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하나님과 자녀 만남 계기
인내 키우고 성공으로 가는 과정
지금 세대들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6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을 때 모든 것이 생소해서 하다못해 TV를 봐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못 알아들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래도 그 당시 마음껏 웃게 해준 코미디안이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캐롤 버넷트(Carol Burnett)라는 여자였다. 주로 몸으로 웃기는 스타일이였으니까 체면이고 뭐고 웃음을 위해서라면 주저앉는 자세로 임했지만 프로그램을 마치기 전에 청중의 질문을 받을 때에는 항상 우아하고 이해심 많은 한 중년부인의 모습으로 마무리를 해주었다.
그런데 전주 PBS에서 그녀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나와서 잠깐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렇게 밝고 잘 웃기던 그녀가 너무나도 많은 역경을 겪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아픔에 대해서 같은 코미디안인 필러스 딜러(Phyllis Diller)는 말하기를 “진정한 코미디는 인생의 가장 슬픈 것을 체험하지 못하고는 연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진주의 영롱함이 굴의 아픔의 결정체인 것과 같이”라고.
지난주에는 많은 기사가 신문의 첫 면을 장식했지만 그중 하나는 영사관의 직원과 짜고 일부 유학원들이 한국의 고위층들이 자녀의 병역의무를 기피할 수 있도록 허위 유학증명서를 발부해 주었다는 것이다. 돈과 권력으로 자기 자녀들을 군대라고 하는 시련에서 제외시키려고 한 부모의 보기 민망한 과잉 정성이었다.
이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기 자녀들이 시련을 겪는 것을 바라겠는가! 군대 가면 훈련이 고된 것뿐이 아니라 기압도 받겠고 또 3년 가까이 시간을 낭비(?)해야 하니까 무슨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빠져 나와야겠다고 하는 생각이 발로였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생각인 것이다.
병역기피에 대한 의혹만으로도 한 후보는 대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었고, 또 다른 한 인기정상의 가수는 미국시민권을 얻음으로 한국군으로의 징집을 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 정상급의 인기를 하루아침에 빼앗기고 만 것을 보면서도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뿐만아니라 군대를 포함해서 그 어떤 시련이라 할지라도 시련과 고난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서 오히려 우리에게 힘을 주고 삶의 깊이를 더해 주는 것인데도 말이다.
흔히 말하기를 “젊었을 때의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라던가, “다진 땅에 물 고인다”라는 말이 있다.
시련은 당할 때는 힘들지만 잘 받아들이면 그 시련으로 인생이 다져지게 되고, 그 다져진 인생은 다져지지 않고는 받을 수 없는 큰 축복을 고이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부유층이 보내는 사립 기숙사학교에서도 부엌일이라든가 청소하는 일들을 의무적으로 하게 하고 있고 또 어떤 부모들은 여름방학에는 ‘고생시키는’ 프로그램에도 보내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유명 사립대학에서는 아무 어려움 없이 곱게 자란 학생들보다는 어려운 환경에서라도 이런 역경을 훌륭하게 극복한 아이들을 환영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지역이나 아프리카 같은 어려운 곳에 선교여행 가서 겪은 일들에 대해서 쓴 에세이가 아직도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자녀들을 키울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부모로서는 힘든 일이겠지만, 시련이라는 반찬도 꼭 자녀들의 식단에 빠뜨리지 말라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위대한 간증 중에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3-4)라는 말이 있는데, 젊었을 때의 고난은 꼭 필요한 것으로, 감당만 할 수 있다면 크면 클수록 좋다고 할 정도이다. 생각해 보라, 만약 그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결투에서 골리앗이 9척 장신이 아니라 4척 단신이였다면 그 큰 영광이 다윗의 차례까지 올 수가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만큼 컸으니까 그만큼 큰 영광을 받은 것이고, 또 그가 어린 몸으로 그런 어마어마한 용기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아버지의 어린 양들을 치면서 당한 역경이 9척 장신의 골리앗보다 훨씬 더 컸었기 때문인데, 그때마다 그는 그를 역경에서 구해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아무리 체격이 커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욕하는 어리석음을 보인 이상 소년 다윗은 “그까짓 9척 장신 쯤이야”라고 대적할 수 있는 큰 담대함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가 한국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초등학교 동창회장이였던 필자를 놓고 5-6명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공연한 트집을 잡아 몰매를 주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이 필자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또 다른 한 동창생을 보내주셨는데 그의 덕으로 그 변을 너끈히 면한 적이 있었다.
만일 그 때 그런 위기가 없었다면 나는 그 친구가 그렇게 싸움을 잘 하는지 모른 체 지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위기를 당했기 때문에 그의 그 놀라운 실력을 알게 되었고, 또 4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볼 때 또 그와 비슷한 많은 시련을 당하면서 그 때마다 또 구원의 손길을 체험했는데 나중에는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전혀 우연이 아니었다는 확신과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치 갑옷도 너무 커서 입지 못했던 소년 다윗이 9척 장신의 거인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오히려 소심할 정도의 필자가 그 길에서라도 만날까 무서울 정도의 험악한 중범자들과 몇년째 씨름을 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즉 소위 목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무모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로 전혀 도움을 바랄 수 없는 역경 속에서도 임재하심을 보여주신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에 지금은 목사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 것을 미쁘게 여기신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전혀 엉뚱한 곳에서 마음껏 누리면서 말이다.
(213) 210-3466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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