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란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들을 슬프게 만드는 감정의 물결 속으로 빠지게 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세상에 인생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적어도 한 번 쯤은, 아니 그 이상 경험해야 되는 일이기도 하다. 갖가지 모양의 이별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내용이 다른 눈물을 쏟아내게 하며, 마음을 아프게 하고 못내 서운하게 한다.
며칠 전, 남편과 나는 25년간을 함께 지냈던 콘솔(console) 텔레비전을 쓰레기장에 갖다 버렸다. 미국 온지 7년 만에 집을 장만하면서 사들인 그 텔레비전은 27인치 크기의 플랫(flat)이었다. 지금은 기술이 뛰어나서 많은 전자제품들이 최고의 성능과 모양과 내용, 엄청난 크기도 있지만, 그 때만해도 27인치는 큰 사이즈였으며, 평면 텔레비전은 처음 선보인 것이었다.
타임스 잡지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멋있게 찍혀진, 잘 생긴 RCA 브랜드의 이 평면 텔레비전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K 마트 전자제품 상점에 들렀더니 재고가 없었다. 이미 그 상품에 마음이 뺏겨버린 남편과 나는 진열대에 놓여있는 모델을 1,000불이 넘는 고액을 주고 사왔던 것이다. 우리 부부는 물건을 살 때, 무슨 유명세를 타거나 어떤 특별한 것들을 찾는 그러한 타입의 사람도 못되고, 또 그런 물건에 그렇게 가치를 두고 찾는 사람도 아닌데, 무엇에 홀렸는지 우리는 생각에도 넘친 가격의 물건을 사들인 것이다.
주저 없이 사들인 그 평면 텔레비전은 정말 선명하고 밝은 색깔로 수많은 시간들을 우리로 하여금 감탄하게 만들었다. 15년 전에 잠깐 고장이 나서 한번 고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렇게 깨끗하게 나오는 텔레비전은 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성능을 자랑했었는데, 몇 달 전부터 채널에 따라서 부분적으로 화면이 흐려지기도 하고 끊겼다 다시 나오기도 하면서 자신의 수명을 실감케 해주었다. 결국 이렇게 가버리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세월의 무상함이 마음을 쓸어내린다.
이미 장성하여 결혼한 두 아들들에게, 어린 시절 세서미 스트릿 교육방송을 열심히도 방영해주었고, 세계의 각종 뉴스를 매일같이 알려주고, 남편이 좋아하는 스포츠 방송은 시도 때도 없이 보여 주었었다. 매일의 날씨, 옛날에 감명 깊게 보았던 명화들을 다시 볼 수 있게 했으며, 온갖 정보를 쉴새 없이 제공해 주었던 그 텔레비전, 안정된 직장생활을 접고 작은 사업에 뛰어 들었다가 일 년 만에 집까지 잃어버리고 다시 아파트로 돌아갔을 때도 우리의 아픔을 함께 하였던 텔레비전, 그렇게 묵직하게 거실에 한 구석을 자신의 거처로 삼고 묵묵히 지켰던 물건이었다.
비록 생명을 지닌 생물이 아니었지만, 그 텔레비전은 25년 동안을 기계가 작동할 때는 우리와 함께 숨을 쉬며 살아온 것이 분명하다. 기계의 작동이 멈춤과 인생의 활동의 멈춤에 있어서 무엇이 그렇게 크게 다르겠는가. 멈춘 후에 하나는 쓰레기장으로, 인생은 땅속으로 가는 장소가 다를 뿐이지 멈춤은 똑같다는 생각이 너무나 마음을 허전하게 한다.
작동이 멈춘 크고 무거운 텔레비전을 보면서 우리는 어디에다 버려야 하는지 잠간동안 암담한 기분이었다. 다행이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쓰레기장이 있음을 확인하고 우리는 그 무거운 무게를 힘을 다해서 차에다 실고 갔다. 가재도구만을 버리게 되어 있는 곳에, 아직도 외모는 멋있게 생긴 우리의 RCA 콘솔 플랫 텔레비전을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땅에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땅바닥에 버려진 것이다.
버려진 물건을 보는데, 허망한 슬픔이 가슴을 가득 채운다. 정들었던 물건이 땅바닥에 우두커니 버려져 앉아있는 모습을 차창 밖으로 내다보면서 이별을 고했다. 25년간 너의 수고가 고마웠다고… 더 이상 바라보기가 미안해서 고개를 돌려 앞을 보면서, 쓰레기장을 빠져나오는데 왜 그렇게 서운한지 모르겠다.
이별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여하튼 이별은 원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이별을 통해서 우리는 또 다른 느낌을 만나게 된다. 새로운 경험과 깨달음, 뉘우침과 다짐, 기다림과 그리움, 단념과 단절, 희망과 기대, 재회와 죽음에 대한 경험들…
잠간 동안의 이별은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주기도 하지만 헤어진다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기에 우리들은 이별이 없기를 바라며 살고 있다. 이렇게 물건에까지도 애착을 가지고 살면서 이별을 아쉬워하는 것이 우리들 인생들의 마음이고 보면, 이별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인생을 더욱 강인하고 유익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지금쯤은 완전히 부서져서 모양조차 없어졌을 RCA 평면 텔레비전은 샌 루이스 오비스포 카운티에 위치한 콜드 캐년 매립지 쓰레기장으로 영원한 거처를 옮겼다.
이렇게 멋없이 나는 정든 것과 이별을 했다.
옥동숙
약력: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신학과졸업. 1991년 제7회 크리 스챤문예 수필등단. 미주 크리스찬 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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