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의 대부로 새롭게 인기를 얻고 있는 알 고어 전 부통령의 아들이 남가주에서 약물 소지혐의로 체포되었다. 지난 4일 새벽 2시쯤 오렌지카운티의 5번 고속도로를 시속 100마일로 달리는 차량이 있어 순찰대가 정차시키고 보니 강한 마리화나 냄새와 함께 차안에서 마리화나와 몇몇 약물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고어 가문의 외아들인 알 고어 3세가 경찰서를 들락거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4세인 이 청년은 4년 전 워싱턴 인근에서 마리화나 소지 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고, 그 전해인 2002년에는 약물 혹은 알콜에 취한 상태로 운전하다 적발되었다. 미성년자였던 2000년에는 시속 55마일 구역에서 97마일로 달리다 티켓을 받기도 했다.
답답할 정도로 모범생 이미지인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상당히 곁길을 가고 있는 모양이다. 아버지를 쏙 빼어 닮은 젊은 고어를 뉴스에서 보면서 하등 동질감 느낄 일 없던 고어 전 부통령이 갑자기 친밀하게 느껴졌다. “아들 때문에 속께나 썩겠구나” 싶은, 자식 키우는 부모로서의 동병상련이다.
신이 우리에게 자식을 주는 이유는 “세상에 마음대로 안되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을 것 같은 사람들도 자식 때문에 속 끓이는 데는 예외가 없고 그러다보면 삶 앞에서 겸허해지는 것, 그것이 자녀가 존재하는 한 이유인 모양이다.
‘마음대로 안되는 게 자식’이라는 말을 자녀가 어릴 때는 실감하지 못한다. 품에 착착 감기며 엄마아빠라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아이를 보며 “자식 키우는 게 왜 어렵다는 걸까?” 의아한 부모들도 많이 있다. 그러던 아이가 갑자기 뚱해지고 사사건건 반발이고 엉뚱한 행동을 해서 부모를 놀라게 하는 것이 사춘기이다.
특히 여름방학은 학교에서 풀려난 아이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일탈의 모험을 시도하기 쉬운 계절이다. 사춘기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시끄러운 일들이 자주 생긴다.
방학 동안 딸을 SAT 학원에 등록시킨 한 아버지는 며칠 전 난생 처음 딸에게 큰 소리를 쳤다. 보통은 학원 끝날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가는 데 그날은 20분쯤 미리 간 게 탈이었다.
조금 기다리다 보니 학원 정문에서 나와야 할 아이가 제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엉뚱한 데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따져 물을 것도 없이 수업을 땡땡이 치고 픽업 시간에 맞춰 돌아오는 중이었다. 평소 모범생인 딸의 그런 행동을 그는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11학년 아들을 둔 한 주부는 한 밤중에 경찰의 전화를 받고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친구 집에 놀러간 줄 알았던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동네 산정에 올라가 있었고 그중 한 아이 백팩에서 마리화나가 나온 것이었다. 그 산은 평소 10대들이 마리화나 흡연 장소로 많이 이용해서 경찰들이 수시로 순찰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몇 년 전 우리 이웃집에서는 16살짜리 딸이 느닷없이 코걸이를 하고 나타나서 집안이 시끄러웠다. 성격이 괄괄한 이탈리아계 남편은 불같이 화를 내고 딸은 반발하고 그 중간에서 프랑스계 부인은 어쩔 줄을 몰라 했었다.
멀쩡하던 아이들이 10대가 되면 왜 이렇게 문제가 많을까? “아이가 내 속을 썩이기 위해 연구를 하는 것 같다”는 부모들도 있다.
생리적으로 첫째는 호르몬 변화 때문에 충동적이 되고, 둘째는 뇌가 덜 발달되어서 이성적 사고능력이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모의 부속물이 아닌 독립된 자아로서 정체성을 찾고는 싶은 데 어찌 할 줄을 몰라서 터져 나오는 것이 사춘기의 반항적 일탈들이다.
사춘기 자녀는 어린 새와 같은 존재이다. 겨드랑이가 근질근질하며 날개가 돋기 시작해서 혼자 날고 싶은 욕망을 주체할 길 없는 시기이다. 이 어린 새가 용감하게 날기를 시도하도록 여지를 주는 한편 잘못 되지 않도록 행동반경을 분명히 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자녀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은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부모의 마음, 즉 기대가 너무 높아서 문제인 경우도 있고, 자녀 자신이 문제인 경우도 있다. 아이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면 내 욕심이 너무 과한 건 아닌지 먼저 따져보는 게 순서이겠다. 그 다음에는 아이의 눈높이로 아이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엇나가는 자식을 바로 잡는 길은 결국 하나, 사랑뿐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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