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여름동안 우리 산장에서는 먹고 쉬며 최대한 즐기기 위해 온 사람들로 붐볐다. 보트타기, 모터사이클 타기, 낚시꾼들은 하루 이틀 즐기기 위해 많은 장비를 갖고 와서 번거롭게 뗐다 붙였다하고 심지어 텐트 캠핑에도 TV와 에어컨까지 갖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적극적인 사람들은 쉬는 시간도 최대한 효과적으로 쓰며 새 출발의 쉼표를 누렸다.
떠나는 계절과 쾌적한 가을과의 만남을 축하하듯 뽀얗게 핀 갈대를 보니 내게도 새 출발을 알리는 청량한 종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이맘때면 대학 기숙사에 나붙는 9월부터 시작하는 달력이 생각이나 서둘러 글 쓸 준비를 하니 나도 대학생이 된 기분이다.
사업 장부들 대신 공부 할 책들을 내 놓고 책상머리에 앉아 잠시 고추잠자리들의 향유를 보노라니 그동안 글을 쓰며 겪었던 추억과 회한이 교차되어 새삼 지나간 내 시간의 가치를 저울질하게 된다.
40~50대 때 다른 친구들이 모두 사업 현장에서 이민생활의 기반을 위해 생산적인 가치를 인정받으며 열심히 일 할 때 나는 되지도 않은 글 나부랭이를 쓰면서 먹고 노는 철없는 여자취급을 받으며 수필집 시집 장편소설집 단편 소설집 등 아홉 권의 단행본을 내며 열심히 창작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때 동부에서 사업에 성공한 언니가 와서 “성호야 돈 버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니 아나, 아까운 시간 허송세월하지 말고 돈이나 벌어라”하며 한심하다는 듯 나에게 충고를 하고 갔다. 그 날 밤 책장 앞에 가서 “야 좀 많이 팔려줬더라면 내가 왜 그런 한심한 말을 들어”라며 책장에 있던 내 책들을 내 동댕이쳤다가 “미안하다 오죽 글 같지 않았으면 그랬으랴” 하며 다시 책장에 책을 꽂았던 일도 생각난다.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노년에 쉬어야하는 자연의 이치 그답게 살지 못하고 지금 일하며 글 쓰기도 포기하지 않으니 이게 무슨 조화인가! 하기는 나도 젊었을 때 허송세월하지 않았다 다만 돈 안 되는 짓만 좀 했을 뿐이지.
얼마 전 한 독자가 “더 늙기 전에 부지런히 글을 써야 할 사람이 사업 때문에 아까운 시간 다 보내고 있네요” 하는 말을 듣고 내 돈 버는 시간보다 내가 글 쓰는 시간의 가치를 더 인정 해 줘서 속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나는 왜 글 쓰는 일을 꼭 하지 않아도 될 일, 생산성 없는 일로 취급받으면서도 당당하게 대항하지 못했을까? 자긍심이 결여되면 어떤 일도 성공 할 수 없다는데 왜 내 글 쓰는 시간의 가치에 자신이 없었을까?
시간은 부피도 무게도 없고 건너 뛰어 넘을 수도 없다. 그러나 시간을 소유한 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솔직히 내가 사무실 일을 하게 된 것은 늦었지만 나도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 시간을 돈으로 계산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계산 할 일만이 아니었다. 첫 수필집 출간 할 때 출판사의 요구대로 한 달 만에 20개의 수필을 써서 보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2년 전에 청탁 받은 단편하나를 끝내지 못하니 과연 시간 탓 만일까?
모든 것에 때가 있다. 지금은 안질 때문에 그렇게 많이 쓸 수가 없다. 어쩌면 연륜으로 좀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부끄러운 작품집이라도 그때처럼 표현 할 수 없다.
“언니, 돈 좋은 거 알아, 그렇지만 내 작품집들을 꼭 껴안아보는 이 마음 언니는 모를 거야.” 내 작품집이 귀하게 여겨지니 중년의 황금시간을 덧없이 보냈다는 죄책감에서 이제 벗어 날 것 같다.
얼마 전 한 젊은 기자를 만났는데 그가 “글 쓰는 생활을 일생의 업으로 삼겠다”라는 말을 듣고 내 가슴이 뻐근했다. 큰 박수를 보낸다. 시간은 돈이다. 그러나 가치를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귀한 시간들도 많다. 빌 게이츠가 돈 번 시간의 가치는 계산 할 수 있지만 지금 그가 하고 있는 봉사활동은 계산 할 수 없는 무한대의 가치를 지녔다.
지금 되는 것이 없고 고통스럽고 남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최선을 다한다면 후에 분명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자위하게 될 것이다. 행여 실수를 저질렀더라도 깨닫는 순간 그 시간마저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다. 시간은 언제나 현재이고 현재는 과거의 거울이듯이 미래를 잇는 든든한 매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성호 / 시인·RV 리조트 경영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