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보는 앞에서 싸워도 괜찮다
그릇된 생각만큼 인간을 속박하는 것도 없다. 잘못된 교훈만큼 인간을 파괴하는 것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조심스러운 마음과 분별력을 가지고 조언과 신화(myth)를 대할 필요가 있다. 신화란 사회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거나 일반적인 습성이지만 그러나 근거는 빈약한 허구일 경우가 많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결혼에 관한 조언도 마찬가지다. 모두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대부분 그런 조언과 금기와 신화를 어기고도 잘만 살아들 가고 있다. 무시해도 좋은, 혹은 살짝 비틀어서 응용해도 좋은 결혼생활과 육아에 관한 신화 5가지를 짚어본다. 페어런팅지 신년호를 참조했다.
신화-화난 채 잠자리 들지마라
진실-일단 자고나서 생각
신화-아이가 부부 결속 다져
진실-처음엔 갈등 유발
1. 화가 난 채로 잠자리에 들지 말라
이유 있는 충고이다. 왜 이글거리는 불씨를 끄지 않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다시 화를 돋우려는 것인가? 문제가 있다면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모두 해결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푹 자고 신선한 아침을 맞을 것이지.
◆괜찮은 방법
일단 의견이 다르다는 데 동의하고 잠자리에 든다. 당분간만 백기를 드는 것이다. 특히 싸움이 한밤중에 시작됐을 때는 더욱 그렇다. 싸움이 명확하게 끝나지는 않았지만 일단 자고 나면 기분이 새로워져서 둘 사이의 문제가 술술 풀리는 수가 있다. 밤에는 심각했던 문제도 아침이면 그렇게 중대한 쟁점이 아니라고 가볍게 생각될 때가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결혼이 상거래가 아닌 이상 사랑에 대해 보상받기를 포기할 수는 없는가? 그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자유는 무엇인가? “당신이 나의 등을 긁어주면 나도 당신의 등을 긁어주겠다”는 식의 상거래 법칙을 깸으로써 자유로워 지자는 결론에 뒤늦게 도달할 수가 있다. 또 ‘좋은 남자가 나쁜 행동을 했을 때’(When Good Men Behave Badly)의 저자 데이빗 웩슬러 박사는 가끔 화가 난 채로 잠자리에 들고 이따금 다른 침대에서 각자 잠든다고 해도 O.K.라고 말하고 있다.
2. 아기가 부부사이의 결속을 다져준다
과묵했던 부부들도 아기가 태어나고부터는 끊임없이 얘기하게 된다. 주제는 아기, 아기, 또 아기이다. 그런데 아기 아빠는 ‘이단자”가 되어 풀타임을 나가 버린다. 아기는 배에 개스가 차서 울고 보채고 하루 종일 안고 어르다 보면 저녁 무렵이면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축 늘어진다. 당연히 아기에게는 짜증을 못낸다. 대상이 누구이겠는가?
◆괜찮은 방법
아기는 장기적으로 볼 때 부부 결속을 돈독히 해준다. 그러나 아기가 갓 태어난 몇 달이나 심지어 손이 많이 가는 유아시절까지는 부부 사이에 긴장감을 안겨주는 제1 요인이다. 따라서 부부간에 아직 긴장감이 있고 서먹서먹한 사이라면 당분간 아이 가지는 것은 보류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그리고 육아로 오는 긴장감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업무 분담이다. 엄마는 잠재우는 조력자라면 아빠는 목욕을 책임지는 전권대사를 맡는 식이다.
3. 배우자는 가장 좋은 친구인 동시에 로맨틱 파트너여야 한다
서로 가장 잘 아는 사이라면 당연히 가장 좋은 친구이자 연인이어야 하지 않는가?
◆괜찮은 방법
연모의 정과 우정은 분명히 다르다. 한 사람으로부터 이 모든 것을 바란다거나 채우려고 한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거나 망상이다. 따라서 옆집 아이 엄마가 더 좋은 친구라고 해도 남편이나 아내에게 미안할 필요는 없다. 배우자와 함께 있으면 재미있고, 존경스럽고, 평안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를 바란다. 배우자가 좋은 섹스 파트너이자 훌륭한 부모이며 영적 교감이 가는 소울 메이트일 것을 누구나 바라지만 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 견해이다. 이중 한 두 가지만 잘 조율할 수 있으면 당신은 행운아이다. 젊은 시절 만나서 시시각각 변해가는 상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라는 말이기도 하다. 가장 좋은 친구는 아니지만 가장 지속적인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것만도 성공이다.
4. 아이들 보는 앞에서는 싸우지 않는다
부모가 다투면 아이들은 겁을 먹는다. 아기라고 할지라도 부모가 화가 났다는 것을 감지하고 스트레스 수위가 올라간다. 더 큰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을 유추해 내기도 한다. 그런데 싸우지 않는 것만이 능사일까?
◆괜찮은 방법
생활은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다. 아이들도 사랑하는 사람도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제가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가장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터뜨리는 것이 아이들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싸움 자체에 있지 않고 싸우는 방법과 그 해결과정에 있다. 언사와 행동이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나 인성을 공격하지 말고 행동을 공격하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당신 게을러 터졌어요!”보다는 “쓰레기 내다 버리지 않는 것이 나를 힘들게 해요”라고 말해야 한다.
신화-배우자는 친구이자 연인
진실-둘 다는 불가능
신화-배우자는 공짜가 아니다
진실-가끔 감사하면 돼
5. 배우자를 공짜로 대하지 말라
이 조언은 행복한 결혼생활의 금과옥조로 들리기 쉽다. 공짜로 대하지 말고 항상 감사표시를 하고 그에 상응하는 것을 해주라는 말이니까.
◆괜찮은 방법
남편은 풀타임하고 돌아와서 아기 목욕시키고 설거지 하고 쓰레기 버리고 주말이면 쉬지도 못하고 큰 아이 스포츠 따라 다니고. 이런 남편을 믿고 아내는 남편만 곁에 있으면 나사가 풀어져 게을러진다. 그래도 이런 결혼생활이 불행하지 않다는 것이다. 서로 믿고 좋아서 하는 것이니까. 결혼은 서로 공짜로 가지는 것이 무진장 많은 것이니까. 가끔 고맙다는 말을 해주는 것으로 배우자를 공짜로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정석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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