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 전 5세기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30년 긴 전쟁을 벌였다. 전황은 일진일퇴를 거듭했으며 아테네 시민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정치적 불안과 사회적 혼란이 이어졌다. 이런 와중에서 ‘데마고고스’(demagogos)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영어 ‘데마고그’(demagogue)의 어원이 되는 ‘데마고고스’는 민중을 선동하는 정치가를 이른다. 아테네의 ‘데마고고스’들은 시민들의 애국심과 자존심을 자극했다. 그러면서 전쟁에 이기면 스파르타의 땅과 재물을 나눠 가질 수 있다며 가난한 사람들의 꿈을 부풀려 놓았다. 그러나 정작 스파르타와 휴전을 맺을 기회가 오면 데마고고스들은 교묘하게 이것을 회피했다. 아테네의 안녕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이 우선이었기 때문 이었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은 ‘데마고그’를 “자기 자신의 권력이나 이권의 증진을 위해 군중 혹은 대중의 정열과 편견에 호소하는 정치지도자”라고 설명한다. 정치도 일종의 유혹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에게는 유혹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대중을 끊임없이 유혹해야 하는 정치인들로서는 일종의 민중 선동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유혹과 선동이 선을 넘어설 경우 바로 ‘데마고그’가 된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이번 대한민국 대선은 ‘데마고그’들의 레이스였다. 선거일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입장과 공약을 차분히 들어볼 수 있는 변변한 기회조차 없었다. 다만 후보들이 일방적으로 내뱉는 검증되지 않은 공약과 허언, 그리고 상대에 대한 무차별적 비난만이 난무했을 뿐이다. 합리적인 설득이 있어야 할 자리를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고 선동하는 언어들이 꿰찼다.
데마고그형 구호와 공약들이 이런 분위기를 부채질했다. 아무리 구호라지만 후보들이 내세운 ‘전 국민의 성공’과 ‘온 가족 행복시대’는 하나님이라 해도 절대 실현할 수 없을 일이다. 구체성을 띤 듯한 공약들도 허무맹랑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든 학교 수업을 영어로 하겠다”는 한 선두주자의 공약이 대표적이다. “영어 수업을 위해 선생들을 훈련시키는 데만 최소 30년은 걸릴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이고 보면 이런 공약에는 실소부터 나온다.
또 어느 나라 대선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전 재산 헌납 약속도 ‘데마고그’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정당하게 번 돈이라면 뜬금없이 투표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내놓겠다고 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뒤처진 주자들도 매한가지다. 어떻게든 뒤집어 보겠다며 BBK에만 매달렸다. 전형적인 데마고그적 선거 전략이다. ‘진실’이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는 듯한 모습이 딱하기까지 하다.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흔히 “사람들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진실을 알려 주기만 하면 옳은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신화’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들의 기대와 달리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생각의 프레임’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더 강하다.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 결함에도 그에 대한 서민층의 지지가 견고한 것은 ‘현 정권 실정에 따른 정권교체’와 ‘성장의 부스러기라도 만져보자’는 생각의 프레임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진보적이어야 할 것 같은 서민들이 왜 보수적인 투표성향을 나타내는지를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따라서 BBK의 진실이 무엇이든 안타깝게도 그것이 이들을 구원해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데마고그 레이스 뒤에는 언론이 얼굴을 숨기고 있다. 일부 언론들은 자신들의 이해와 입장에 따라 데마고그의 ‘나팔수’ 역할을 충실히 했다. 입맛에 맞는 후보의 당선을 위해, ‘불편부당’해야 할 언론의 본분은 잠시 뒤로 미루는 모습들이었다.
80여년 전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명저를 남긴 독일의 막스 베버는 책에서 “현대의 선동정치는 인쇄된 말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썼다. 20세기 초에 이미 저널리스트들이 최일선에서 데마고그 노릇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 혜안이 놀랍기까지 하다.
어찌됐든 선택의 날은 다가오고 있다. 권선징악의 뻔한 결말을 향해 가는 영화를 보는 것보다도 더 재미없는 김빠진 대선이지만 새로운 시작과 변화라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
결국 선택은 국민의 몫이다. 역사를 보면 대중들은 때로는 현명했고 때로는 우둔했다. 그같은 선택에 따른 대가를 고스란히 떠안아 온 것도 물론 대중들이다. 그런 점에서 “대중들은 결국 자기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는 정치적 금언은 진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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