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앞에‘안좋은 학군’은 없어요
한인 학부모들이 거주지를 옮길 때 최우선적으로 손꼽는 기준은 학군이다. 자녀가 취학 연령이 되면 30~40% 더 비싼 집값을 감수해 가며 백인 중산층 학군으로 이사 간다. 교육 경쟁력이 낮은 대도시 한복판 학교보다 더 우수한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근교도시 학교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서다. “아직도 코리아타운에 살아요?”라는 말은 “어떻게 거기서 아이들 교육을 시키나”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그러나 꿈이 있는 아이들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다들 기피하는 도심지 고등 학교를 다니면서도 당당히 명문대에 입성한 한인학생들이 있다.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던 주변 환경을 성공의 디딤돌로 사용한 LA 하이스쿨의 서동휘(19), 사이먼 김(18)군, 자넷 김(18)양과 벨몬트 고등학교의 최새롬(18)양의 성공담을 들어본다.
캘리포니아주 공립교육의 자존심이고 신흥 아이비리그로 각광받는 UCLA에 당당히 입학한 LA 고등학교의 자넷 김양, 사이먼 김, 서동휘군(왼쪽부터). 이들은 꿈이 있으면 환경이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히스패닉·흑인 학생이 90%차지
과밀 해소 위해 3개 트랙 나눠 등교
수업 어수선… “그러나 포기는 없다”
대학측도 ‘환경극복 의지’높이 평가
자넷 김양은 한인타운에서 태어나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100% 코리아타운 걸’이다. 신흥 아이비리그로 불리는 UCLA 진학을 계기로 한인타운을 처음 벗어나게 된 셈이다.
서동휘군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말 핍박을 피해 경북 의성에서 만주로 이주한 중국동포 이민 3세다. 중국 하얼빈에서 태어나 성장한 서군은 지난 2003년 LA로 이민 왔고, 미국생활 4여년 만에 명문대에 입성하게 됐다.
LA에서 태어나 성장한 한인 2세 사이먼 김군은 전직 언론인인 아버지를 따라 7학년 때 하와이로 이주했다가 9학년 되던 해 부모와 함께 다시 귀향했다. 그때부터 LA 고교를 쭉 다니며 대학 갈 준비를 했다.
한인 삼인방은 비효율적으로 알려진 ‘이어 라운드’ 학사 일정 중에서도 악명 높은 ‘트랙 B’에 속해 있다.
LA 고교의 재학생들은 과밀학급 현상 때문에 A, B, C트랙 순서를 바꿔가며 등교한다. 학교 학사 일정표에 따르면 트랙 A의 1학기는 8월말~12월말, 2학기는 3월 초순~6월말 시행된다. 트랙 C의 경우 7월초~10월말, 1월초~4월말 각각 1, 2학기가 시행된다. 학교가 없는 기간은 방학이다.
트랙 B는 학사 일정이 더 뒤죽박죽이다. 2006~07년 1학기의 경우 지난해 7월5일 새 학기가 막을 올렸으나 개학 55여일만인 8월29일부터 방학에 들어갔다. 남겨두었던 1학기 잔여 수업은 11월30일부터 다시 시작됐다가 20여일 후인 12월22일에 종료됐다. 2학기의 첫 부분은 1월2일부터 3월2일까지, 나머지 절반은 지난 4월40일부터 6월29일까지 진행된다. ‘2개월 등교→2개월 방학→2개월 등교→2개월 방학’을 하며 한 해를 보내는 것은 물론 다른 학생들이 한참 열심히 공부할 때 방학 중이고, 다른 학생이 방학 중일 때는 공부해야 하는 사정이다.
