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3일 저녁 아이오와 코커스를 지켜보면서 문득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 의 첫 구절이 떠올랐다. ‘변화’에 대한 미국민들의 갈망이 저 정도였나 싶은 놀라움 때문이었다. 그 갈망이 아무리 크다 한들 ‘민주주의’라는 말 한마디로 생명을 위협받던 시절, 한국의 목마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는 해도 목마름의 대상이 무엇이든 그 간절함은 간절함으로써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네 이름을 쓴다 변화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 아이오와 주민들은 그런 심정으로 표를 던졌을지 모르겠다. 그랬던 것으로 분석이 되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첫 관문인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사건’이 터졌다. 모든 기득권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 이변의 축제였다. 이변은 짜릿한 법. 능력, 조직, 돈이라는 선거의 3대 잣대가 전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너진 결과에 지금 미국은 신선한 충격을 즐기고 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무명이었던 공화당 후보 마이크 허커비의 승리도 놀랍지만 이날의 스타는 단연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였다. 힐러리 클린턴이라는 거목을 3등으로 밀쳐내고 1위를 차지하면서 다윗이 골리앗을 거꾸러뜨리는 전율을 선사했다.
불과 3년 전 연방정계에 입문한 짧은 경력, 흑인이라는 인종적 핸디캡을 안은 그가 주민 92%가 백인인 아이오와에서 거둔 승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해답은 하나, 변화에 대한 열망이다. 부시 행정부 8년(지금까지 로는 7년)에 대한 지겨움, 그 기간 퇴색해버린 미국의 가치를 되돌려 놓겠다는 의지들이 ‘신선한, 가장 신선한’ 후보에 대한 지지로 연결이 되었다.
오바마의 승리가 확정된 후 ‘변화를 위해 일어서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환호한 그의 지지자들은 미국 사회 저변에 분명하게 흐르는 ‘타는 목마름’을 대변한 셈이다. 한국의 보수 진영에 ‘잃어버린 10년’이 있었다면 미국의 진보 진영에는 ‘잃어버린 8년’이 있었다.
‘변화’가 이슈인 선거에서는 “바꿔, 바꿔!”를 가장 크게 외칠 수 있는 진영이 힘을 얻는 법이다. 지난 3일 밤 아이오와 주도 디모인 인근 한 교회의 광경이 인상적이었다. 교회 지하 회의실에는 민주당원들이, 1층 예배실에는 공화당원들이 모였는데 그 분위기가 너무 대조적이었다. 300여명이 그득 들어찬 민주당 모임은 왁자지껄 활기가 넘치고, 200명이 채 못되는 공화당 모임은 예배시간처럼 조용하게 가라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날 아이오와 전역의 분위기가 비슷했고 올해 미국 선거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그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8년간 잃어버린 백악관을 기어이 되찾겠다고 나서는 민주당 측의 기세 앞에서 공화당 측은 수세로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본 선거까지 앞으로 11개월 - 어떤 우여곡절이 숨어있을 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가 없다. 꿈과 현실의 마찰이 곳곳에서 있을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변화’를 바라면서도 현실에서는 ‘안정’을 택하는 이율배반이다. ‘변화’를 몰고 올 신선한 리더십에 대한 갈망과 함께 유권자들은 믿음직한 리더십이 주는 ‘안정’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현 상태가 변하기를 바라면서도 너무 심하게 변하는 데 대해서는 두려움을 갖는 심리이다.
미국 보통사람들의 정서를 알아보기 위해 동부 소도시에 사는 백인 친구와 이야기를 해보았다. 미국 미디어들이 기사로 보도하지 않는, 그러나 그들 끼리 주고받는 교감을 듣고 싶어서였다.
오바마를 지지하는 50대의 민주당원인 그는 변화에 대해 상당히 비관적이었다. “미국이 아직은 여성 대통령, 흑인 대통령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당연히 안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너무 많다고 했다. 리더십에 현격한 변화가 올 기미를 보일 경우 기득권층이 똘똘 뭉쳐 저항할 것이라는 관찰이다.
변화에 대한 열망은 앞으로 어느 정도 표로 연결될 것인가. 미국민들이 어느 선까지의 ‘변화’를 수용할 것인가가 올해 대통령선거의 관건이 될 것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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