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짜리 필요한 물건을 2달러에 사는 것과 2달러짜리 필요 없는 물건을 1달러에 사는 것, 어느 쪽이 더 문제일까?
평온한 가정에 종종 부부싸움을 몰고 오는 이슈이다. 전자는 남성의 전형적 샤핑 패턴, 후자는 여성의 샤핑 패턴으로 샤핑에 관한한 남녀가 유별해서 마찰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아내는 남편이 툭하면 바가지를 쓰는 게 못마땅하고, 남편은 세일만 한다면 언제 쓸지도 모를 물건을 마구 사들이는 아내가 불만인 것은 어느 가정이나 비슷하다.
바야흐로 샤핑 시즌 - 즐거운 연말에 부부싸움하지 않도록 서로 조심해야 하겠다.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오늘, 새벽부터 뉴스는 ‘샤핑’ 이다. 크리스마스 샤핑 시즌이 시작되는 이날,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아 샤핑몰마다 샤핑객이 몰려들어 주변의 교통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얼어붙은 주택시장, 치솟는 개솔린 값의 여파로 소비자들의 주머니가 얼어붙는 게 아닌 가 했는데 그도 아닌 모양이다. 몇몇 전자제품 전문 체인점 앞에는 할인 상품을 사려는 고객들이 전날부터 진을 쳤고, 아예 추수감사절날 세일을 한 어느 한인업소에는 평소의 10배가 되는 고객이 몰려들어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고 한다.
연말 경기가 예년 같지 않으리라는 전망에 백화점들은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소비자들이 다른 데 가서 돈을 쓸세라 일찌감치 연말 대세일을 앞당긴 곳도 있고, 한정된 시간동안 아주 파격적 할인으로 눈길을 끈 곳도 있다. 업소마다 아이디어는 달라도 메시지는 하나이다 - “사라. 그리하면 행복해질 것이다”
샤핑 부추기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새로운 상품이 매일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상업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받는 유혹은 ‘사라’이다. 무인도에 가서 살지 않는 한 ‘사라’는 광고를 안 듣고 안 보고는 하루도 살수가 없다. 공기를 호흡하듯 ‘사라’는 끊임없는 유혹을 호흡하며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이걸 사고 돌아서면 더 좋은 게 나와 다시 그걸 사고, 그리고 나면 또 새로운 게 나와 그걸 사느라 돈을 쓰고, 그 돈을 버느라 일에 매달리고, 일을 하느라 사들인 물건을 즐길 틈도 없는 게 우리 보통 사람들의 처지이다.
그러니 “이제는 물건 좀 그만 사고 삶을 즐기자”는 반작용이 ‘물건 안사는 날’(Buy Nothing Day, BND)의 취지이다. 블랙 프라이데이인 23일은 BND이기도 하다. 전국의 샤핑몰을 휩쓰는 세일 열기에 비하면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정도이지만 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15년 전 캐나다의 밴쿠버에서 시작돼 65개국이 참가한 BND는 과소비 반대 운동이다. 소비자 의식 운동으로 시작되었다가 근년 과소비가 환경문제와 접목되면서 지지 폭이 넓어지고 있다. 이들이 내건 모토는 ‘샤핑을 줄이고 삶을 늘리자’ ‘지갑도 휴식이 필요하다’ ‘샤핑을 멈추면 삶이 시작된다’ 등. 샤핑 하는 시간과 돈을 가족·친지들과 즐기는 데 쓴다면 그만큼 삶이 풍요로워지지 않겠느냐는 권유이다.
샤핑은 샤핑만이 주는 만족감이 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얻었을 때의 행복감이다. 특히 여성들은 평소 갖고 싶던 상품을 보면 뇌속 혈맥에 자극이 온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굳이 연구결과가 아니더라도 탐나는 옷이나 핸드백, 구두 등을 보면 짜릿한 흥분에 젖는 것은 대부분 여성들의 체험이다.
그래서 이따금 좀 무리를 해서라도 맘에 드는 물건을 손에 넣는 ‘호사’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살아가며 누리는 재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문제는 샤핑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자극 없는 지루한 생활 속에서 샤핑이 유일한 낙이라면 그 삶은 문제가 있다. 채워지지 않는 욕구, 허무감을 샤핑으로 채우려는 무의식이 있는 지 냉정하게 자신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샤핑,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어느 정도 할 것인가. 연말 샤핑 시즌에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꼭 필요한 물건 구입은 물론 예외이다. 이미 충분히 가졌고, 없이도 살 수 있는 데도 또 사게 되는 우리의 샤핑 습관을 돌아보자는 것이다. 계산대 앞에서 한 가지만 짚어보자. “내가 뭘 사고 있는 가, 왜 사고 있는 가”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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