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혼자가 편해
우리는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 전환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내 엄마’가 아닌 ‘우리 엄마’라는 언어습관이 말해주듯 유난히 우리에겐 집단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래서 때론 집단주의는 ‘선’으로 개인주의는 어딘지 모를 ‘악’으로 규정되기조차 한다. 그래서 기성세대들은 개인주의로 해체돼 가는 신인류들을 보면서 걱정스런 눈빛으로 혀를 차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조직이 개인을 책임져 주지 못하는 직장문화, 직장은 없어도 직업은 있는 시대를 살아가려면 개인이 조직에 대한 의존성을 낮춰야만 한다. 그리하여 나홀로족 혹은 글루미제너레이션(gloomy generation)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것이다. 친구 없이 동행 없이 무엇이든 ‘혼자서도 잘해요’의 경지를 넘어 혼자 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재미있다는 나홀로족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들여다봤다.
시간·장소 남의 눈치 안 보고
밥 먹고 책 보고 영화 보고…
우울 즐기며 혼자 노는데 익숙
■나홀로족이란
나홀로족이란 말 그대로 혼자 노는 걸 혹은 혼자 생활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이들을 지칭한다. 그래서 이들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혼자 노는데 익숙하다. 아니 즐긴다. 혼자임을 즐기기 위해선 무엇보다 남의 눈치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혼자 하는데 익숙해야만 한다.
카페테리아에서 혼자 점심 먹고 스타벅스에 가면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두드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면 당신도 글루미제너레이션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사회적으로 왕따이거나 대인 기피증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들은 조직과 집단을 싫어하기 때문에 나홀로 노는 것이 아닌 혼자 다니고 혼자 즐기는 것이 집단과 어울리는 것보다 신나고 즐겁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다정다감하고 남 배려하는 마음이 유난해 ‘스마일 퀸’으로 통하는 유혜승 (30)씨. 언뜻 혜승씨의 사근사근한 성격을 보고있자면 친구들과 와 몰려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듯싶지만 웬걸.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을 들여다보면 영락없는 나홀로 족이다.
나와 마주하는게 가장 큰 매력
가전제품서 식품등 1인용 상품 너도나도 출시
미국여성 연 900만명 혈혈단신 해외여행 추정
현재 에어 차이나에 근무하는 혜승씨는 혼자 여행하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산책하고, 혼자 책 읽고 영화 보는 것에 달인이다. 본인 스스로를 굳이 나홀로족이라 칭하지 않지만 시간과 장소와 사람에 구애받지 않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실천하는 이다.
그렇다고 나홀로족에 필요충분 조건이 반드시 싱글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 10년 차 주부인 크리스티나 이(36·LA)씨 역시 나홀로족이다.
결혼 후 혼자 있는 시간이 줄었지만 일주일에 몇 차례는 꼭 혼자 걷고, 혼자 책 읽는 시간이 있어야만 덜 불안하다는 골수 나홀로족이다. 그리고 결혼 후에도 간혹 나홀로 여행도 포기하지 못했다고.
“얼마 전엔 4일 여정으로 뉴욕엘 다녀왔습니다. 혼자 박물관으로 극장으로 공원으로 돌아다니다 보면 일상 속 구속에서 해방되는 것 같아 좋지만 무엇보다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죠.”
■혼자 놀기의 진수
요즘 스타벅스는 물론 한인타운 커피샵에가면 혼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커피뿐 아니라 밥 먹으러 갈 때도 혼자 간다. 특히 최근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는 캐주얼 일식당에 가보면 스시바 외에도 혼자서 식사할 수 있게 바 형태로 좌석을 배치하는 추세다.
먹거리뿐 아니다. 나홀로족들이 가장 눈에 띄게 보이는 곳은 여행분야다.
세계적인 관광국가인 호주의 경우 지난해 혈혈단신 호주를 방문한 이들은 2,500만명으로 6년새 20%가 증가한 수치라는 것이 관광청의 발표다.
특히 나홀로 여행하는 이들 중 여성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인데 상무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한 해 900만명의 미국 여성들이 홀로 해외여행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행 외에도 공연 인구 역시 나홀로족이 늘고 있다. 영화는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뮤지컬이나 연극은 혼자 보러 가는 사람들도 꽤 있다. 미술관에는 싱글 관람객이 상당히 많다. 예전에는 이러한 공간에 남녀, 혹은 여여 커플로 짝지어 오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면 최근 들어 혼자 오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이디어 상품도 속속 출시
1인용 가전제품도 늘어나고 있다. 1인용 소형 밥통이나 소형 TV와 소형 냉장고, 이동식 에어컨 등 혼자 쓰기 적합한 가전제품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또 가구업체 아키아(Ikea)는 가구 디자이너 쿠니코 마에다의 ‘4등분으로 나눠지는 4인용 식탁’ 작품을 실제 식탁에 응용해 시장에 선보였다. 4인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식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에 착안해 만들어진 이 식탁은, 4등분된 식탁의 한 조각을 떼어내 혼자 식사할 수 있는 용도이다.
또 안나 마리아 코넬리아의 ‘라이프 드레스’도 글루미제너레이션을 위한 상품이다. 지하철 등지에서 주위가 견딜 수 없이 혼잡하거나 시끄러울 때 라이프 드레스를 입은 사람은 드레스를 들어 올려 머리를 감싸고 지퍼로 잠그면 잠시나마 혼자만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실용성이 있고 없고를 떠나 글루미제너레이션들이 언제 어디서든 혼자만의 사적인 공간을 가지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된 상품이어서 눈길을 끈다.
나홀로족들의 가장 큰 특징은 혼자 여행하는 것을 즐긴다는 점이다. 혼자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통해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글루미제너레이션 유혜승씨>
“남들을 너무 배려하다보니…”
나홀로족들이 대부분 그렇듯 혜승씨 역시 나홀로족을 작정하고 선언한 것은 아니다. 바쁜 친구들과 스케줄 맞출 필요 없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다 보니 자연스레 나홀로족에 돼 버렸다.
“다들 바쁘잖아요. 뮤지컬 한편 관람하는 것에서부터 여행은 더더구나 맘 맞는 이들이라도 스케줄 맞추기가 너무 힘드니까 가고 싶을 때, 마음 내킬 때 혼자만 달랑 떠나면 되니까 무엇보다 편하죠.”
드라이브를 즐기는 그녀는 그래서 LA 인근 어디고 혼자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다.
“얼마 전엔 좋아하는 팝페라 가수인 조시 그로반 콘서트도 혼자 관람하고 가까운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혼자 돌아다니기를 좋아합니다. 물론 하와이처럼 긴 여행도 혼자 하죠. 주변에선 다들 여자가 어떻게 혼자서 하고 걱정들 하는데 혼자 다니다 보면 자신감도 생기고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얻는 것이 더 많습니다.” 최근엔 영화 ‘슈렉 3’도 혼자 봤다는 그에게 아무리 그래도 혼자 다니는 것이 심심하고 신경 쓰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흔든다.
“사실 혼자 하는 걸 즐기는 이들은 어떻게 보면 이기주의와 애타주의가 절묘하게 섞여 있는 이들이에요. 너무 많이 남들을 배려하다보니 오히려 혼자가 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거죠. 거기에 동행의 취향과 입맛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까지 곁들여진 거죠. 결국은 좋아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즐기는 것이 나홀로족이 아닐까요?”
글 이주현 기자·사진 진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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