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로는 넓고 차들은 빨랐다. 길 건너 아파트에서 마켓으로 오는 사람들은 열이면 열 모두 무단횡단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조마조마한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저만치 걸어가 횡단보도를 이용하던 나도 시간이 지나면서 재빠르게 좌우를 살피고는 길을 건너가고 건너오는데 익숙해지고 있었다. 특히 나이 많은 손님이 물건을 잔뜩 사들 때는 내가 앞장서서 마구 길을 건너서는 그 집까지 물건을 갖다 주었는데 그럴 때마다 손님은 “그렇게 막 건너도 돼유?“ 하면서 웃었다.
그 길이 금요일 오후가 되면서 부터는 차량이 몰리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히스패닉 아이들의 집결지가 되고 있었다. 차들마다 자기네 나라 국기를 창밖으로 흔들어 대곤 했는데 그럴 때면 다른 차들도 빵빵거리고 동네의 어린아이부터 노인네들까지 우우우 소리를 지르면서 거리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곤 했다.
젊은이들은 마켓 앞 대로에 일렬로 차를 세우고 마켓 안으로 몰려 들어왔다. 제각기 마실 음료수와 칩 혹은 맥주나 땅콩을 사들고 나가 큰 소리로 떠들어 댔고 여자아이들이 운전하는 차들이 지나가면 차도까지 내려가서 손을 흔들고 휘파람을 불어댔다. 어떤 아이들은 위험하게 차를 따라가면서 말을 붙이곤 했다. 그러면 여자아이들은 길옆으로 차를 세우고 같이 웃고 떠들다가는 함께 차를 타고 어디로 달려가기도 했다.
그 젊은이들은 마켓에 자주 오는 동네손님들과는 전혀 달랐다. 모두 영어를 사용했고 꼭 서너 명씩 떼거리로 몰려 다녔다. 그런 일은 거의 없었지만 다른 패거리끼리 몇 마디주고 받다가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해져서는 집단 패싸움이 벌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부터는 차를 아주 요상하게 모는 녀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길게 늘어선 차량들 사이를 무섭게 질주하다가는 갑자기 턴을 하면서 차가 공중분해 되는 소리로 아스팔트에 깊은 바퀴자국을 남기며 요리조리 빙빙 돌면서 묘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면 온 동네가 길거리로 몰려나와 서서 젊은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댔고 거리는 완전히 히스패닉 일색이 되어 있었다. 금요일 하루, 마켓 앞 대로는, 불법적인 행동이 분명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자기 나라를 떠나와 숨죽이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고 숨통을 트여주는 장소가 되고 있었다.
경찰차들이 길마다 골목마다 배치되고 순찰을 돌아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매주 금요일 오후마다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으로 모여 들었고 더 많은 소란과 교통방해가 생겨났다.
경찰이 길을 봉쇄하기 시작했다. 바리케이드로 길을 막고 이 길로 들어서는 모든 차량을 다른 곳으로 우회전 시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너무나 갑자기 길이 텅 비기 시작했다. 금요일. 토요일.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대로는 차량이 끊긴, 인적이 끊긴 적막한 길이 되었다. 한 길 건너 불빛이 아득하게만 보였다.
그 대로를 따라 줄지어 늘어선 가게들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공청회가 열렸다. 모두들 길을 열어 달라고 요구했지만 공권력은 가게주인들보다 힘이 강했다. 황금 같은 주말에 황금을 잃고 있는 가게주인들이 탄원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에서는 대로 중앙을 따라 중앙 분리대를 설치하기로 했다. 시의 통제와 경찰의 단속이 철저하게 이루어지자 그 많은 히스패닉 젊은이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갔는지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어디로 갔을까?
세 블락 아래로 내려가면 새로 생긴 큰 샤핑 몰이 있다. 그 안에는 아주 커다란 99센트 샵도 있고 온갖 종류의 상점이 들어있다. 금요일 늦은 오후에 물건 하나 사올 일이 생겼다. 별것 아닌 물건이 떨어졌는데, 나한테는 별것 아닌 것이 필요한 손님에겐 별거가 되는 물건인지라 99스토어를 갔다가 깜짝 놀랐다. 젊은이들이 몽땅 다 그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러나 떠들고 깃발을 흔들고 질주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그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곳을 빠져 나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조만간 이곳에도 바리케이드가 세워지리라. 검문검색이 시작되리라. 젊은이들은 다시 모일 장소를 찾아 거리를 헤메이리라. 마켓 앞 대로를 그리워하리라.
이윤홍 시인·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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