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 가운데 가장 가난한 사람들, 병원균과 벌레가 득실 거려 전염될까봐 모두 피하는 사람들, 죽어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 밥 먹을 힘조차 없어서 먹지 못하는 사람들, 눈물이 말라 더 이상 울지도 못하는 사람들, 접촉이 금지된 사람들 …’ - 그들, 이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 버려진 비참한 사람들을 돌보며 살게 해달라고 30대의 테레사 수녀는 기도했다. 1948년 인도 캘커타의 빈민촌에서 ‘사랑의 선교회’를 시작한 즈음이었다.
당시 그는 수녀로서 행복의 정점에 있었던 것 같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자라던 12살 때부터 수녀가 되고 싶었던 그는 18살 때 집을 떠나 아일랜드의 로레토 수녀원으로 들어가면서 ‘예수의 작은 신부’가 된 기쁨에 빛났다. 이후 캘커타로 와서 가르침의 사역을 하면서 “수녀원에서 가장 행복한 수녀”였고 그리스도의 계시에 따라 빈민구제 사업을 시작한 직후까지만 해도 그는 “내 영혼이 완벽한 평안과 기쁨 가운데 있다”며 행복해 했다.
그런데 무슨 원인이었는지 그 후 50년간 그는 지독한 신앙적 회의로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오는 5일 테레사 수녀 서거 10주년을 기해 발간된 책 ‘마더 테레사: 와서 내 빛이 되라’를 통해 공개된 내용이다.
책은 테레사 수녀가 고해신부들, 교회의 상급자들과 66년간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은 서한집이다. 자신의 내면을 가장 솔직히 드러낸, 글로 쓴 고해성사이다.
타임지가 3일자 커버스토리로 소개한 내용을 보면 테레사 수녀의 신앙적 고뇌는 깊고도 길었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존재를 느낄 수 없어 절망감에 빠지는 일이 수십 년씩 계속되었다. 그의 영혼은 메마르고 캄캄하고 고독하며 비통하다고 테레사 수녀는 썼다.
‘성인’의 이런 모습은 한마디로 충격이다. “신부님, 내 영혼 속에는 왜 이렇게 많은 고통과 어둠이 있는 지 말씀 좀 해주세요”(1959년 편지)라고 절규하는 테레사 수녀를 상상하면 가슴이 메어진다. 기독교 사랑의 화신으로 보이던 테레사 수녀의 미소 뒤에 그런 절망적인 신앙의 갈등이 있었다고 믿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시 되짚어 생각해보면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회의하고 의심하고 흔들리는 나약한 인간의 조건을 그도 가지고 있었다.
반면 그런 인간적 약함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을 빈자들에게 내어줌으로써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가는 노력, 예수의 ‘쓴잔’에 동참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은 것은 우리와 분명하게 구별되는 점, 그의 위대함이다.
위대한 인물의 인간적인 모습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요즘 인도에서는 ‘간디, 나의 아버지’라는 영화가 화제라고 한다.
인도말로 ‘아버지’는 ‘바푸’이다. 그런데 인도에서 ‘바푸’라고 하면 바로 마하트마 간디를 뜻한다. 인도인들에게 그는 ‘하나님 아버지’ 같은 존재이다. 비폭력 무저항주의 운동으로 인도를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구해낸 인도 건국의 아버지이자 마틴 루터 킹, 넬슨 만델라 같은 기라성 같은 민권운동가들의 멘토였던 그는 누구도 이의가 없는 ‘20세기의 위인’이다.
하지만 개인생활로 돌아오면 그는 불행한 아버지였다. 전통적으로 아버지들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장남과의 관계에서 그는 실패했다. 밖에서는 굳건한 원칙과 강력한 지도력의 ‘바푸’였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장남 하릴랄에게는 때로 냉담하고 때로 강압적이며 고집불통이고 이기적이기까지 한 숨 막히는 아버지였다.
국가와 민족이 있을 뿐 개인과 가정의 행복은 뒷전인 아버지 밑에서 아들은 번번이 좌절했고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갔다.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아들은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이름을 압둘라로 바꾼 적도 있었다. 아버지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때 아들은 술과 도박에 빠져 폐인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간디 생애에서 가장 뼈아픈 후회는 ‘잃어버린 아들’이었다.
위인들의 인간적 모습은 우리에게 위안도 되고 용기도 된다. 신앙문제로 회의에 빠진 사람들은 테레사 수녀를 보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자녀와의 관계로 고민 중인 아버지들은 간디를 보면서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인간의 조건을 얼마나 잘 포용하며 얼마나 지혜롭게 극복하느냐는 우리 각자의 앞에 놓인 숙제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