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출근길에 다이얼을 맞춘 클래시컬 음악방송 FM 91.5 KUSC에 바이얼리니스트 자슈아 벨이 출연해 인생과 음악에 관해 많은 얘기를 들려줬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소리를 들으며 자란 올 39세의 벨은 젊은 나이에 이미 ‘대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큰 키에 잘생긴 얼굴과 부드러운 매너, 그리고 경지에 오른 실력으로 연주회 때마다 관객을 몰고 다니는 클래시컬 음악계의 수퍼스타이다. 특히 바이얼린과 한 몸이 돼 춤추는 듯한 그의 연주스타일은 관객들을 깊이 빨아들이는 마력이 있다.
자슈아 벨은 라디오에 나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가운데 지난 1월12일 금요일 아침 워싱턴 D.C.의 한 지하철역에서 맛봐야 했던 쓰디쓴 경험에 대해 털어놓았다. 벨과 워싱턴포스트지는 사람들이 주변의 아름다움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가는지를 실험하기 위해 출근길 가장 붐비는 D.C.의 랑팡플라자 지하철역에서 거리 연주회를 갖기로 했다.
청바지에 긴팔 티셔츠를 입고 야구 모자를 눌러 써 완벽히 거리의 악사로 변신한 벨은 오전 7시51분부터 43분간 열정을 다해 연주를 했다. 그가 연주한 곡은 바흐의 ‘샤콘 d단조’와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등 2곡. 거리 연주에 사용한 악기는 1713년 제작된 스트라디바리우스로 350만달러짜리였다.
그러나 세계최고의 연주자와 세계최고의 악기가 동원된 거리 연주는 ‘흥행’에 참패했다. 벨이 연주하는 동안 그의 옆을 지나간 사람은 총 1,097명. 이 가운데 가던 길을 멈추어 선채 1분 이상 벨의 연주에 귀를 기울인 사람은 단 7명이었다. 또 지나가면서 돈 바구니에 돈을 던진 사람은 27명으로 43분 연주동안 모인 돈은 32달러17센트였다. 당초 이 실험을 기획하면서 워싱턴 포스트는 사람들이 벨을 알아보고 몰려들어 생길지 모를 사고를 걱정했다는데 결과적으로 쓸데없는 기우가 되고 말았다.
벨은 거리연주를 하면서 무척 떨었노라고 털어놓았다. 수천명의 최고 수준 관객들 앞에서도 당당하던 벨이 거리연주회에서 떨다니 웬일. 그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100달러씩 하는 연주회 표를 사고 들어온 사람은 일단 나를 인정한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거리 연주회에서는 내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모르니 긴장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는 연주를 시작한지 몇 분 지났을 즈음 한 행인이 처음으로 1달러를 놓고 갔을 때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주회에서 분당 1,000달러를 받는 세계 최고수준의 연주자가 단 1달러에 감격했다는 사실은 작은 ‘칭찬’과 ‘인정’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벨은 수차례 이런 말을 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아름다움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가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자슈아 벨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떠올린 것은 ‘Stop and Smell the Roses’라는 영어 속담이었다. ‘잠깐 멈추어 서서 장미의 향기를 맡으세요’라는 뜻의 이 속담은 앞만 보고 종종걸음을 치는 우리 삶에서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여유를 상실하고 살아가는 삶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문구인지라 노래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곡이 팝 컨트리 가수인 맥 데이비스가 지난 1970년대에 크게 히트시켰던 ‘Stop and Smell the Roses’이다.
때때로 유행가 가사는 심오한 철학서적이나 종교적 가르침보다도 더 큰 공감으로 우리 마음에 다가오는데 맥 데이비스의 노래가 바로 그렇다. 곡조보다 가사가 좋아 히트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구글을 뒤져 다시 찾아낸 노래 가사를 우리말로 옮기니 대충 이렇다.
<여보세요 남자양반. 어딜 그리 급하게 가고 있나요. 삶에는 일과 근심 말고도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삶에서 가장 달콤한 것들은 공짜랍니다. 그것들은 바로 당신 눈앞에 있죠./ 이제 잠깐 멈춰 서서 장미의 향기를 맡아 보세요. 그리고 매일 당신이 받은 축복을 헤아려야 합니다. 천국 가는 길이라도 잠깐 서서 장미 향기를 맡아 보지 않는다면 그 길은 거칠고 험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거예요./ 아침에 일터로 나서기 전 가족과 시간을 함께 했나요. 부인에게 입맞춤하며 아름답다고 말했나요. 아이들을 가슴으로 안으면서 부드럽게 사랑했나요…>
지난 2004년 발표된 코넬대학교 리프 반보넨과 토머스 길로비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새 차나 새 옷 같은 ‘물건’을 구입할 때보다 연주회에 가는 것 같은 ‘경험’을 살 때 더욱 행복감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조사 결과는 데이비스의 노래 메시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삶에서 가장 달콤한 것들은 공짜’라는 구절이 특히 가슴에 깊이 와 닿는다. 우리는 돈 들이지 않고 혹은 돈을 아주 적게 들이고 얻을 수 있는 행복한 경험이 주위에 널려 있는데도 이것을 외면하고 먼 길 돌아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자문해 볼 일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