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출신의 이정록 시인은 충청도 사투리처럼 구수한 서정시를 쓴다. 그의 시 ‘의자’가 요즘 자꾸 생각난다. ‘의자’ 같이 자신을 내어놓는 푸근함이 아쉬워서 일 것이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의자에 앉아있는 것이여…>
농사일로 평생을 보낸 할머니의 순박한 시선이다. 밭 매고 김매며 몸 아끼지 않고 일하다보니 여기저기 안 쑤시는 데가 없는 것이 노년의 몸. 몸이 아프고 보니 어디가든 기대고 앉을 곳을 찾는 마음만 간절한데, 그런 시선으로 둘러보니 꽃도 열매도 달리 보이는 것이다.
사람이든 꽃이든 세상에 자리 잡은 그 어떤 생명도 저 혼자 잘 나서 꼿꼿한 게 아니라 누군가가 ‘의자’가 되어 받쳐 주는 덕분이라는 그윽한 깨달음이다.
우리가 종교에서 찾는 것은 근본적으로 이런 ‘의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치고 힘들 때 푸근하게 나라는 존재를 받쳐줄 그 어떤 대상에 대한 갈구이다. 삶의 여정에서 상처받은 영혼, 지은 죄 때문에 불안한 영혼을 어딘 가에 좀 기대고 싶고, 그래서 안식을 얻고 싶은 간절한 바람에 사람들은 종교의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종교가 그런 푸근함을 내보이기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기대한다. 사랑 혹은 자비이다. 타자에 대한 지극한 배려로 자신의 희생을 마다않은 위대한 신앙의 모범은 어느 종교에나 있다.
18세기 일본의 선승 하쿠인 선사의 ‘침묵’은 그 좋은 예이다. 선사가 머물던 사찰 아래에 두부 파는 집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두부 장사 부부에게 경악할 일이 벌어졌다. 시집도 안간 딸이 임신을 한 것이었다.
부모의 다그침에 겁이 난 딸은 거짓말을 하고 만다. “아기 아버지는 하쿠인 스님”이라는 말에 부부는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아기가 태어나자 선사에게 맡겨 버린다. 선사는 난감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주위의 조롱 속에 묵묵히 젖동냥을 하며 아기를 키우고, 처녀는 양심의 가책을 이길 수 없게 된 어느 날 실토를 한다. 부부는 허겁지겁 달려와 백배 사죄를 하고 선사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아기를 돌려줄 뿐이었다.
20세기 초반 프랑스의 뒤믈린 신부 케이스도 비슷하다. 신부는 살인죄로 ‘악마의 섬’에 유배되어 25년 형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리의 한 빈민촌에서 한 노인이 참회의 유언을 함으로써 사실이 밝혀졌다.
실제 살인자였던 그 노인은 사건 직후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했었다. 신부는 고해성사 내용을 말할 수 없어 침묵으로 일관하다 보니 살인자로 몰린 것이었다.
아프간 무장단체에 납치되었던 한국의 샘물교회 선교단이 풀려나고 나서 여론이 더 시끄러워졌다. 기독교계에서 뜨겁게 일고 있는 선교정책 전반에 대한 논쟁은 필요한 과정인 만큼 시끄러움이 오히려 반갑다. 하지만 샘물교회 측 태도로 인한 국민들의 실망은 그냥 넘기기 어렵다.
이번 사태의 진행과정에서 교회 측에 가장 아쉬운 것은 내 일처럼 마음 졸였던 국민들, 비기독교인들 등 남을 배려하는 푸근함이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피랍 직후 샘물교회측은 “절대로 선교가 아니라 봉사였다”며 인질사태로 국민들에게 염려를 끼친 것에 대해 가슴깊이 사죄한다고 했다. 피랍자들이 무사히 풀려난 지금 교회측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아프간에서 희생된 두 사람을 ‘순교자’로 부르고, 피랍자들을 탈레반의 개종 압박에 맞선 영웅으로 치켜세우면서 이슬람 국가에 더 많은 선교단을 보낼 의지를 분명히했다.
그런가 하면 한 여성인질의 어머니는 딸이 납치되어 있는 동안 간증집회에 나가서 “하나님이 이 일을 어떻게 진행시킬지 지켜보노라니 신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는 말을 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교회의 목숨 건 선교의지, 생사에 초연한 그 어머니의 깊은 신앙은 그 자체로 존경받을 덕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옳아도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로 입 다물고 묵묵히 고개 숙이는 자세가 필요할 때가 있다.
기독교는 사랑이라는 ‘의자’로, 불교는 자비라는 ‘의자’로 우리가 서로 자신을 내어놓으며 감싸주라고 가르친다. 아무 죄가 없이도 묵묵히 십자가에 오른 예수의 죽음이 그 정점에 있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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