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타운 서라벌 식당에서 또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40대 후반 남성이 지난 22일 총을 들고 식당으로 가서 업주를 쏘아 죽이고 자신도 죽었다. 식당 매니저인 그의 아내와 업주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며 최근 그가 몹시 괴로워한 끝이었다고 한다.
한창 통행량 많은 오후 5시, 경찰차들이 떼로 몰려들고 하늘에는 헬기들이 윙윙 거리고 그 일대 도로는 모두 차단되어서 퇴근길 차들은 이 골목 저 골목으로 꼬리를 물었다. 운전자들이 ‘무슨 일인가’ 싶은 호기심에 고개를 빼고, 예상치 못한 교통체증에 분통을 터트리는 왁자한 소란을 뒤로 하고 악연의 두 남자는 나란히 세상을 떠났다.
‘또 참혹한’이라고 한 것은 최근 이런 류의 사건이 너무 잦기 때문이다. 40대 여성이 재혼남편에게 5발이나 총을 쏘고 자살한 것이 불과 몇주전인데 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좀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버지니아 주의 조승희 총격사건, 워싱턴 주에서 한인 남성이 아내와 장모를 총격 살해한 사건 등 한인들의 가슴이 총성으로 먹먹해질 지경이다.
불교에서는 생로병사를 인간사 네 가지 고통이라고 하지만 세상의 고통이 그뿐이라면 얼마나 간단할까.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의 기본 가지 외에도 숨이 콱콱 막히도록 힘들게 하는 고통의 곁가지들은 많이 있다. 실직으로 인한 암담함, 감당할 길 없는 페이먼트, 배우자의 폭행·외도·도박·약물중독 등 비행, 실연의 충격, 사기·배신으로 인한 파산 등 복잡해진 세상살이만큼 다양한 이유들이 우리를 절망의 늪으로 내몬다.
이번에 살인극을 일으킨 남성도 절망감의 덫에 목이 조인 희생자로 보인다. 이민 온지 20년, 아직 영주권이 없다니 미국 생활은 고달픔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까지 하던 비디오 가게를 접고 남편은 부동산 에이전트로, 아내는 식당 웨이트레스로 나선 걸 보면 비즈니스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 재정은 날로 쪼들리고, 아내는 점점 멀어져 가니 ‘경제 파탄에 가정 파탄’이라는 절망감이 극에 달했던 것같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나락에서 그는 ‘너 죽고 나 죽자’의 극한을 선택했다.
그 캄캄한 절망감, 눈이 뒤집힐 듯한 배신감을 오렌지카운티의 한 독자는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서라벌 총격사건 기사를 읽고 전화를 걸어온 그 주부는 몇 년 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남편의 외도였다.
“일상적 모든 능력이 마비되더군요. 카우치에 쓰러져 일주일을 먹지도 않고 그대로 누워 있었던 적도 있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한밤중에 남편을 찾으려고 헤맨 적도 있어요. 남편이 너무 뻔뻔하고 잔인하게 나올 때는 ‘죽이고 싶다’게 어떤 심정인지 알겠더군요”
그래도 그는 그 시기를 견뎌냈고, 지금은 남편과 아무 일 없었던 듯 행복하게 살고 있다.
절망의 늪에서 그 주부는 살아나왔고, 서라벌의 총격자는 죽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까. “역시 시간을 버는 수밖에 없더라”고 그 주부는 말했다.
늪에서, 절망감에 조급하게 허둥대면 점점 깊이 빠져들어 헤어날 수 없게 될 뿐이다. 눈앞의 현실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시간을 가지고 대처하면 언젠가는 실마리가 풀린다는 것이다.
처음 프리웨이 운전을 배울 때 눈앞으로 달려드는 도로 때문에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도로가 확확 덮쳐드는 데 당장이라도 차가 뒤집힐 것 같았다. 잔뜩 긴장해 코앞만 응시해서 생기는 현상이었다. 눈을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며 운전하니 사면은 평화롭고 길은 쾌적했다.
같은 도로, 같은 운전자인데도 이렇게 다른 것은 한 중요한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바로 ‘마음’이다. 현실자체 보다는 그것을 대하는 ‘마음’이 우리를 절망에 빠트리기도 하고 용기를 갖게 하기도 한다.
불교는 사람에게 가장 해로운 것으로 삼독(三毒), 탐진치(貪瞋癡)를 꼽는다. 탐하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다. 물이 맑아야 얼굴을 비추면 바로 보이는데 이 마음들은 물감 풀어놓은 물, 펄펄 끓는 물, 이끼 낀 물 같아서 현상을 마구 왜곡시켜 우리를 번뇌의 깊은 고통에 빠트린다는 것이다.
절망의 늪에 빠졌을 때 두가지를 명심했으면 한다. 첫째, 모든 것은 끝이 있다는 사실. 아무리 칠흑 같은 어둠도 때가 되면 새벽빛에 밀려난다. 둘째, 목숨이 살아있는 한 끝은 아니라는 사실.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다. 희망을 보려는 마음만 있다면.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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