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 처진 가로수에 햇빛이 투명하게 부서지고 땅에서는 지열이 꿈틀대는, 더위로 시간마저 멈춘 듯한 8월의 어느 오후, 포니테일을 달랑거리며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가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뒤따라서 보호자인 듯한 20대의 여인이 따라다닌다. 7~8세 정도 된 아이는 거침없이 갖고 싶은 것들을 캐시대로 가져온다. 어느덧 많이 쌓였다. 헬로키티, 팅커벨, 프린세스 등 TV에 나오는 캐릭터들이다. 꼬마가 고개를 까닥하니 그 여인이 재빨리 지갑을 열고 계산을 치른다. 영화의 한 장면이 지나가듯 말없이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그리고 그들은 나갔다.
명품으로 휘감은 꼬마의 부모는 누구일까?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려야할 나이에 20대의 보디가드와 주고받을 대화의 장이 어떤 것일까? 그 아이는 행복할까?
달러의 숫자에 얽매여 뛰는 부모 뒤에서 어린 시절을 바람벽을 쳐다보며 공허하게 보내버린다면 자라서도 그 시절은 텅 빈 공간으로 느껴질 것이다. 가장 감수성이 강한 어린 시절이 감성의 네트에 걸리는 것 없는 진공상태라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가능한 한 많이 그리고 가능한 한 더 빨리”라는 구호 속에서 우리는 좀 더 성공하기를 바라며 좀 더 물질적 풍요 속에 좀 더 행복한 생을 유지하려 한다.
루터가 성경을 번역한 후로, 그리고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이후로 지구를 이끌어온 사회적 가치는 종교적 제단을 넘어선 지성의 세계였다. 역사의 나침반이 지적하듯이 삶의 굴곡마다 질문하고 고뇌하는 사람들의 정신의 세계였다.
그러나 사이버 시대인 오늘에는 이성의 역사적 시효는 가고 지식의 약효는 떨어지고 이제 돈이 인간 가치 생성의 기준으로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경제의 기본 단위인 돈은 “글로벌리즘”의 날개를 달고 우리주위를 날아다니며 사람들에게 환상적인 만화경을 굴리고 있다. 그래서 실리적인 우정이나 달러로 계산되는 사랑이나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인 부부 사이에도 돈이 사회적 도덕이고 배경이 되어 하나의 계약행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다 인간의 두뇌를 뛰어넘는 막대한 파워의 컴퓨터 세계가 인간의 한계를 지배하고 있어 더 빠른 정보를 얻어 지름길로 부를 이루려하며 교과서 같은 지식과 명품의 생활을 위해 인간은 소프트웨어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SBS 인기 드라마 ‘쩐의 전쟁’이 너무나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돈과 사랑이 뒤얽힌 희비가 이어지다가 결국 쩐 때문에 비극으로 막을 내려서 아쉽고 허무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사회의 단면을 본 것 같다. 드라마를 통해 사채업, 불법 추심과 금융 등 소외계층의 문제를 정면으로 부각시킨 데 대한 공로로 주인공 박신양과 박진희가 재정경제 부총리로부터 서민금융 정책 홍보대사로까지 위촉되었으니 그 드라마 파장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느끼게 했다.
“돈, 그것은 아무리 되지 못한 인간이라도 최고급의 지위로 이끌어 주는 단 하나의 길이다. 돈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다. 그것은 모든 불평등을 평등하게 만든다”고 일찍이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했다. 간질병과 시베리아에서의 감옥생활, 일생을 괴롭힌 가난과 도박중독으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피폐해진 그는 자신을 일컬어, 선금을 받고 한 챕터의 첫머리가 이미 인쇄소에 가 있는데 그 끝을 어떻게 맺을지도 아직 모르는 “문학 프롤레타리아”라고 했다.
온 세상 수천, 수만의 목소리가 결국 ‘행복’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부르짖고 있다. 행복의 필요조건의 하나가 돈이라면 충분조건은 어디에 있을까?
“산 너머 저쪽 하늘 멀리 /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기에 / 아, 남을 따라 행복을 찾아갔다가 / 눈물만 머금고 되돌아 왔네 / 산 너머 저쪽 하늘 더 멀리 /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지만.” ‘산 너머 저쪽’ 칼 붓세의 시이다.
“행복은 어떻게 이지 무엇이 아니며, 행복은 스스로 느끼는 능력이지 찾아 나설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는 잘 압니다”라고 1901년 헤르만 헤세는 행복의 파랑새는 바로 자신 안에 있음을 칼 붓세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하고 있다.
김인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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