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형(World OKTA 명예회장)
2008년을 맞이하면서 감회가 어느 해보다 더 깊다. 내가 이곳 뉴욕에 온지도 벌써 3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처음 뉴욕에 와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언제 오셨는지 참으로 궁금해서 많이도 물어보았다. 10년
만 넘어도 무척 오래된 분으로 여기던 때였다. 처음 뉴욕에 도착하던 날, 한국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는데 지금 비교해 보면 그 때는 상대적으로 아주 적은 숫자였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30년을 보냈으니 강산이 변해도 3번이나 변한 시간이 되었다. 내가 모국에서 살아온 시간보다 이제는 이 곳 뉴욕에서 살아온 시간이 더 길어진 상황이고 보니 당초에 내가 살아갈 인생의 목표를 다시 한번 더 되짚어 보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다.며칠 전에 새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에 새롭게 맞이하는 새해가 더욱 더 감회가 깊다.우리 모두가 얼마나 마음 졸이면서 지내왔던 지난 5년이었는가. 한미관계의 악화가 가져오는 마찰음을 이곳에서는 피부로 느끼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온 세계가 세계화의 질주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뛰어가고 있는 이 때에 모국은 태평스럽게 과거에 집착해서 한가한 이념논쟁을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긴 한숨을 쉬었는가?
얼마 전에 읽은 미국에 이민 온 각 민족간의 모국에 대한 연관관계와 현지 정착하는 과정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글이 생각난다. 비교적 모국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그리고 강하게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민족은 이태리 민족이라고 한다. 이들이 미국에 이민을 와서 이민의 역사나 숫자에 비해 현지에서의 정치적인 세력은 상대적으로 매우 약하다고 한다. 대신 모국과 인연을 끊고 현지 정착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 아이리쉬 민족은 오히려 숫자적으로는 적지만 현지의 정치적인 세력은 월등하여서 이미 2명의 대통령을 배출하였다고 한다.모국과의 인연을 끊는다고 해서 끊어지는 것은 아닌 줄 안다. 단지 어느 곳에 우선순위를 두고 자신의 시간을, 자신의 정력을 더 많이 쏟는가에 기준을 두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 글을 읽으면서 우리 민족은 어디에 속할지 궁금해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처음 뉴욕에 왔을 때는 매일 한국계 신문만 열심히 보면서 몸은 이곳에 있지만 신경은 온통 서울에 쏠려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들은 만나는 사람들을 분류하는 버릇이 있다. 대개는 무슨 일을 하던 분으로, 어느 정도 가지고 온 분으로, 그리고 어느 지역에서 온지로 분류하는 듯 하다.그래서 주재원으로, 유학생으로, 조선족으로, 그리고 기러기 가족 등으로 나뉘어서 그룹별로 생활권이 형성되는 듯 하다.
현재 중국에서는 그 정도가 심한 듯 하다. 중국에 가서 들은 이야기로는 조선족들과 한국에서 장기체류 또는 사업으로 중국에 건너간 신선족(신조선족 또는 부유한 경제력으로 신선같이 살고 있다는 한국인 부류)으로 나뉘어서 서로간에 교류가 거의 없이 지내는 것이 몹시 눈에 거슬렸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도 큰 그림으로 보면 그것도 잠시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두가 현지화 되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면서 현지화가 된 민족과 그러하지 않고 지내는 민족간에는 먼 훗날 아주 큰 차이가 나타남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각 국가 및 민족 고유의 문화를 지키지 못한 민족은 뭉그려 어느 종족으로 간주되지만 자기의 고유문화를 지키는 민족은 어느 시기, 어느 장소에 가더라도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고 훌륭하게 살아가기 때문에 독창적이면서도 생존의 생명력이 길다. 정체성이 강한 민족으로 유대인이 그러하며, 중국인이나 인도인들이 비교적 자기들의 고유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으며 정신적인 풍
요로운 삶을 영유하고 있다.
새롭게 출발하는 모국의 새 정부에 대한 기대도 시집 온 며느리가 친정이 좀 더 윤택해지는 정도로 여기면 좋겠다. 뉴욕에 살고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하면 정착해 살고있는 이곳 뉴욕에서 내 가족, 내 식구들을 더 윤택하게 할 것인지에 대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급변하고 있는 세계화 속에서 재외 한민족의 위치를 더욱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우리 고유의 문화와 ‘하이 한글운동’을 통해 정체성을 지키는 길만이 우리가 잘 사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이곳 뉴욕에서 우리의 입지가 강해질 때에만 미국 주류사회가 우리들을 대접하게 되며, 서울이 우리를 제대로 대접해 줄 것이다. 연줄을 넣어서 서울의 자리를 넘보는 모습보다는 뉴욕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헌신하는 봉사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을 하는 모습이 더욱 더 보람차 보이며 위대해 보이기 때문이다.새로운 달력을 걸면서 많은 생각이 나며 올해는 특별히 더 감회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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