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을 다녀온 친구가 한국에서 들은 조크 하나를 전했다. ‘아들 농담’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 “아들은 태어났을 때는 무촌, 사춘기가 되면 사촌, 대학 가면 팔촌, 결혼하면 사돈의 팔촌, 유학이나 이민가면 해외동포”
나이 들수록 점점 ‘남의 남편’ ‘남의 아들’로 멀어져가는 아들에 대한 서운함이 한국에서는 풍성한 농담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이런 농담 시리즈가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먹히는 것은 동병상련, 아들에 대한 섭섭함이 이곳이라고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아들 딸 구별할 것 없이 모든 자녀들은 성장하면서 부모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처음 열 달은 몸 안에서 같이 살고, 다음 10년은 행여 놓칠 세라 치마 고리 붙잡고 살던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사촌’ 정도로 멀어지고, 대학 가면서 일 년에 몇 번 얼굴 보는 ‘팔촌’으로 멀어진다. 아이들은 그렇게 품에서 떨어져 나가 독립된 성인이 된다. 너무 서운해 할 일도 아니다.
우리의 ‘팔촌’들이 집을 떠나는 개학 시즌이다. 자녀를 처음 대학에 보낸 부모들은 몸의 한 부분이 뚝 떨어져 나간 듯한 허전함부터 자녀교육이라는 큰 숙제 하나를 끝낸 듯한 홀가분함까지, 복잡한 감회로 하루하루가 예사롭지 않다. ‘상실감’이라는 한 끝과 ‘해방감’이라는 다른 끝 사이에서 감정의 추가 어느 지점에 머무르는 지는 순전히 아이의 ‘사촌’ 시절과 상관이 있다.
아이가 사춘기를 심하게 앓으며 속을 무던히도 썩였다면 그 노심초사에서 놓여난 해방감이, 제 할 일 착착하며 도무지 걱정시키는 일이 없던 아이라면 가까이서 볼 수 없는 상실감이 더 크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어떤 경우이든 공통적으로 부모들의 마음을 부여잡는 것은 걱정과 염려 - 물가에 아이를 내놓는 불안이다.
때마침 발표된 버지니아 텍의 ‘조승희 사건’ 보고서는 특히 첫 아이를 대학에 보내는 부모들에게 ‘혹시라도 …’ 하는 막연한 근심의 무게를 더 한다. 지난 4월 정신건강에 이상이 있던 그 청년이 기숙사와 강의실에서 총을 휘둘러 32명을 죽게 하고 자살한 사건은 대형 참사가 이라크 전쟁터도 아닌 대학 캠퍼스에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대학의 자체 보고서는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학생들에 대한 상담과 위험해 보이는 학생들에 대한 감독 강화, 강의실내 잠금 장치와 감시 카메라 설치 등 보안 시스템 강화를 건의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가 감옥이 아닌 이상 매일 수만 명이 드나드는 광활한 캠퍼스에서 안전을 보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사람인데 대학의 학생 관리는 부모들이 안심할 수준이 아니다. 18살 아직 어린 아이를 대학에 보내면서 부모들은 아이에게 문제가 있으면 학교당국이 조치를 취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반면 대학이 보는 18살은 성인이다. 학생의 사생활에 개입할 권리가 없다는 법적 논리를 방패로 부모가 보기에는 반드시 필요한 개입도 학교 측은 하지 않는다. 생전 처음 맛보는 해방감에 들떠 너무 노느라 아이가 수업 빼먹기를 밥 먹듯 할 때 학교에서 부모에게 전화 한통 해주면 얼마나 고마울까. 하지만 낙제를 해도, 심한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도 학교 측은 부모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스스로 깨달아 철이 들도록 만드는 교육적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버지니아 텍의 조승희 케이스도, 몇년전 우울증으로 자살한 MIT 한인여학생 케이스도 아이의 문제를 학교 측이 부모에게 미리 알려만 줬더라도 불행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무촌’도 ‘4촌’도 넘어선 ‘8촌’은 하늘 높이 뜬 연과 같다. 거기 있는 것을 느낄 뿐 눈에 잘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창공의 연처럼 높이 날아 꿈을 이루도록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셈이다. 그 연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 잘못 날아갈까 봐 너무 부여잡고 있으면 연이 날지를 못하고, 너무 풀어놓아 버리면 연은 곤두박질치고 만다.
연줄을 넉넉히 풀어주면서 팽팽한 줄의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비결이다. 아이가 자유를 만끽하며 마음껏 날다가도 필요할 때면 언제든 부모, 그 존재의 뿌리를 느낄 수 있는 관계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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