히 차별이 존재했다. 1980년대 이후 아시안들이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중국과 일본이 미국조차 무시할 수 없는 수퍼파워로 등장하면서 비로소 ‘버금 시민’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인 이민사가 지난 13일로 105년을 넘어섰다. 그러나 미국사회 속에서 한인들이 당당히 어깨를 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한인들을 강하게 키워준 것은 8할이 차별과 푸대접, 그리고 냉랭한 시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또한 고통과 설움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얼마 전 독일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한국정부에 건의문을 내놨다. 건의문의 내용은 한국 내에 거주하는 100만에 달하는 이주민들이 한국사회의 구성원임을 인정하고 이들에게 주민에 준하는 권리를 부여해 달라는 것이었다. 특히 100만의 이주민 중 절반정도 되는 이주노동자들은 폭행과 저임금, 살인적인 노동, 임금체불을 다반사로 겪는다. ‘코리안 드림’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는 이들의 인권을 보호해 달라는 간절한 호소였다.
독일 한인들의 건의문 소식에 마음이 짠해 진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의 어려운 처지를 공감하는 그들의 성숙이 부럽기도 하다. 1960년대 파독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독일 한인사회는 ‘한강의 기적’을 있게 한 원동력으로 평가 받는다. 독일의 한인들이라고 해서 물설고 낯선 이국땅에서 겪어야 했을 삶의 신산함이 이곳과 다를 리 없다. 한국 사람들로부터 극심한 차별을 받는 이주민들의 애환에서 독일 한인들은 과거 자신들의 모습을 보았는지 모른다.
짧은 칼럼에서 유럽 문화의 정신적 토양을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독일 한인사회가 한국 내 이주 노동자들에 대해 보여 주고 있는 배려와 공감이야말로 성숙의 가장 뚜렷한 표현이라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동병상린’이라 해도 좋고 ‘역지사지’라 해도 좋다.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머물던 관점에서 벗어나 타인에게까지 시야를 넓히는 것이야 말로 어린아이 단계에서 어른으로 성숙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한인사회는 새 정부 출범을 맞아 해외 한인 참정권과 재산권 등 권익 관련 이슈를 강력히 제기하고 있다.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제는 우리들만의 문제에서 벗어나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같은 좀 더 보편적인 가치에도 눈을 돌리고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105년 된 한인사회가 어른 단계로 성장해 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의 한인사회가 있기까지 다른 아시안들과 흑인들의 희생과 투쟁이 있었음을 기억할 때 더욱 더 그렇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