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는 한국사람이 많이 살지만 그런 중에도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 밖에 한국사람을 만나면 여전히 신기하고 반갑다. 내가 2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베벌리힐스에 있는 한 아담한 중국식당 상해주가(Shanghai Grill -9383 윌셔, 310-275-4845·사진)의 한국인 주인 지미 김씨(38)를 만난 것이 바로 그런 경우다.
윌셔와 크레센트 하이츠 코너에 클래리티라는 시사회장이 있다. 나는 이 곳엘 한 달에 두 번 정도 찾아 가는데 어쩌다 영화가 시작할 때까지 시간이 좀 남으면 시사회장서 서쪽으로 반블럭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이 식당의 바에 들러 칵테일을 한잔씩 하곤 한다.
베벌리힐스에 있는 만다린 중국식당이어서 그동안 주인이 중국인이려니 하고 생각 했었는데 며칠 전 바에 앉은 내게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남자가 “박선생님 아니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이 남자가 식당주인 지미 김씨였다. 한국일보 독자로 영화를 무척 좋아해 주말이면 식당 문 닫고 극장에 가 심야프로를 본다는 그와 영화에 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식당에 영화배우들이 자주 들른다는 말에 호기심이 동해 며칠 뒤에 김씨를 인터뷰했다.
식당에 들어서면 카운터 뒤에 이 식당을 다녀간 배우들의 서명이 적힌 사진들이 여러 장 결려 있다. 밥 호프, 리즈 테일러, 프랭크 시나트라,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루실 볼, 소피아 로렌 그리고 뒷 쪽 연회실에는 재넷 리와 준 앨리슨의 오래돼 흐려진 사진이 보인다.
김씨는 최근에 피터 포크와 애담 샌들러가 식당에 들렀다고 자랑을 했다. 샌들러는 트레이닝 차림으로 각본을 들고 와 그것을 읽으면서 식사를 했는데 김씨에게 곧 자기 영화가 개봉되니 보라고 알려주더라고. 그 영화가 지난 주말 개봉돼 흥행1위를 한 ‘척과 래리 결혼하다’이다.
김씨는 단골 손님 중 에스터 윌리엄스를 보는 것이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윌리엄스는 ‘미국의 인어’라 불리며 40-50년대 수중 무용 영화에 많이 나온 팔등신 미녀. 김씨는 윌리엄스가 이젠 나이가 많아 몸이 많이 수척해졌더라고 안타까워 했다.
또 다른 단골 중에서는 변호사 로버트 샤피로와 제이 레노,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허슬러지 발행인 래리 플린트 그리고 클리퍼스의 주인 도널드 스털링등이 거물급. 김씨는 특히 샤피로와 아주 친해졌다고. 공리도 들러 밥 호프의 사진을 보면서 그를 추억했는데 호프의 딸 린다는 김씨에게 아버지의 사진을 떼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면서 카드와 함게 초콜릿까지 보내 왔다고 한다. 그리고 ICM, UTA및 윌리엄 모리스등 연예대행업체 에이전트들도 자주 들른다.
한 동안 커크 더글러스도 자주 왔는데 요즘은 몸이 약해졌는지 그의 부인 앤이 “디스 이즈 미시즈 커크 더글러스”라며 전화로 음식을 주문하고 있다. 또 다른 주문 손님은 명코미디언 시드 시저. 시저는 마늘을 좋아해 음식에 마늘을 반드시 많이 넣으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 식당을 2년 전에 중국인으로부터 인수했는데 처음에는 나이 먹은 배우들이 들러도 누군지를 몰랐다. 스테이시 키치 경우도 오히려 손님들이 가르쳐 줘 그가 두번째 왔을 때 테이블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베벌리힐스 하이에 자녀들을 보내기 위해 한국사람들이 많이 사는 이 동네인데도 한국인 손님은 거의 없다고 한다. 베벌리힐스는 영화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동네이고 또 영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대인이어서 손님도 70% 정도가 유대인이다.
이 식당과 인접한 곳에 있는 식당이 그 유명한 울프갱 퍽이 운영하는 스파고. 김씨는 가끔 뒷 골목에서 퍽을 만나면 서로 “하이”하고 인사를 하는 사이. 김씨를 제외한 4명의 요리사등 나머지 종업원은 모두 중국인들이고 추수감사절 하루 빼고 연중무휴.
김씨에게 무슨 영화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었더니 어릴 때 아버지 손을 잡고 가 본 ‘바이킹’의 마지막 장면을 지금도 못 잊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장면은 커크 더글러스의 바다 장례식이었는데 꼬마 때 감명 깊게 본 영화의 주인공 커크 더글러스에게 이제 음식 대접을 하게 됐으니 참으로 묘한 인연”이라며 웃었다.
김씨는 이 식당을 인수하기 전 어머니와 함께 코리아타운의 플라자 마켓 내 음식백화점에서 한식전문 ‘감자바위’를 10여년간 운영했었다. 칼스테이트를 나온 김씨는 아직 총각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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