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돼지의 해였던 정해년이 지났다. 올해는 부지런하고 다산 다복하다는 무자년 쥐띠 해이다. 신년 초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꼭 이룰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지나고 보면 언제나 시간이라는 유장한 흐름의 가장자리에서 포말로 자지러지며 자취를 감출 때가 많다.
신년이 올 때마다 자신의 지나간 발자취를 돌아보게 된다. 다음의 간이역은 어디쯤인가? 지금까지 삶의 의의는 무엇이었나? 의문은 계속된다. 길도 없는 미지의 꿈을 탐험하는 이방인으로서 다시 새해를 맞이했다.
현재 노마드 시대를 살고 있는 ‘이민 1세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지나간 시간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고향이라는 애틋한 감정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삭막한 현실이 우리들의 실존이다. ‘귀속감의 상실’은 한국과 미국이라는 장소에 관한 것만이 아니며 문화와 정신과 감성의 이질적인 엇갈림이 매일의 삶에 이물질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한 반사작용일까? 지난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미주 동포들이 보인 관심과 열기는 뜨거웠다. 매일 신문과 TV에 초점을 맞추고 특정 후보를 응원하며 한국의 미래가 바로 자신의 미래인 것 마냥 흥분과 열정을 쏟으며 올인 했다.
우리의 인생길에서 서로의 색깔만 다를 뿐 누구나 행복이라는 무지개를 상상하고 설계하고 추구한다. 그러나 행복이란 타인의 저울이 아닌 순전히 자신의 마음에 물든 리트머스 페이퍼의 컬러이므로 자신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무지개이다.
“어린 오누이 둘이서 파랑새를 찾아 헤매다가 끝내 찾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파랑새는 바로 자기 집 창문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잡으려 했더니 훌훌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모리스 머터링크’의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 이야기이다. 즉 파랑새를 잡으려고 멀리 찾아 헤매나 파랑새는 가까이 자신에게 있으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준비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달 크리스마스가 코앞에 다가와서 상점 안이 바쁜 열기로 차있을 때 덴마크 할머니가 지팡이에 의지해서 들어오며 한 손에 든 봉지를 건네준다. “내년에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그녀가 미소로 건네준 선물은 손수 만든 초컬릿칩 쿠키였다. 연세가 많은 그 분은 매일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이 유일한 건강운동인데, 우리 상점 앞을 지날 때마다 문 앞에 떨어져 있는 한국 신문을 메일을 넣는 틈으로 안에다 넣어준다.
베스는 상점에 올 때마다 뒤뜰에 핀 장미꽃을 꺾어 물에 젖은 솜뭉치로 싸서 가져온다. 예술가인 그녀는 작은 삶의 행복을 들꽃 향기처럼 주위에 풍겨주는 여인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단골고객으로부터 와인이나 쿠키나 독특하게 구워낸 빵 등 사랑과 행복의 선물을 받게 되므로 나도 가벼운 선물을 준비한다.
처음 외국에 나와서는 여러 인종이 섞여 살아야 하는 것이 몹시 부자연스러웠는데, 이제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건 그냥 인간가족으로 생각하려 하며 또한 그들의 처지와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기도 한다.
“신성은 개념이나 책 속에 있지 않고 바로 네 마음 안에 있다”고 헤세는 ‘유리알 유희’라는 소설에서 말하고 있다. 신성은 성숙한 마음이며 인간애의 마음이다.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살이에서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므로 지혜로운 생활인이다. 이기적 자아에서 벗어나 남의 마음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는 관용과 수용의 폭이 넓은 앞서 가는 사람이다. 현실적인 무게를 버리고 마음에 신성을 가진다는 것이 행복조건의 알파와 오메가일 것이다.
다시 새해가 되었다. 바로 얼마 전에 새 밀레니엄의 시작이라고 흥분되었던 것 같은데 벌써 7년이 지났다. 딴에는 많이 생각하며 창조적 삶을 가져보려 했다. 또한 잘 계획하고 노력해서 살면 더 많이 사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도 자연의 시간에 비하면 한갓 순간에 불과한 것임을 바로 세월이 말해주고 있다. 하긴 로버트 번즈(영국 시인)는 “지난날의 행복을 헤아려보니 결국 ‘행복한 사색’을 한 몇 시간밖에 없더라“고 말했다지만, 그래도 새해엔 새로운 계획으로 다시 행복의 길을 꿈꾸어 보려 한다.
김인자
시인·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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