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희로애락 꽃향기에 담아
‘꽃이 좋아 꽃 속에 산다.’ 평생을 꽃 속에 파묻혀 사는 사람들이다. ‘꽃사랑 모임’(회장 사라 오) 회원들이 그들이다. 그렇다고 꽃처럼 화려하지도 않다. 꽃처럼 햇빛에 목말라하며 ‘일희일비’하지도 않는다. 은은한 꽃향기에 취해 한인들의 ‘희로애락’을 조용히 어루만져온 사람들이다. 꽃을 싫어하거나 지겹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꽃과 함께 살다보니 세상 모든 것이 꽃처럼 밝고 명랑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그런 즐거운 사람들의 모임이다. 현재 회원은 13명. 올해부터 회장을 맡은 사라 오(조은 꽃집)·첫 모임을 시작으로 얼마전까지 애써왔던 김혜욱(올림픽타운 꽃집)·27년 노하우의 정영희(송촌 꽃집)·은퇴한 홍효숙·제일 젊은 제이 이(베스트위시)·새 멤버로 조인한 이영순(글렌데일 콘웨이)·회원중 나이가 가장 많은 김지연(영스화원)·지난달 딸 시집보내 기쁜 앤지 배(앤지 꽃집)·샌타모니카 시어스몰내에서 업소를 운영하는 김경자(팜 시티), 8가의 서연식(8가 꽃집), LA동부의 자넷 정(로빈슨 꽃집), 이현영(에덴 너서리), 그리고 그레이스 김(핑크 꽃집). 한국서부터 꽃꽂이로 이름을 날렸던 쟁쟁한 인물이다.
<꽃집 주인들의 모임 ‘꽃사랑 모임’의 회원 13명중 10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이현영(에덴 너서리), 서연식(8가 꽃집), 앤지 배(앤지 꽃집), 김경자(팜 시티), 김지연(영스 화원), 사라 오(조은 꽃집), 홍효숙(은퇴했음), 김혜욱(올림픽 타운), 정영희(송촌 꽃집), 자넷 정(로빈슨 꽃집). ‘콘로이 글렌데일’의 이영순씨는 만나는 장소가 엇갈려 사진에 나오지 못했다.>
모임 4년째… 회원 경조사 챙기고 기부금 비축 타운 대소사 후원도
동종 업종끼리 경쟁보다는 정보 공유하며 친목 최우선 결속력 단단
“새벽마다 꽃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모임을 갖게 된 동기다.
꽃은 신선도가 생명이다. 그러니 꽃가게 주인들은 새벽마다 다운타운 꽃시장을 제집처럼 드나든다.
수년, 수십년을 오고가다 보면 통성명은 없었어도 늘상 대하는 얼굴들이 친근해 질 수밖에 없다. 눈인사로 시작해 차츰 고개를 ‘까닥’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저런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은, ‘절친한’ 친구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의기를 투합했다. “우리 모임 한번 가져보자” 이래서 시작된 것이 꽃집 주인들의 모임인 ‘꽃사랑 모임’이다.
LA 근교에만 한인 소유 꽃집이 60여개로 추산된다. 남가주 일원에는 200여개가 넘는다니 이제 13명의 회원들 가지고는 숫적으로 밀릴 수밖에는 없다.
처음 인터뷰하자는 제의에 고개부터 내저었다. “그냥 동종업 종사자 몇 명이 시작한 것인데 무슨 인터뷰냐”며 한사코 손사래를 쳤었다.
그동안 한인 꽃집 모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 명이 모여 보기 좋게 시작했다가도 몇 달 안되어 흐지부지 사라져 버리곤 했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꽃사랑 모임’은 벌써 4년째를 넘겼다. 처음 12명으로 시작해 2명이 나가고 3명이 새로 들어왔다. 그동안 은퇴한 회원도 있다. 그렇다고 회원을 골라 가입시키는 ‘로열’ 클럽은 절대 아니다. 혹시 말많은 회원들이라도 들어오면 모임이 망가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했던 것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감이 붙어있다. 단단해진 결속력과 그동안의 노하우까지 겹쳐져 이제는 회원을 늘려나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든다는 것이다. 회원을 늘려 남가주 꽃집 주인들의 협회로 발전시키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꽃사랑 모임’은 친목이 우선이다. 회원들의 경조사에 기쁨하고 슬픔을 함께 하고 위로를 나눈다. 사회 참여도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타운에 나가 ‘감놔라 대추놔라’ 훈수 두는 것은 아니다. 불우이웃돕기 성금, 수재의연금, 스나미 성금, UCLA 한국음악과 기금 등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언제든지 발벗고 나섰다.
이들은 매달 정기모임 때마다 800달러씩 모아둔다. 기부를 위한 비축금이다. 정보 공유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어느 도매업소의 꽃 가격이 좋다’ ‘어떤 꽃이 뜬다’부터 ‘돈 떼먹는 상습 단체장 리스트’까지 다양한 정보를 교환한다. 세금, 비즈니스에 필요한 세미나도 회원 자질 향상을 위한 중요한 일중의 하나다.
꽃은 사람들의 대소사, 경조사에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꽃사랑 모임’ 회원들에게는 직업에 대한 보람과 자부심이 강하다 못해 뜨겁다.
‘새벽을 여는’ 손끝은 상처투성이
장미가시에 찔리고 철사줄에 긁히고
“돈 떼먹는‘악동 고객’정말 싫어요”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그들 말대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꽃을 만질 때면 사명감이 앞서 손길 하나하나 정성을 담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몇몇 회원들에게 “동종업종, 특히 경쟁이 심하다는 한인 꽃집 주인들의 모임인데 단합이 되느냐”고 슬그머니 물어봤다. 그런데 대답은 똑같았다. “경쟁은 무의미 합니다”
한인업소간 과당경쟁으로 ‘허리가 휘는’ 경우가 있다. 이웃가게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도 허다하다. 비즈니스 노하우를 남이 알까 두려워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생각이 바꾸면 행동도 바뀌는 법이다. 이것이 ‘꽃사랑 모임’을 만들게 된 또다른 동기이기도 하다. 어차피 꽃집은 단골 고객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엄마가 단골이 되면 그 집의 대소사는 모두 한 꽃집에서 해결하게 마련이다.
업소마다 개성과 특징이 달라 고객들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들 말대로 경쟁은 무의미 한 것이다.
‘꽃사랑 모임’ 회원들에게서 훈훈한 온기가 피어난다. 은은한 꽃향기에 감싸인 그런 온기가 훈훈함을 넘어 향기롭기만 하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이현영·김경자·정영희·자넷 정·서연식·김혜욱·김지연·앤지 배·사라 오·홍효숙씨>
글 김정섭 기자·사진 진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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