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하면서 집을 나갔던(?) 아이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심심하던 차에 반갑기는 했지만 행여 자신이 누리고 있는 자유로운 생활을 간섭받지나 않을까 하여 망설이던 둘째 아이가 ‘귀가’를 결정하게 된 동기가 내심 궁금해졌다. 이제는 충분히 그 자유를 만끽해서 더 이상 미련이 없어서 이거나 아니면 전에 비해 기가 많이 꺾인 나를 간파한 것 아닐까 나름 짐작해 보았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그 결정적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음식이 가득 채워진 냉장고’가 그리웠던 것이다.
하루는 밤늦게 딸그락 거리는 소리에 부엌에 내려가 보니 그제야 들어온 아들 녀석이 참치 캔을 따서 밥 위에다 엎더니만 그대로 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손쉽게 해먹을 수 있는 재료들을 많이 사다 놓았건만 달리 해먹기도 귀찮고, 딱히 해놓은 음식도 없으니 그랬나보다.
“얘 어떻게 그것만 먹니? 다른 반찬이 있어야지. 뭐 김치나 샐러드 먹을래? 김 줄까? 국 좀 만들어 줄까?” “아니 괜찮아, 정말 괜찮아. 맛있으니까 걱정 마, 엄마.”
양념도 하지 않은 걸 김치나 야채도 없이 어떻게 맛있다며 넘길 수 있는지, 먹는 걸 지켜보며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맨 ‘깡통참치 밥’이 맛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나의 입맛 기준을 접고 생각한다면 아들 나름대로 자기 실정에 맞게 고안해 낸 영양가 있고 간편한 음식이라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밥 위에 깡통내용물만 엎어놓은 그 깡통참치 밥은 소박하다 못해 ‘개밥’을 연상케 했고 왠지 내 목까지 퍽퍽해지고 메이게 했다.
며칠 후에 아이들과 ‘참치 밥’ 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너네들 그게 맛있니? 맨 날 그렇게 먹었었어?” “학생들은 다 그렇게 살아, 엄마.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하니까. 근데 영양가도 있고 괜찮잖아?” ‘그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굶은 것도 아니고 허구한 날 참치 밥만 먹은 것도 아닐 텐데 뭘…’ 여전히 편치 않은 마음을 애써 달래는데 이번에는 딸내미가 “엄마, 우리가 먹을 게 가득한 냉장고에 요즘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모르지?”라며 생각지도 않았던 말을 했다.
내 마음까지 소박해지게 만든 딸의 말은 얼마 전부터 새로운 품질관리에 들어간 인터넷의 변화와 함께 내게 ‘초심’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처음 웹의 등장으로 온 세상이 연결되고 아무 제재 없이 쏟아져 나오는 온갖 정보들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흥분했던가. 그 정보가 난무하여 제대로 된 정보를 가려내는데 어려움이 있음에도 여전히 우리는 그 엄청난 양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이미 웹은 ‘정보 쓰레기통’화를 방지하기 위해 거대한 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웹2.0이 바로 그것이다.
웹2.0의 개념은 기존의 평이한 웹사이트와는 달리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내 살아있는 정보의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이 ‘집단지능’이 창출해 내는 가치 있는 정보, 즉 내가 참여하고, 내가 원하는 질 높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누구나 참여해서 엮어가는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의 경우 참여자가 늘어갈수록 그 내용이 안정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블로그’를 이용해서 어떤 주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그 내용을 업데이트하여 이를 구독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동적으로 갱신된 정보를 보내주고, 나 또한 관심 있는 페이지들을 구독하여 수시로 그 갱신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것이다.
자칫 ‘정보 쓰레기 처리장’이 되어 사람들에게서 외면당할 수도 있었던 웹이 필요불가결한 정보마당이 되고자 하는 그 ‘초심’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결과, 더욱 더 활발한 호응을 얻어가고 있다고 본다.
이와는 달리, 보통의 우리는 문제가 심각해져서야 수습책에 나선다. 그때서야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그리고 열심히 노력했던 시절의 마음을 되찾고자 ‘초심을 잃지 말자’는 다짐을 한다. 바라건대 웹이 보여준 ‘초심’의 자세를 거울삼아, 이 소박한 밥상을 ‘초심’으로 기억하며 살아갔으면 싶다. 깡통참치 밥과 냉장고에 음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던 때를 기억하며 겸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매번 밥상을 대할 수 있기를, 삶을 대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김선윤 / USC 도서관 사서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