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로 훼손되는 것은 자연만이 아니다. 삼림이 개간되면서 자연 속의 나무 같고 풀 같던 원시부족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1970년대 말레이시아에서는 세노이라는 부족이 사라졌다. 밀림 깊은 곳에 살던 그 부족은 ‘꿈의 부족’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꿈이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컸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그 마을에서는 꿈에 누군가를 때리면 깨어나서 반드시 그 사람에게 용서를 빌어야 했다. 아이가 꿈에 호랑이를 만나 도망쳤다면 그날 밤 다시 호랑이 꿈을 꾸고 호랑이와 싸워 이기라고 어른들은 가르쳤다. 꿈의 삶과 현실의 삶 사이에 그들은 구분을 두지 않았다.
부족사람들이 가장 갈망하는 꿈은 하늘을 나는 꿈이었다고 한다. 아이가 처음 비상하는 꿈을 꾸면 모두가 축하해주면서 어떻게 하면 더 멀리 날아 미지의 세계까지 가는 꿈을 꿀 수 있는 지를 가르쳐주었다. 정신을 집중하는 훈련을 하면 꿈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는 모양이었다.
꿈에서 씨를 뿌려 현실에서 그 열매를 거두고, 현실의 불가능을 꿈에서 실현하면서 꿈과 현실의 합일을 이루는 것이 그 원시부족의 삶이었다.
현실의 한계를 꿈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은 인간에게 필연인 것 같다. 인류가 이룩한 모든 발전은 꿈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주선, 셀폰, 인터넷 같은 문명의 이기는 물론 우리 같은 유색인종이 미국에서 마음대로 집을 사고 백인들과 함께 공부하고 그들의 상사가 되는 일은 불과 몇십년 전만해도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누군가 뿌린 꿈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어 우리 앞에 존재를 드러낸 결과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을 한 것은 1963년이었다. 노예해방 100주년을 맞아 8월28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평화 대행진에서 그는 인권운동사에 길이 남는 ‘꿈’ 연설을 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의 두 구절로 종종 소개되는 연설이다.
지금 들어도 가슴 저릿한 감동적 구절이지만 이렇게만 소개되면 그의 꿈이 얼마나 위대한 꿈이었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당시 그의 ‘꿈’은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불온한 꿈’이었고, 그래서 ‘꿈’을 연설하는 것은 목숨을 내어놓는 사투였다.
흑인들이 자유인 신분이 되었으면 그만이지 ‘언제나 만족하겠느냐’며 못마땅해 하는 백인사회에 대해 그는 이렇게 연설했다. 불과 45년 전의 현실이다.
“흑인들이 여행하다가 피곤에 지쳤을 때 고속도로 근처의 모텔이나 시내의 호텔에서 잠자리를 얻을 수 없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흑인들이 뛰어봐야 고작 작은 빈민촌에서 좀 더 큰 빈민촌 정도일 때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 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흑인들이 돈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지 집을 사거나 세를 들어 자기 집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꿈입니다”
그래서 ‘옛날 노예의 아들들이 옛날 노예 주인의 아들들과 함께’ ‘백인 어린이가 흑인 어린이와 형제자매처럼 손을 잡게 되는’것을 꿈꾼다고 그는 연설했다. ‘불온한 꿈’은 결국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그가 남긴 위대한 꿈의 씨앗 덕분에 미국사회는 인종차별이라는 높은 산을 넘을 수 있었다.
“집은 자신의 성이 되기도 하고 감옥이 될 수도 있다”는 유태인 격언이 있다. 창문을 꽁꽁 닫고 웅크리고 있으면 집이 감옥이나 마찬가지이고, 창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눈을 돌리면 세계로 뻗어 나가는 근거지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현실’이라는 집의 창문이 ‘꿈’이다. 꿈이 없는 인생은 현실에 갇혀 ‘표본실의 청개구리’같이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 ‘태초에 꿈이 있’어야 사회도 개인도 발전의 길이 열린다.
지금 이대로 삶이 끝나도 여한이 없는가. 아쉬움이 있다면 길은 하나이다. 가슴에 꿈의 씨앗 하나를 품는 일이다. 심지 않는 자는 거둘 수 없는 것이 꿈의 열매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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