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와 대학에서 작은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비좁은 나무상자에 모래를 담고 씨앗을 심은 후 어떻게 자라는 지를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씨앗으로 보면 잔인한 실험이었다. 햇빛도 양분도 부족한 열악한 환경에서 “어디 네가 얼마나 살아내나 보자”라는 실험인 셈이었기 때문이다.
씨앗은 싹을 틔워내었고 줄기도 냈다. 하지만 볼품없는 줄기였다. 연구진은 나무통을 부수고 뿌리를 살펴보았다. 현미경을 동원해 미세한 모근까지 일일이 재서 총 연장을 계산했더니 길이가 1만 km가 넘었다. 어떻게든 자양분을 흡수해보려고 모래 속을 끝없이 헤집으며 뿌리를 내린 결과였다. 그런 필사적인 노력으로 형편없는 줄기일망정 생명을 지켜낸 것이었다.
위안부 결의안이 연방하원에서 일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이 실험이 생각났다. “한번 뿌린 씨앗은 좀처럼 그냥 죽는 법이 없다. 기어이 살아서 어떤 형태로든 모습을 드러낸다”로 조금 둘러 해석하면 그게 바로 지금 일본의 처지가 아닐까 싶어서이다.‘종군 위안부’문제는 극도로 척박한 환경에 뿌려진 씨앗 같은 이슈였다. 싹 틔우기가 쉽지 않았다.
‘종군 위안부’는 잠깐 동안 몇 명이 끌려갔던 사건이 아니다. 길게 잡으면 1930년대 초반부터, 짧게 잡으면 일본 육군성 주도하에 본격적으로 군 위안소가 설치되기 시작한 1937년 말부터 1945년 종전까지 조선의 어린여성 20여만 명이 끌려간 엄청난 규모였다.
그런데도 전후 수십년동안 누구도 그 진상이 세상에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또 다른 비극이다. 진실이라는 씨앗이 싹을 내서 존재를 드러내는 대신 그냥 말라죽어 없던 일처럼 되기를 이해 당사자 모두가 바랬었다.
일본은 자국의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 두려우니 당연히 그러했고, 한국 정부는 대일관계를 염려하느라, 한국사회는 “민족의 수치를 뭐 하러 끄집어내느냐”는 거부감 때문에 쉬쉬했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는 피해 당사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본군의 성적노예로 처참한 생활을 하느라 많은 수가 전쟁 중 이미 사망했고, 종전 후 수치심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현지에 눌러 앉은 사례도 다수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피해자들은 대부분 사회의 가장 변두리, 가장 밑바닥으로 밀려나 과거의 억울함을 이슈로 들고 나올 처지가 아니었다.
위안부 문제가 문제로 제기된 것은 1990년 전후였다. 한국의 기독교 여성단체들이 앞장서고 정신대 대책 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종군 위안부 문제는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냈다. 진실을 담은 씨앗이 싹을 내는 데 거의 50년이 걸린 것이었다. “뿌린 씨앗은 언젠가는 거둬야 한다”는 진리가 일본을 뒤늦게 발목잡기 시작했다.
‘뿌린 대로 거두기’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무엇을 뿌렸느냐에 따라 수확할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은퇴해서 플로리다 템파에 살고 있는 이동우 씨는 하원 위안부 결의안의 외교위 통과를 보는 감회가 남다르다.
위안부 결의안이 연방의회에 상정되고 의원들이 진지하게 논의할 만큼 분위기가 무르익는 데는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밑거름이 되었다. 이씨는 워싱턴 정신대 대책위원회 초대 회장으로 근 10년 일하면서 미국사회에 위안부 실상을 알리는 데 큰 부분을 담당했었다.
위안부 문제가 미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92년 11월이었다. 위안부였던 황금주 할머니가 UN에서 증언을 한 후 워싱턴에 들러 한 교회에서 간증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워싱턴 정대위가 결성되었다. 그때부터 위안부 문제를 들고 일본대사관을 찾아가고, 미국 언론들에 실상을 알리고, 연방의회에서 위안부 전시회를 열고, 연방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설명하고, 필요할 때면 백악관 앞에서 시위하며 미국사회에 지속적으로 알린 것이 지나고 보니 모두 ‘씨뿌리기’였다고 그는 회고한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반인도적 범죄를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을 모양이다.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한 자발적 참여가 뉴욕, 워싱턴, LA 등 미 전국 한인사회를 하나로 연결시키면서 이제까지 없던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 있다. 풀뿌리 운동이다. 수십년 땅속에 묻혀있다 살아난 ‘위안부’ 씨앗이 한인사회에 선물을 주는 모양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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