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려다 뒤로 물러서버리고 말았다. 10월 말경의 낮 최고 온도가 100도를 넘으니 말이다. 밖의 온도가 실내보다 더 뜨거워 문도 못 열어놓고 가을바람을 불러드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송연주씨, 안녕하세요. 내가 이 전화번호 알아내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요?”
이름도 대지 않고 내게 전화걸기 위해 수고한 자기의 푸념부터 하는 저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군가. 내 머리속은 잠시 기억 장치에 문제가 생긴 것처럼 멍해졌다. 그래도 저쪽은 누구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그제야 인사 비슷한 안부를 묻는다.
“남가주가 지금 불난리를 겪고 있다는데 댁은 괜찮은가요? 전에 보니까 산불이 글렌데일 지역에 자주 일어나던데요.”
나는 빨리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내기 위해 아주 어색한 신음 비슷한 대꾸만을 전화선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차마 ‘누구시죠?’라고 물을 수가 없었다. 저쪽에서 나를 너무 잘 알고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셀폰 번호를 알기위해 그토록 수소문을 했다는데 선뜻 알아보지도 못한다면 여간한 실례가 아닐테니… 그 순간 다행히 실마리가 잡힐 자기소개가 될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저 이번 가을 학기 버클리 대학에 교환교수 프로그램으로 왔어요. 가족과 함께요”
교환교수 하니까, 아!~~~ㅡ Y교수, 10년전 USC대학에 교환교수로 왔던… 그 사람. 그래 저 목소리였어. 만나고 뒤돌아 설 적마다 얼굴보다 목소리가 먼저 기억나곤 하던 매력적인 바리톤 소리. 굵직하면서도 깊이가 느껴지는 그래서 말을 하다보면 그의 음성이 아니라 그의 가슴이 더 가깝게 다가오곤 했지.
“어머! 그래요? 전에도 가을에 오셨더니 이번에도 가을 학기에 오셨군요. 얼마나 계실건가요?”
“전과 같이 1년 계약입니다. 근데 여기는 북가주라서 거긴 너무 멀군요.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당장 가서 만나보고 싶은데…”
“멀긴 뭐가 멀어요? 비행기로는 한 시간밖에 안 걸리는데요. 정말 오고 싶으시다면 말이예요.”
나는 이미 그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고 옛일을 상기하면서 반가움을 드러내고 깜찍을 떨었다.
“말하는 폼은 여전하시군요. 그간 흘러간 세월이 얼만가. 아마, 연주씬 겉도 변하지 않았을 거어야…”
그의 말투가 반말 비슷한 어조로 변하자 더더욱 예전 그의 목소리로 아니, 10년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특히 내 호칭은 미세스 송이지 연주씨란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성과 함께 ‘송연주’라고 풀네임을 부르곤 했던 사람은 Y교수가 유일하다.
거의 한시간 넘게 전화를 한 내용은 주로 문학 얘기였다. 나는 최근에 읽은 소설얘기를 했고 그는 요즘에 쓰고 있는 시의 주제와 “버클리 대학 캠퍼스가 아름답다면서, 여기서는 시 낭송회를 저녁시간이 아니고 점심시간에 해요. 그것도 배를 촐촐 골아가면서요. 배고픈 점심시간에
시로 배를 채운다. 아니 햄버거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시를 읽으며 채운다… 역시 미국 서부 명문대 학생들답다는 생각 안 들어요?” 이런 말을 하면서 나이 들어 이채로운 교육 환경에서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그의 요즘 근황이 행복해서 살맛이 난다고 전했다.
Y교수와의 대화가 유익한 점이 많을 뿐만 아니라 말을 참 재미있게 한다고 생각한 것은 10년 전이나 오늘의 전화 속에서나 같았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가 택하는 어휘들은 지금도 신선했다. 물론 내가 한국을 떠난 지 오래서 요즘 신조어에 익숙지 않아 더 참신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건지도 모른다. 그의 말하는 억양과 음성의 톤이 대화의 내용만큼이나 사람을 끌어드리는 힘을 지닌 것도 여전하다.
어쨌든 나는 Y교수의 목소리를 그의 몸집이나 얼굴보다 더 좋아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껏 나는 그와 비슷한 목소리를 지닌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내가 Y교수의 음성을 그가 지닌 지성이나 외모보다 더 높이 평가하고 좋아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키도 작고 마른 편인 왜소한 체격과는 달리 목소리는 뱃속부터 우러나오듯이 쩌렁쩌렁 했기 때문에 나보다도 작은 그의 키가 하나도 흠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작은 몸집은 그 목소리에 가려 보이지 않고 주의를 압도시키는 뛰어난 화술은 언제나 그를 파티의 주역으로 만들곤 했다.
