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자주 타는 미국인들을 상대로 설문을 실시했다. “‘비행기 사망 보험’과 ‘비행기 테러에 의한 사망 보험’ 중 어느 것을 구입하는데 돈을 더 지불할 용의가 있느냐”는 것이 질문이었다. 대다수 응답자들은 ‘테러 보험’을 선택했다.
‘비행기 사망 보험’은 엔진고장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테러에 의한 것이든 탑승자가 사망하면 모든 것을 커버해 준다. ‘테러 사망 보험’은 단지 테러로 사망했을 때만 돈을 지급해 준다. 합리적 사고를 한다면 돈을 더 주고 테러 보험을 살 이유가 없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런데도 응답자들은 ‘테러’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는 보험상품을 구입하는데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9.11 테러가 미국인들의 의식 속에 심어 놓은 두려움의 뿌리가 얼마가 깊은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두려움은 인간이 진화해 오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조사결과는 인간이 가진 두려움이 합리적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아니, 인간은 두려움 때문에 종종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인간은 커다란 위협 혹은 어마어마한 보상과 맞닥뜨렸을 때 ‘결과의 엄청남’에 압도돼 ‘가능성의 문제’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실제로 테러 가능성이 거의 없을 때도 그 끔직한 결과에 포로가 되며 로또에 큰 상금이 걸리면 번개 맞을 확률보다 낮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것이다.
테러리스트들과 정치인들, 특히 최고 권력자들은 이런 심리에 누구보다 정통하다. 얼마 전 영국 런던과 글래스고우에서 발생한 알카에다의 폭탄테러 기도는 미수에 그쳤지만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테러에 대한 두려움에 다시 불을 붙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 장소의 모습이 24시간 TV화면을 점령하고 일상이 혼란 속에 빠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사람들은 다시 한번 테러 공포에 빠져야 했다. 이런 노림수의 정점에는 물론 9.11테러가 자리 잡고 있다.
정치도 두려움을 교묘히 이용한다. 9.11 이후 미국 정치는 가히 ‘두려움의 정치’라 부를 만하다. 알카에다에 대한 두려움은 초창기 대 테러전쟁과 이라크 침공의 정당성 논쟁을 원천봉쇄 시켜 버렸다. 미국인들은 지금 두려움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북한을 정권안정과 유지에 적극 이용했던 과거 한국 정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두려움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것은 왜 사람들이 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비행기를 타는 것을 두려워하는지를 통해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미국에서는 연간 4만명 이상이 자동차 사고로 죽고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은 1,000명 미만이다. 비행기와 자동차 안에 머무르는 시간을 고려해 계산하면 사망률은 엇비슷하거나 비행기가 오히려 낮다.
그런데도 자동차 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비행공포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많다. 그 이유는 통제에 있다. 자동차 운전 중 발생하는 상황은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만 비행 중 발생 상황은 속수무책이라는 데서 무력감과 두려움을 갖게 된다. 결국 리스크를 얼마나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가가 두려움의 크기를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두려움이 우리 의식에서 작용하는 방식은 그림자 연극과 흡사하다. 관객들이 보는 휘장 뒤의 작은 물체들의 움직임이 휘장에는 엄청나게 큰 그림자로 투영되듯이 두려움은 종종 실제 이상의 크기로 우리의 의식을 뒤덮어 버린다.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두려움만큼 행동과 이성적 사유의 힘을 빼앗아가는 감정은 없다”고 말했다. 두려움의 그림자는 이처럼 부정적인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두려움의 실체를 이해하게 되면 여기에 대처하는 지혜 또한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두려움을 냉정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만약 통제가 가능한 것이라면 당장 액션을 취하면 된다. 또 테러처럼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라면 ‘결과의 엄청남’에 압도당하기 전에 현실적인 발생 가능성을 냉철하게 꼽아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고교시절 일반사회 시험을 위해 별 생각 없이 달달 외웠던 “오직 한 가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루즈벨트의 명언이 새삼 의미 있게 다가온다. 두려움이 우리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두려움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삶에 대한 통제력도 저절로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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