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를 떠도는 자들은 모두 몸속에 바람의 냄새를 지니고 있다. 흙의 냄새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허공의 냄새를 지니고 있다.
얼굴이 하얀 곱슬곱슬한 금발의 어린아이가 들어왔다. 아이가 마켓 안 입구에 서서 두리번거렸다. “무엇을 찾니?” 그 아이가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술 어디 있어요?” “술?”
그러자 아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여섯 일곱 살 정도의 키와 아기 얼굴인 그러나 벌써 주름이 자글자글한 백인 젊은이가 보였다. 몸은 한 주먹도 안 될 정도로 가냘프고 호리호리했다. 들고 들어온 배낭을 카운터 옆에 놓고 쿨러로 가서 24온스 맥주를 하나 들고 왔다.
“나, 여기에 처음 왔어요” 묻지도 않았는데 그가 말했다. “별을 찾아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별? 무슨 별?”
그가 배낭에서 책을 꺼냈다. ‘명상의 서’라는 책이었다. 순간 감이 왔다. “별은 사방에 많은데 어느 별을 찾고 있니?” “그런 별은 가짜에요. 진짜 별을 찾고 있어요.” 그가 명상의 서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려면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니겠니?” “아뇨. 땅으로 내려온 별을 찾고 있어요.”
그러면서 그는 별을 찾아 수많은 나라를 지나 왔다고 했다. 유럽 어디에서도 별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아프리카의 어느 거꾸로 처박힌 계곡에서 별을 보았는데 그만 놓치고 말았다고 했다. 남미를 지나 남극과 북극을 가로질러 캐나다로 해서 미국에 들어왔다고 했다. 이곳에서도 별을 찾지 못하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조금 난감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이 세상에 이 ‘어린왕자’보다 더 대단한 방랑자는 없는 것 같았다. 그때 그의 몸에서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명상을 하니?”하고 묻자 어린왕자가 대답했다. “그럼요. 별을 찾기 위해 매일 해요. 그리고 졸음이 올 때는 명상으로 베개를 하고 햇살이 따가울 때는 얼굴을 가리지요”
어린왕자가 그 책을 수년 동안 갖고 다니는 것은 분명했다. 겉장이 가죽이었는데도 닳고 닳아 반질반질 거렸고 어느 한 부분은 얇게 가죽이 벗겨져 구멍이 나 있었다. 잠은 어디서 자느냐고 물었더니 흙 위에서 잔다고 했다.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언제 집을 떠나왔는지도 모르고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고향이 어딘지도 모른다고 했다. 길이 자기 고향이고 길이 자기 부모이고 형제이고 길이 자기 집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허공을 가리켰다. 자기는 허공이라고 했다.
“너, 공부 많이 했니?” 하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초등학교도 안 다녔다고 했다. 아주 오래 전 길 옆 흙더미 속에서 자다가 눈을 떠보니 옆에 그 책이 놓여 있었다고 했다. 그 때부터 오직 그 책만 읽기 시작했고 별을 찾아 세상을 돌고 있다고 했다.
자세히 보자 그 젊은이는 생각보다 꽤 나이가 들어 보였다. 적어도 이십대 후반, 혹은 삼십대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도시에 머물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가 고개를 가로 지었다. 그리고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알려 달라고 했다. 내가 조금 생각하다가 한국을 가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 곳이 어딘데? 하고 그가 물었다.
내가 무진장 애를 쓰며 설명을 하자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들었다. “한국엘 가면 틀림없이 별을 발견할 수 있을 꺼다. 한국에는 너처럼 많은 사람들이 별을 찾고 있거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가 고개를 끄덕 거렸다. “한국으로 가야겠어. 지금 당장” “지금 당장? 비행기 예약도 안 했는데?” “필요 없어. 나는 비행기 같은 거 안타고 다녀”
내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바라보자 그가 배낭을 열었다. 그리고는 헝겊조각처럼 너덜너덜한 지도를 꺼내 바닥에 펼쳐놓았다. 호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몽당연필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지도에 코를 박고는 코리아를 찾아 줄을 긋기 시작했다. 지도 위에는 그가 그은 연필 줄이 새까맣게 지구를 덮고 있었다.
내가 카운터를 달려 나와서는 냉큼 그를 잡아 일으켜 밖으로 내밀었다.
밖을 내다본다. 오늘도 한국을 찾지 못한 ‘어린왕자’는 마켓 문 밖 양지에 앉아 99센트 캔 맥주 하나로 하루를 취하며 지도에 금을 긋고 있다. 11월엔 마켓도 계절을 타는지 문 밖에선 지독한 허공 냄새가 풍겨온다.
이윤홍 / 시인·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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