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덕적으로 승리했다. 나는 국민과 나라를 위해 행한 모든 일이 자랑스럽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은 성실한 것이었다. 나는 단지 조국을 방어할 수 있는 시민의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다.”
이 글을 당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언뜻 들으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마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행한 연설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문장은 악명 높은 밀로셰비치 전 유고대통령이 옥중에서 발표한 성명서의 일부이다.
1990년대 유고를 통치한 밀로셰비치는 ‘인종 청소’라는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지르면서 수십만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발칸의 도살자’이다. 그런 밀로셰비치는 재판을 앞둔 가운데 반성은커녕 오히려 자신의 행위를 이처럼 정당화하며 큰소리를 쳤다.
친일논쟁에 휘말렸던 춘원 이광수. 친일에 관한 해명 압력을 받았던 그는 해방 후 ‘나의 고백’이라는 책을 통해 담담하게 자신의 행각을 설명하고 있다. 춘원은 ‘친일파의 변’이라는 챕터에서 자신의 친일 행각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가 내세운 논리란 “나를 희생해서라도 다만 몇 사람이라도 동포를 핍박에서 건지자는 뜻이었다”는 것이다. 당대의 문필가의 논리치고는 지나가던 개도 웃을만큼 옹색하지만 춘원은 “비록 한 중생이라도 네 목숨을 건져 구할 수 있거든 그리하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자신은 그대로 실천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편적으로 ‘자기 봉사적 성향’(self-serving bias)이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자기를 중심으로 해 세상을 바라보고 필요와 상황에 따라 ‘자기 합리화’를 하는데 능숙하다는 말이다.
하기야 원숭이도 자기 합리화를 할 줄 안다는데 인간이야 말해 무엇할까. 지난주 뉴욕타임스는 인간이 비이성적인 결정이나 행동을 하고도 이를 스스로 합리화 하는 것과 같은 능력을 원숭이도 갖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원숭이에게 다양한 색깔의 초컬릿을 놓고 고르도록 하는 방식으로 실시된 실험에서 원숭이는 첫 선택을 합리화 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지속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자기 봉사적 성향’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남이 하면 스캔들이요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멘탈리티이다. 다른 이의 흰머리는 노화의 결과이고 자기 흰머리는 지혜의 상징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은 태도이다. 이런 태도가 대권 도전을 선언하는 자리에 가면 다른 정치인의 대권 3수는 ‘대통령병’이요 자신의 3수 도전은 ‘구국의 충정’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또 자기 합리화를 하는데 빠지지 않고 동원되는 것은 ‘교묘한 논리’이다. 이것을 논리학에서는 ‘곡론’이라고 한다. 곡론인줄 알면서도 교묘히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곡론을 정론으로 착각해 소신 있게 밝히는 경우도 있다. 이회창씨의 대권 3수 선언은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된 곡론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가 알면서도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그런 신념에서 나온 것인지는 당사자만 알고 있을 일이다.
논리는 합리화에 자주 동원되지만 논리가 곧 합리는 아니다. “논리는 합리를 가장할 수 있고 논리는 합리를 배반할 수 있고 논리는 합리를 파괴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논리학이 성행했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논리학 책 표지에 불끈 쥔 주먹을 그려 넣곤 했다. 논리가 지닌 파괴성을 경계하고자 했던 것이다. 과거 철권을 휘둘렀던 독재정권들도 다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논리는 합리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이회창씨 얘기가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자면 그의 출마선언은 ‘언어 오염’의 혐의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출마 선언을 하는 자리에서 ‘살신성인’(殺身成仁)이란 말로 추후 상황에 따라 자신이 이명박씨에게 후보 단일화를 양보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살신성인’은 정의를 위해 목숨을 희생한다는 뜻이지, 기회주의적인 처신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확실히 이길 수 있는 상황임에도 대의명분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말을 써서는 안 된다.
‘정치’를 거꾸로 읽으면 ‘치정’이 된다고 읊은 시인이 있다. 본령에서 벗어나 거꾸로 가는 일그러진 정치를 조롱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대선판을 들여다보노라면 ‘정치’가 아니라 ‘치정’에 가깝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정책대결은 실종된 채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교묘한 논리가 판치고, 온갖 스캔들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후보들간에 볼썽사나운 상호 비난이 난무하는 것이 치정 때문에 공방을 벌이는 연예인 부부들의 이혼송사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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