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 손자손녀를 둔 주부들이 여럿 있다. 나이는 보통 60대 초중반. 60년대에 유학을 와서 미국에 정착한, 그 연배로는 최고의 인텔리로 대접받던 여성들이다. 그런 그들이 손자손녀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을 하곤 한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정말 대단해요.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고, 주먹구구로 아이들을 키운 것 같아요”
임신사실을 안 그 순간부터 관련 서적 탐독하고 인터넷 뒤져서, 육아에 관한 온갖 정보들로 무장하고 아기를 키우는 딸들, 며느리들을 보고 하는 말이다.
처음 엄마가 되면 아기가 딸꾹질만 심하게 해도 놀라고, 젖을 토해도 놀라고, 아기가 울 때 금방 달려가야 할지 내버려 둬야 할지, 우유는 시간 맞춰 줘야 할지 아기가 울 때마다 줘야 할지 … 도무지 몰라서 절절 매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의 ‘똑똑이’ 2세 엄마들은 매사에 이론이 정연해서 친정엄마들이 ‘옛날에 아이 키운 경험’을 들이밀며 조언을 해볼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묘한 소외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주부들은 말한다.
요즘 젊은 엄마들과 옛날 엄마들의 육아법 중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은 한마디로 ‘베이비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로 기르자면 태어나면서부터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자면 할 일 다 한 것으로 봐줬던 생후 첫 1년이 이제는 그렇게 한가한 기간이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모차르트, 바하를 듣고, 겨우 앉을 만하면 두뇌 개발용 DVD를 보며, 기기도 전에 수영레슨을 받고, 너덧 달 되면 수화를 배우는 것이 요즘 아기들이다.
구세대 엄마들 눈에는 ‘너무 유난스럽다’ 싶은 이 모든 교육열은 “아기의 뇌가 생후 3년간 가장 왕성하게 발달 한다”는 이론에 근거한다. 그래서 그 어린 뇌를 교육적으로 자극함으로써 아기를 영재로 만들고 싶은 기대에 젊은 엄마들은 설레고, 그런 엄마들의 기대 덕분에 ‘베이비 아인슈타인’ ‘브레이니 베이비’ 등 유아 두뇌개발용품 시장은 호황을 누린다.
지난 2005년 기준 시장규모는 25억 달러. 내 아이 남보다 잘 키우고 싶은 부모들의 경쟁 심리로 시장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유아교육법에 찬물을 끼얹는 연구보고서가 며칠 전 나왔다. 두뇌 개발용 DVD를 보며 자란 아기들은 그냥 어른들 품에서 자란 아기들 보다 말을 더디 배운다는 연구결과이다.
워싱턴 대학 연구팀이 소아학회지에 발표한 내용을 보면 ‘베이비 아인슈타인’ 류의 DVD가 아기들의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1,000여 부모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생후 8개월에서 16개월 사이 유아 중 DVD를 보며 자란 아기들은 그렇지 않은 아기들 보다 말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차이가 하루 1시간 시청 당 6개-8개 단어 비율이고 보면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두뇌를 발달시킨다는 DVD가 왜 해가 될까. 그 시간동안 사람과의 접촉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유사한 연구 결과는 전에도 여러번 나왔다. 일본 소아과학회는 2세 미만 어린이가 TV를 자주 보면 말이 더뎌질 확률이 TV를 적게 보는 아이의 2배나 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영국에서는 너무 어린 나이부터 TV를 시청하면 자폐증에 걸릴 위험이 있다는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지난 해 한국에서는 맞벌이 부부가 일하러 나가면서 아이에게 영어공부도 시킬 겸 영어 비디오를 계속 틀어줬더니 아이가 언어장애 증상을 보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기회를 갖지 못한 데 따른 현상들이다.
첨단 테크놀로지에 현혹되어 근본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두 다리로 걷게 만들어진 사람들이 자동차 문화로 인해 도무지 걷지를 않아서 생기는 것이 성인병이다. 우리 몸의 근본을 망각한 결과이다.
우리 아기 천재로 키우고 싶은 욕심 - 부모로서 자연스럽다. 아기의 두뇌 발달이 가장 왕성할 때 가능한 한 많은 자극을 주려는 시도는 권장할 만하다. 첨단 교육도구들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엄마들이 한가지를 잊지 말았으면 한다. 육아의 근본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귀염 받고 사랑받을 때 가장 잘 자라도록 만들어졌다. 아기를 안아 주고 이야기해주고, 책 읽어주는 가장 평범한 일이 두뇌 개발의 지름길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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