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해도 부모 역할은 진행형
자녀가 내린 판단 존중해야
또 한 차례의 소동이 지나갔다.
두 부부가 조촐이 지내던 정적이 착착 도착하는 아이들에 의해 무참히 깨어졌고, 몇 주간 밤이고 낮이고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친구들의 발길에 온 집안이 마치 대학 기숙사 같이 어지러워 졌었다.
그리고 그동안에 있었던 즐거운 일 어려운 일들을 이제는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재미있게 얘기해 주었고, 듣는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어보기도 했다. 또 연말이라 모처럼 함께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오랜만에 만나는 친지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도 가졌었다.
그런데 차를 탈 때마다 조금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되더니 한 번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같이 놀러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면서 “아, 피곤하다”하고 한 마디를 했는데 그 말 한 마디에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불만이란 다름이 아니라 그렇게 피곤하면서도 왜 꼭 아빠가 운전을 하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언제나 그랬듯이 운전석에 앉았던 것인데 아이들은 이미 벌써 우리 부부는 뒷자리에 앉아도 되는 존재로 인식 바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녀갈 때마다 우리 부부가 조금씩 작아지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래도 올해까지는 다들 방학 때마다 돌아오기는 했지만 올 여름부터는 그것마저도 변화가 있을 조짐이다.
둘째 애가 졸업을 하는데 아마도 졸업 후에는 그대로 일할 곳으로 직행을 하고 거기를 본거지로 삼을 모양이다. 여태껏 왕복표를 장만했지만, 이번에는 편도로 표를 장만하는 것을 보니까 어느덧 거기가 기점이고 우리를 보러올 때마다 왕복으로 표를 끊을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도 서둘러서 학교 근처에 졸업식 날 있을 곳을 예약해 놓았는데 언제 또 보게 될지 모르는 것, 이왕 가는 김에 장인장모님, 처남댁 부부와 동행을 해서 근처 대학과 명소를 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쯤 됐는데도 도무지 아직도 애를 다 키웠다고 하는 기분이 들지를 않는다.
애들이 아직 대학에 가기 전에는 대학에만 보내 놓으면 “우리의 역할은 다한 것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올해부터 내리 대학 졸업식이 매년 있을 예정인데도 왜 아직도 끝이 아니고 오히려 이제야말로 시작에 불과하다고 느껴지는 것일까?
이런 느낌은 독자들의 반응에도 감지하고는 한다.
독자분들이 각 지역에서 전화를 많이 해주시는데 여태껏 온 전화들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대학 재학중인 자녀들에 대한 질문도 얼마 없고 대부분이 대학을 졸업한 자녀들에 대한 얘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들을 받으며 느끼는 것은 우리 학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최대 관심사, 즉 어떻게 하면 우리 자녀들을 명문 대학에 보낼 수있을까 하는 것인데, 더 중요한 것은 대학에 가서 무엇을 하고 얼마나 잘하느냐 인 것 같다.
심지어는 그것만 가지고도 안 되고, 그 모든 과정에서 얼마나 삶을 즐기고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는가도 중요하다.
이번 방학 중에 아이들과 함께 방문한 학생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런 경우인데 이 학생은 5년 전에 미국으로 와서 그동안 8학년부터 공부를 해온 학생인데 열심히 공부를 해서 이미 UC Davis에서는 상위권 학생에게만 주어지는 특혜를 이 학생에게 주겠다는 통지를 받게 된 모양이다. 이 학생은 아직 다른 학교에서는 통지가 없었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Davis에 가는 것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는 것 같았다.
이 학생은 어떻게 해서라도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데 한 선배가 그 곳에서 곧바로 그 곳의 의대로 직행을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UC Berkeley나 UCLA에 가서 군중 속의 한 명이 되는 것보다는 Davis에서 특별대우를 받으면서 공부를 열심히 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그 곳에서 의대로 직행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우리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것만치 ‘명문’에 구애를 받지 않고 본인의 캐리어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를 더 실속위주로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 학생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 학생은 모든 ‘명문’대학에 합격통지를 받았는데도 고등학교에서 사귄 여자 친구가 다른 대학에 가기를 원해서 모든 것을 제치고 그 여학생이 입학 허가를 받은 학교로 낮추어 입학한 학생도 있는데 우리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리라.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여학생과는 몇 년 후에 헤어지게 되었고, 공부는 전공한 과에서 열심히 공부를 해서 남들이 다 가고 싶어 하는 의대로도 진출이 가능했지만 오히려 이론이 좋아 박사학위 쪽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제 곧 박사학위를 받게 된 시점에서 철학에 심취하게 되어 새로 그쪽 공부를 해야 되는가 아니면 그대로 그 분야의 교수가 되어야 하는가 고민하고 있는 학생도 있다.
이번 방학에 애들이 와서 새롭게 거론이 된 것이 하나 있는데 그동안 매년 장인어른이 손자손녀들에게 모두 세뱃돈을 두둑이 주어 오셨는데 내년부터는 이것을 모두 폐지하는 것이 좋이 않을까 하는 제안이었다. 아직 어린 손자손녀들도 있지만 이제는 직장을 가진 손자손녀들이 더 많아서 드린 말씀인데 영 좋게 받아들이시지 않으시면서 “내가 죽을 때까지는 할 거야!’라고 한마디로 일축하시는 것이다.
이 기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 않는 것은 장인어른에게는 세뱃돈을 받을 나이가 지났나 아닌가가 아니고 이 모든 명절의 습관적인 관행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너무 강하게 느끼시기 때문이리라.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말했듯이 “우리가 이민 왔을 때 우리 부모님의 연세가 지금 우리 나이보다 젊으셨었네요!”하는 말이다. 이렇게 모일 때마다 절실히 느끼는 것은 세월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흐른다는 것이다.
이 다음번에 또 다시 만날 때는 또 어떨까? 그 때는 조금은 더 지혜로워지고 준비된 엄마·아빠가 되어야지 하고 조용히 다짐해 본다.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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