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빈민구호단체, 엠마우스 공동체를 시작한 ‘빈민의 아버지’ 피에르 신부가 처음 남을 돕는 현장에 가본 것은 열한두 살 때였다고 한다.
본래 이름이 앙리인 그는 상당히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자상한 분이었는데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어디론가 나가 집을 비우는 게 어린 그는 궁금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버지를 따라 가본 곳이 노인들을 위한 무료숙박소였다. 퇴역 장교, 사업가 등 평소 신사였던 아버지의 친구들이 그곳에서 남루한 걸인들과 떠돌이들에게 식사도 만들어주고 이발도 시켜주는 모습을 보고 어린 앙리는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한 걸인의 태도였다. 앙리의 아버지가 그의 머리를 깎아주는 데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르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아마도 머리카락이 좀 뜯겨 아팠던 모양이었다. 자신을 위해 남이 호의를 베풀면 당연히 고마워해야 할 텐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고 피에르 신부는 훗날 회고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을 돕기 위해서는 그럴만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한국의 샘물교회 의료봉사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된 후 해외선교·봉사활동이 뜨거운 논쟁거리로 대두되었다. “당장 주변에 어려운 사람, 전도할 사람이 많은데 굳이 먼 곳으로 가야 선교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교회들의 ‘실적주의’가 문제이다. 교인수, 헌금액, 건물규모에 이어 해외 파송 선교사 수로 교회의 위상을 재려는 풍조가 있다”는 비판, 그런가 하면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지마라. 신변안전 따지면서 어떻게 선교를 하겠는가. 순교를 각오하는 것이 선교의 자세이다”라는 교계 일각의 반박도 강경하다.
봉사단을 이끌던 배형규 목사가 피살되고 남은 22명이 언제 풀려날지, 어떤 희생이 또 있을 지 알수 없는 다급한 상황이 되면서, 그들의 안전을 비는 기도가 간절한 만큼 해외선교에 대한 논쟁 역시 잦아들지 않고 있다. 전쟁으로 피폐한 낯선 나라 이교도들에게 기독교적 사랑을 베풀려던 젊은이들의 순수한 열정이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국가적 부담이 되고 만 이번 사건은 교회들에게 중요한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피에르 신부의 아버지가 지적한 ‘남을 돕는 어려움’이 한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시간, 내 돈 들여서 남을 돕다 보면 내가 하는 선행에 도취되어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는 실수를 하기 쉽다.
민족, 문화, 언어, 종교가 모두 다른 해외 선교에서 특히 간과하기 쉬운 것이 이 부분이다. ‘내 종교’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커서 타종교에 대한 배려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번에 인질사건이 터진 아프간은 종교성이 매우 강한 나라이다. 동네 패거리들끼리 싸움이 붙어도 먼저 기도를 하고 나서 싸움을 할 정도라고 한다. 그런 종교적 뿌리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아무리 많은 선교단이 열정을 가지고 봉사활동을 펼쳐도 그들의 마음을 얻기는 어렵다.
테레사 수녀는 생존 시 기부금을 내는 많은 사람들에게 돈보다 먼저 ‘관심’을 부탁했다.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은 구체적인 개인입니다. 구체적인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테레사 수녀의 ‘사랑의 선교회’가 힌두교 사원 한쪽을 빌려 빈민들을 돕기 시작할 때였다. 병든 사람, 길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밀려들어 정신이 없는 데 어느 날 밖이 소란스러웠다. 환자들을 돌본다는 핑계로 힌두교도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킨다며 사람들이 몰려들어 항의를 하고 있었다.
성난 군중을 향해 테레사 수녀는 조용히 말했다. “이들은 아파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일뿐 내게는 기독교인도 힌두교인도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은 테레사 수녀의 섬김의 원칙이었다. 묵묵히 사랑을 베풂으로써 사람들이 스스로 사랑의 본체인 하나님을 느끼고 그리스도에게 끌리도록 하라고 가르치며 평생 그 본보기가 되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는 자격은 바로 그런 겸손한 사랑의 태도일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그러나 성과가 확실한 선교방법이기도 하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