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디자이너 이동은·네이든 스위프트씨는 하버드 건축대학원에서 만나 서로를 믿고 같은 인생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부부다.
같은 목표와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는 건축회사 SLO 이동은 대표.
하버드 동문 건축가 이동은·네이든 스위프트 부부
대학원서 만나 결혼… 2000년 SLO 설립 공동대표로
환경보호적 학교·주거공간·재활용 철제 가구로 명성
4년 전 딸 클레어가 태어난 후 이들 부부의 생활은 많은 면에서 달라졌다. 하지만, 그 때도 지금도 변하지 않은 인생의 목표가 ‘재미를 찾는 삶, 펀 라이프’이다.
환경보호에 유난히 관심이 많아 건축자재인 철(steel)을 재활용한 실험적 가구를 디자인해 사용하고, 천연개스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탄다. 갤런당 99센트의 천연개스를 가득 채우면 200마일은 충분히 달릴 수 있어 불편함이 없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이나 마켓은 전기 스쿠터를 타고 다닌다는 별난 부부다.
학교, 상업 혹은 산업 공간, 주거 공간 할 것 없이 이들 부부가 건축했고 건축중인 프로젝트는 수없이 많다. 지난해 이들 부부가 진행한 SLO 프로젝트만 10개가 넘는다. 레익뷰 테러스 교육 콤플렉스 건축 프로젝트를 비롯해 윈체스터 레익 스키너 클로라인 워터시설, 차터스쿨, 시니어 센터, 링컨 하이츠 보이즈 앤 걸즈 클럽, 주택 리모델링 등 직원 5명이면 굴러가는 회사에 9명이 북적거리며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다.
철제가구 라인 Z 의자.
“디자인을 통한 혁신 꿈꾼다”
기상천외한 발상 ‘펀 라이프’로 연결
커뮤니티를 위한 프로젝트에도 앞장
SLO는 건축 디자인 스튜디오와 핸즈-온 프로토타이핑 웍샵, LA 지역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갤러리라는 3가지 목적으로 설립된 다기능 디자인 랩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 부부가 재미 삼아 만들었던 실험적인 철제가구 라인 ‘스터드 시리즈’(Stud Series)가 그라함 재단 보조금을 받으면서 SLO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어 이동은씨가 미 건축가협회 LA지부(AIA/LA) 디자인상을 수상했고, 미시간 주립대 건축대학 오버딕 교육연구 펠로우십에 선정되면서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건축회사라는 명성을 갖게 됐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쓰레기 중에 가장 많은 게 ‘철’이라고 합니다. 플래스틱, 종이보다 더 처치 곤란한 쓰레기인 거죠. 그래서 재미 삼아 고안해 낸 게 재활용 철제가구에요. 디자인은 리트벨트(G. Rietvelt)가 1930년대 내놓은 ‘Z의자’를 차용했어요. 지그재그 의자는 단순한 세련미가 고급스러우면서 실용적이라 우리 부부가 정말 좋아하는 디자인이에요.”
재활용 철제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면 ‘환경보호’에 좀 더 관심이 생기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감으로 시작한 가구 디자인이었다. 작지만 사려 깊은 노력을 기울이다보면 네 살짜리 딸 클레어가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소망도 담겨 있다.
메디칼 오피스 빌딩을 학교 건물로 개조한 레익 뷰 테레스의 PUC 교육 콤플렉스 프로젝트.
▶건축회사 SLO 이동은 대표
“건축은 생활을 바꾸는 수단”
“건축은 분명 예술적인 부분을 갖고 있지만, 사람을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디자인이 특별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건축 디자인은 모든 사람들의 집(home)에 있어야 하는 거죠.”
한국말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는 동은씨는 거의 혼자 대화를 이끌어갔지만, 중요한 대목에 이르러선 남편에게 발언권을 넘겼다. 이유인 즉 남편이 한 마디 툭 던지면 직원 모두가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란다.
남편 네이든 스위프트씨가 말을 아끼고 많은 걸 수용하는 예술가 스타일이라면 동은씨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마케팅에 능한 편이라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가며 작업한다. 업무상 클라이언트를 설득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 그럴 땐 양쪽에서 공격을 펼칠 수 있어 정말 든든하다고 한다.
“남편은 커뮤니티를 위한 건축 프로젝트를 많이 하고 싶어해요. 차터스쿨과 시니어센터 프로젝트라면 얼른 달려가죠. 변화와 혁신이라는 게 우리 주위에서부터 시작돼야 하는 거잖아요?”
한인 사회봉사에도 적극적이어서 한미장학재단(Korean American Scholarship Foundation) 이사로 활동하고 있고, 건축과 도시 디자인을 위한 LA 포럼 이사도 겸하고 있다. 커뮤니티가 발전해야 사회가 변하고 세상이 바뀐다는 철학이 이들 부부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내는 건 돈이 들지 않아요. 엉뚱한 면이 있긴 해도 기상천외한 발상이 ‘펀 라이프’로 연결되고, 여기에 환경보호나 에너지 절약 같은 슬로건이 첨가되면 사회 변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것 아니겠어요?”
동은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 이민을 왔다. UC버클리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의대에 진학할까 고민했지만 일 년 동안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자신이 걸어갈 길은 ‘건축가’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이왕 건축가가 되려면 최고가 되고 싶다는 결심으로 하버드 건축대학원에 들어갔고 일리노이 주립대 건축학과 출신으로 같은 꿈을 꾸고 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졸업 후 남편은 하버드 건축학과 조교 및 건축회사 ‘마몰 래드지너 앤 어소시에이츠’(Marmol Radziner and Associates)를 다녔고, 동은씨는 맥 건축회사(Mack Architects)에서 건축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은 후 2000년 SLO를 공동 설립했다.
여태껏 함께 걸어왔듯이 앞으로도 인생의 목표에 대해 늘 이야기를 나누고 제안하며 노력하는 좋은 파트너이고 싶다는 동은씨의 한마디가 함께 일하는 부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웹사이트 www.SwiftLeeOffice.com
글 하은선 기자·사진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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