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상무가 KT 로비에서 포즈를 취했다.
KT 재무실 IR 담당 김범준 상무
서울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는 1.5세와 2세들이 늘고 있다. 법조, 금융, 방송 등 분야가 다양해지는 것은 물론 그 숫자도 해가 다르게 늘고 있다는 것이 서울 미주 청년들의 귀띔이다. 한국 경제가 비약적 성장을 하고 세계화 시대 속에서 우리의 2세들은 서울을 발판으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을 준비 중이다. 검은머리, 검은 눈동자, 같은 피부색을 지녔지만 이들에겐 ‘외국’이나 다름없는 서울에서 고군분투하는 미주 청년들의 성공 스토리를 이번주부터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무자년 새해, 새로운 목표와 희망을 찾는 이들에게 작지만 소중한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한·미 문화의 장점
적절히 응용
진정한 리더로
9세때 도미 SF서 유년기 UCSD서 경제학 전공
미 증권사서 첫 발 1991년 서울로 5년 전 KT 입사 베스트 IRO 선정되기도
간혹 멕시칸 음식 그리울 때 있지만 사우나 즐기고 보신탕 먹는 한국남자로 ‘변신’
‘바나나’라 자청하는 이 남자. 어느덧 서울생활 16년째지만 여전히 한국말보다는 영어가 편하다는 김범준(42) 상무가 도대체 어떻게 정글의 법칙이 난무하는 서울에서 서바이벌 했는지 그저 신기할 뿐이다.
아홉살 때 도미, 동양인이라고는 김 상무 가족밖에 없었다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작은 타운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UC샌디에고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엔 미국 증권회사에 다녔다. 그런 그가 서울에 온 것은 1991년. 서울에서 승부해 보고 싶었다는 심플하지만 확실한 꿈이 그를 잡아끌었다. 미국에서 소수가 아닌 어머니 나라에서 주류로 살아보고 싶었단다. 그래서 당시 동서증권에 입사했다.
“갈수록 성장하는 한국에서 승부를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눈부신 성장의 초입에 서있던 90년대 초반 서울은 다이내믹했고 챌린지도 많았습니다. 그게 저를 서울에 눌러 살게 한 가장 큰 매력이었죠.”
증권회사에 4년을 다니다 중소기업 기획실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인수합병(M&A)이 그의 업무였는데 그 곳에서 9년을 일하면서 그는 제대로 한국 사람이 돼 갔다. 그때 한글로 보고서를 읽고 쓰는 법은 물론 한문까지 배우게 됐다고. 그러다 한국에서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KT(Korea Telecom·구 한국 통신)에 입사한 것은 2003년. 현재 그의 직함은 재무실 IR(Investor Relations) 담당 상무다. 그리고 입사 3년만인 지난 2006년에는 한국 IR협의회 주관의 한국 IR 대상에서 김범준 KT 상무가 Best IRO(IR Officer)로 선정되기도 하는 등 이 분야에 있어선 최고로 손꼽힌다.
권위 있는 수상이 대변해 주기도 하지만 3만8,000명 KT 직원 중 아마도 가장 바쁜 이가 바로 그가 아닐까 싶다.
인터뷰 약속을 한 KT 로비에서 만나 그의 사무실까지 가는 동안 그의 발걸음은 바빴다.
인사하는 직원들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면서 한 손으로 셀폰을 들고 미팅 약속을 잡고 한 손은 연신 시계를 쳐다보며 스케줄을 조정했다. 1분 1초도 그냥 그의 곁을 지나가지 않았다. 그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흐르는 게 아니라 시간을 매니지먼트 하고 있다는 말이 얼마나 적절한가를 새삼 알게 해준다.
그렇다고 그가 무조건 일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무대포 상사는 아니다.
“1.5세여서 좋은 점이 많아요. 한국식 문화와 미국식 문화의 장점을 조직에 적절하게 응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는 부하 직원들에게도 결코 반말을 하거나 하대하는 법이 없다. 또 일이 없으면 책상만 지키고 있을 게 아니라 그냥 나가라고 ‘종용’하는 ‘이상한 상사’(?)이기도 하다. 또 회식문화가 일의 연장선상인 한국 대기업에서 억지로 술자리를 강요하지도 3차, 4차로 이어지는 회식을 즐기지도 않는다.
“한국의 보수적인 조직문화도 서서히 변화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예전처럼 권위적이거나 일방적인 소통으로 거대기업을 이끌어갈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부서 운영을 가능한 미국식 조직문화의 장점을 적절하게 도입하려 합니다. 그래서 조직이 합리적으로 변화하고 일의 능률이 오른다면 그게 진정한 리더십이 아니겠어요?”
일에선 이처럼 ‘아메리칸’ 냄새가 물씬 나지만 생활은 반 한국남자 다 된 듯싶다.
일주일에 한번은 사우나를 가야 몸이 풀리고, 보신탕도 먹는단다. 게다가 잦은 해외 출장에서도 한국 음식을 먼저 찾게 된다고. 그리고 사고방식도 ‘한국적’으로 변해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단다.
그러나 아무리 바쁜 김 상무라고 하나 유년시절을 보낸 미국이 문득문득 그리워질 때가 왜 없겠는가.
“캘리포니아에 살아서 그런지 가끔 멕시칸 음식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서울에도 전문 식당이 있긴 한데 거기서 먹는 그 맛이 안나죠.(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이 좋고, 서울 생활이 재미있다는 그이지만 그렇다고 서울이 만만한 도시가 아님을 그는 누차 강조했다.
“제가 처음 서울에 올 때보다 미주 동포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적응하며 터를 잡는 경우는 아주 극소수입니다. 대부분 3년을 못 넘기고 다시 짐 싸들고 비행기에 오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서울생활을 너무 만만히 보고 작은 걸림돌이 쉽게 주저앉는 것을 보면 선배로서 안타깝죠.”
인생을 거는 꿈이라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 것, 단지 낯선 이국생활이 아닌 꿈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그가 들려주고 싶은 새해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회-KT 김범준 상무
2회-온누리 교회 영어부
존 리 목사
3회-LG 필립스 LCD
설창윤 과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