강연을 하거나 강의 중에 듣기 좋은 음성을 갖고 있는 사람은 흔히 볼 수 있는데 노래하는 목소리까지 구성지고 멋진 데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노래를 너무 잘 불렀다. 노래방에 가면 Y교수 하지 말고 Y 가수라고 불러요. 그 때 많은 문인들이 이렇게 말했다. 그의 시를 낭송하는 것보다 소주 한 잔 마시고 유행가 부르는 것이 더 가슴에 와 닫는다고… 모이기만 하면 어디서나 그의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좀 수준있는 모임에서 노래 청탁을 받으면 서슴지 않고 일어나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Una furtiva la grirma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원어로 불러제끼면서 좌중의 기를 다 죽여놓곤 했다.
나는 원래 노래 잘 하는 사람에게 무조건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경향이 있다. 운동 잘 하는 사람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보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에게 더 호감이 가고 친해지고 싶어 한다. 내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기에 노래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즐겁게 해주는 Y교수같은 사람이 무척 부러웠던 모양이다.
한국을 떠난지 오랜 사람이 해외에서 우리말로 작품을 쓰기를 원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한국대학 국문학 교수와의 만남은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고, 캄캄한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과 같은 존재다.
10년 전 당시 나는 이곳 시인협회 부회장직을 맡아 일을 보고 있었다. 해마다 가을 한국의 날을 기해 문학 행사가 있었는데 나는 Y교수에게 모든 행사 기획을 의논했다. 그러니 자연 만남이 잦았고 행사 끝에 뒤풀이로 이어져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Y 교수는 나보다 5살이나 연하이면서도 나를 꼭 아랫사람 대하듯 했다. 처음엔 기분이 좀 언짢았지만 그가 대학 교단에 오래 있은 탓이겠지, 또는 문학면에서 나보다 아는 게 많으니까 그렇겠지 라고 이해했다. 보통 사석의 대화에서 존대도 아니고 아주 반말도 아닌 모호한 말투가 그리 밉지 않았던 것은 평소에 그가 늘 겸손하고 남을 존중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 시인대회가 열렸던 2박3일의 한여름 여행, 마음 맞는 문인들끼리 모여 데스밸리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면서 쏟아져 내리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던 일들이 슬라이드 필름처럼 천천히 스쳐갔다.
Y 교수와 나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실상은 서로 대화가 잘 통했을 뿐이고 문우로 좋아했을 뿐이지 이성간의 어떤 색다른 정은 아니었다. 근데 주변에서는 우리를 다른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니 눈길만 다른 게 아니라 아주 자기들의 생각대로 우리의 모습을 확인하려 들었다.
먼저 Y 교수의 아내가 그랬고 나의 남편이 또한 그런 눈으로 의심을 했다. 그들이 그렇게 믿으면 어떻게 순수한 우리의 관계를 증명해 보일 수 있는가. 버선목이라면 뒤집어 보이기라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시인협회 발길을 끊었다.
Y교수의 임기가 끝나 귀국할 때까지 문밖출입을 삼갔다. 그와의 인연은 지극히 싱거운 아주 작은 시점에 불과했다. 그러니 나는 그의 목소리마저 얼른 기억해내지 못할 정도로 까맣게 잊고 살았다.
사람끼리의 관계는 끊어진 것 같다가도 어느 틈에 다시 연결이 되고 또 다른 인연이 싹 트는 모양이다. 전혀 기대하지 못 했던 Y교수의 전화를 받고 보니 잠자고 있던 내 감정의 설레임이 잔잔한 호숫가에 돌을 던진 듯 파문이 일며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라디오를 틀었다. 산불이 어느 정도 진압됐는지 알고 싶어 틀었는데, 전에 고정시켜놓았던 라디오 서울 오후의 음악 산책에서 들려주는 최은옥의 노래 ‘빗물’이다.
‘비가 내리네~~’ 지금 내 귀에서 뱅뱅 도는 목소리 역시 최은옥 여자 가수의 음성이 아니라 가슴을 쥐어짜듯 구슬프게 부르는 Y 교수의 노래 소리다.
조정희
1987년 미주 한국일보 신춘문예 입선. 1997년 한국 라쁠륨지에 소설 등단. 소설집 ‘그네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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