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경주의 대명사인 ‘투르 드 프랑스’에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당대 최고의 사이클리스트 랜스 암스트롱. 그가 이룩한 불멸의 기록은 특히 말기 암을 이겨낸 후 만들어낸 것이어서 더욱 빛난다.
1996년 사이클계의 수퍼스타였던 스물다섯의 암스트롱은 고환암 선고를 받는다. 사실상 선수생활의 종지부를 뜻하는 말기 암을 초인적인 의지로 극복하고 몇 년 후 희망과 기대 속에 다시 사이클 선수로 돌아온 암스트롱은 또 하나의 장벽에 부딪힌다. 냉랭한 세상인심이 그것이었다.
그는 훗날 당시의 좌절감을 이렇게 회상했다. “암수술이 잘 끝나 다시 자전거를 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방에서 나를 찾을 줄 알았다. 뜻밖에 단 한 곳도 계약하러 오지 않았다. 다들 나를 포기하곤 못 본 체 외면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달리고 또 달리는 일 뿐이었다.” 암스트롱은 이런 좌절감을 오히려 폭발적인 에너지로 승화시켜 보란 듯이 위업을 달성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 8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는 제목의 자서전을 펴냈다. 이 책에서 박 전 대표는 가족과 함께 한 청와대 시절과 청와대를 떠난 후의 생활을 담담하게 적고 있다.
특히 관심을 끄는 대목은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절감했던 ‘세상의 무서움’에 대한 술회이다. 그는 이에 대한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아버지와 가까웠던 사람들조차 싸늘하게 변해 가는 현실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책 제목에서 자신을 단련시켰다고 밝힌 절망은 바로 이 같은 세상인심에 대한 확인이었을 것이다.
따스한 공기는 위로 올라간다. 또 찬 공기는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것이 물리의 법칙이다. 세상인심의 법칙 역시 물리의 법칙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래서 위에 있을 때는 따스한 공기에 감싸이지만 일단 밑으로 내려오면 찬바람이 기다린다.
더우면 모이고 추우면 흩어지는 ‘염량세태’(炎凉世態)가 세상인심의 법칙인 것이다. 박 전 대표처럼 더 이상 오를 데 없는 곳까지 올랐다가 갑자기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면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기온 차는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중국 한나라에서 오늘날의 최고재판소 소장에 해당되는 ‘정위’를 지냈던 적공은 세상인심의 롤러코스터를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타 본 사람이다. 그가 정위에 임명되자 그의 집은 문정성시를 이루었다. 그러다 그가 자리에서 쫓겨나자 사람들 발길이 완전히 끊어졌다. 그런데 찬바람을 견디고 있던 적공이 다시 정위 자리에 임명되는 것 아닌가. 그러자 그의 집은 다시 손님들 발길로 문지방이 닳기 시작했다.
이런 세태를 본 적공은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그래서 그는 집 앞에 이런 글귀를 써 붙였다. “한번 죽었다 한번 살아나니 이에 교제할 때의 정분을 알게 되었고 한번 가난했다가 한번 부유해져서야 비로소 교제할 때의 사람들 태도를 알았으며 한번 귀하고 한번 천하게 되어서야 교제의 참된 정이 드러나게 됐다.”
당신이 가난해 졌을 때, 그리고 천하게 되었을 때도 변함없이 찾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이다. 하지만 세상인심 속에서 그런 진정성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민심’은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을 정도로 도도한지 몰라도 ‘인심’은 새털보다도 가벼운 것이다. 이런 사실을 절절히 깨닫는 것이야 말로 흔들림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현명함이다.
정권 교체기에는 인심의 ‘난류’와 ‘한류’가 교차한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런 시기이다.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점령군처럼 행세한다. 선거 전날까지 이들의 흠집잡기에 바빴던 언론들은 이제 눈치 보기와 아부에 급급하다. 낯 뜨거운 변신에 보기 민망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반면에 떠나가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국민들의 냉혹한 심판을 이미 받았다지만 아직까지는 집권세력 인데도 영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 현 정권의 녹을 먹는 공무원들은 다음 정권 눈치 보느라 주눅 든 표정들이 역력하다. 대통령이 ‘염량세태’를 섭섭해 하면서 한마디 쓴 소리를 할라치면 곱지 못한 시선과 싸늘한 반응만 돌아올 뿐이다. 이것이 세상인심이다.
러시아 시인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이발소에 가장 많이 걸려 있다는 대중 시이다. 자리에서 내려 와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머지 않아 떠날 이들에게 이 시의 첫 귀절을 이렇게 바꿔 들려주고 싶다. “세상인심이 고개를 돌릴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고. 이름 없는 산에 발걸음 하는 사람은 있어도 이름 없는 사람은 찾지 않는 것이 세상인심이다. 세상인심의 본질을 꿰뚫고 있으면 그리 섭섭해 하거나 슬퍼할 일이 없다.
이제 권력의 자리에 올라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5년 후를 내다 볼 수 있다면 인심에 취하거나 중독되는 어리석음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식’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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