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상대자로 조건이 비슷한 두 남자를 놓고 고민 중인 30대 한인여성 강모씨. 몇달 전 중가 주로 가을여행을 다녀오면서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돌아오는 길에 두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먼저 전화를 받은 A씨는 ‘하이파이브 형’. 강씨가 신이 난 목소리로 여행지의 풍광과 기분 좋았던 감동을 털어 놓자 A씨는 “그랬느냐” “정말 좋았겠다” “같이 한번 가보고 싶다” 등등 추임새로 강씨의 신명을 돋우었다.
다음에 전화를 넣은 B씨는 ‘차선추월 형’. 강씨와 통화하는 도중 수시로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여행지를 설명할라치면 자기가 가 봐서 잘 아는데 어쩌고저쩌고…. 먼저 아는 척이다. 전화를 끊은 강씨는 그동안의 고민스럽던 마음이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100여년 전 영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여성이 있었다. 워낙 상대들이 거물이다 보니 역사 속에 유명한 일화로 남게 됐다. 한 젊은 여성이 19세기 영국을 이끈 위대한 수상인 윌리엄 글래드스톤과 벤저민 디즈랠리와 우연히 하루 간격으로 저녁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사람들이 두 사람에게서 어떤 인상을 받았느냐고 질문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글래드스톤 수상하고 식사를 하고 나올 때는 그분이 영국에서 가장 현명하신 분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디즈랠리 수상과 식사를 한 후 식당을 나설 때는 내가 영국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신이라면 현명한 사람과 당신을 현명하게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 중 누구에게 더 호감이 가겠는가. 대답은 불문가지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입이 아니라 귀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말 잘하는 사람보다 자기 말을 들어 주는 사람에게 더 호감을 가지게 된다. 과거 계급사회에서는 말 잘하고 목소리 큰 사람이 리더가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수평적 관계와 감성이 중요시 되는 21세기에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상대 마음을 열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쪽의 귀를 먼저 열지 않으면 안 된다.
2년 전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에 보면 읽는 이의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는 대화의 법칙이 소개돼 있다. ‘1:2:3의 법칙’이 그것이다. 1분 동안 말을 했다면 그 두 배인 2분 동안 귀를 기울이고 그 2분 동안 최소한 세 번 맞장구를 치는 것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현명한 대화법이라는 것이다. 노처녀 강씨가 왜 ‘하이파이브 형’인 A씨에게 마음이 기울었는지 이 법칙으로 쉽게 설명이 된다.
그렇지만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 만은 아니다. 입 다물고 이야기를 듣는 데는 말하는 것보다 오히려 몇배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또 24초 이상을 집중해서 듣는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관찰도 있다. 그래서 경청의 중요성에는 모두가 공감하는데도 정작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감성과 배려가 중시되는 21세기에 ‘경청의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지만 이 리더십이 새삼스런 화두는 아니다. 동양의 역사를 보면 천하를 제패한 영웅들을 ‘귀 큰 도적’으로 부르곤 했다.
몇 달 전 LA를 방문했던 남바린 엔흐바야르 몽골 대통령은 지역 경제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징기스칸은 서방에 잔인한 전사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는 방대한 제국을 통치하는 효과적인 시스템을 구축한 ‘경영의 천재’였다”고 평가하고 머지않아 징기스칸의 재발견이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엔흐바야르 대통령이 ‘경영의 천재’라고 치켜세운 징기스칸 리더십의 요체가 바로 ‘경청’이었다. 징기스칸은 살아 생전에 후대에 귀감이 될 만한 이런 말을 남겼다. “배운 게 없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현명해 지는 법을 배웠다.” 징기스칸의 교훈 속에 ‘이청득심’(以聽得心), 즉 들음으로써 다른 이의 마음을 얻는 인간경영의 지혜가 녹아나고 있다.
교언과 허언, 그리고 망언이 넘쳐 나는 시기에 ‘경청’은 더욱 소중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정권 출범을 앞두고 기대감이 넘쳐 나고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리더십에 대한 우려감 또한 없지 않다. “말 때문에 망한 노무현 정권은 다음 정권의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불안한 전망도 나온다.
어줍지 않은 식견을 가지고 말 많이 하는 지도자보다는 항상 국민들의 말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지도자가 한층 믿음직스럽다. 아니, 그렇지 못한 리더는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됐다.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는 것과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일은 원리가 똑같다. ‘이청득심’이 바로 그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