이런 현실은 이들의 발목을 잡지 못했다. 김양은 “LA 고교에서 살아남기”위해 이를 악물었다. 방학 기간에는 공부 리듬을 깨뜨리지 않으려 힘썼다. 자습을 통해 배운 것은 다시 점검했고 앞으로 배울 것에 대한 예습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주 중단되는 학사 일정에도 불구하고 영어, 통계, 화학 등 AP반만 8개나 들었다. 대학 입시에는 꼭 필요하지만 트랙 A, C에만 제공돼 들을 수 없는 과목들은 LA 시티칼리지에서 수강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엔지니어를 꿈꾸는 김군의 경험도 비슷하다. 트랙 B 학기 중에서는 LA 고교에서, 방학 때는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녔다. 김군은 “시간표 작성에 문제가 있어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니기 시작했다”며 “부모님에게 실패하는 모습을 도저히 보여줄 수 없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화공과에 진학하는 서군은 중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대입을 5,000미터 달리기 경주로 비교하자면 다른 학생들이 2,000미터를 달린 후 레이스에 뛰어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LA 고등학교에 입학 후에는 ESL 벗어나기에 목숨을 걸었다. 서군은 재학생 4,104명(2006~07년 학기) 중 1,966명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을 위한 ESL 수업에 정체돼 있는 상황 속에서도 1년 만에 영어 미숙아반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밤잠 안자고 공부에 매달린 결과, 미국에서 태어나 부유한 가정한 자란 아이들도 낙방하는 UCLA에 입학했다.
이들은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해외여행 같은 식의 방과 후 활동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학 측에 리더십과 봉사정신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개척했다.
이들이 재학 중인 LA 고등학교의 주류는 히스패닉이다. 재학생의 80% 정도다. 흑인은 10%, 한인 등 아시아계가 8%, 필리핀계와 백인 등 ‘기타’ 인종이 나머지 2%를 차지한다.
‘백인 많은 학교=좋은 학교’란 편견을 가진 한인 학부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통계지만 이를 오히려 좋은 기회로 이용한 것이다.
서군이 에디 김 같은 학교 친구들과 만든 ‘멜팅팟’이란 클럽이 좋은 사례다. 학교 내 다른 인종 간 어색함이 없었다면 다인종들이 각자의 차이를 없애고 효율적으로 융화하는 용광로 같이 함께 어울리는 학교생활을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지 못했을 것이란 설명이다.
김양은 토론클럽 2년 활동으로 자신의 원서가 돋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지 친구들과 함께 학교 내에 독서클럽을 설립했다. 또 ‘멜팅팟’이란 단체의 부회장 역할도 맡았다. 김군은 교회 농구리그에서 3년 동안 ‘슈팅 가드’로 활동했다.
한인 삼인방에 따르면 비효율적인 학사 일정, 대학 준비에는 못 미치는 수업 내용 등 시스템적 문제보다 이들은 더 힘들게 한 것은 환경에 지배당하며 자포자기한 동급생 때문에 조성된 어수선한 면학 분위기였다.
차분하지 않은 공부 환경은 LA 통합교육구 자료에 잘 나타나 있다. 지난 2005~06년 학기 LA고교 평균 출석률은 86%선. 수백 명의 학생이 매일 무단결석을 하는 것이다. 1,320명이 정학됐던 2003~04년 학기 때보다는 크게 감소된 수치지만 지난 학기동안 싸움, 무단결석 등 갖가지 교칙위반으로 정학 처분된 학생은 453명이나 됐다.
김양은 “공부하는 분위기가 아니다보니 집중하는 그 자체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김군 또한 “수업시간 중 잡담하고 주위를 산만하게 친구들과 거리를 두는 것이 어려웠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밤잠을 설치고 주변 친구들의 유혹을 뿌리쳐가며 공부에만 집중한 결과, 김양은 SAT 2,120, GPA 4.4의 성적을 거두었다. 김군은 SAT 1,880, GPA 3.89, 서군은 SAT 1,800점대, GPA 4.2를 기록했다.
통상 한인 학부모와 학생들이 알고 있는 ‘UCLA 합격선 점수’와 차이가 있는 것에 대해 UC 관계자는 “포괄적인 신입생 전형의 결과”라고 밝혔다. 한인 삼인방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일반적인 신입생 선발기준을 말하는 것이라 단서를 단 이 관계자는 “출신 학교의 분위기, 그런 환경을 극복한 학생들의 의지, 지도력, 봉사정신 등이 모두 고려된다”며 “성적표, 입학원서와 에세이, 교사 추천서 분석을 통해 지원자 자질을 소상히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내 공립학교들 간 교육 경쟁력 잣대로 사용되는 API가 발표될 때마다 저조한 점수를 보이고, 지난 2006년 API 522점을 받은 LA 고교에서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돌진한 이들의 노력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한인타운에 살면서도 김양을 UCLA에 입학시키는데 성공한 어머니 김혜숙(46)씨는 “애가 어릴 때부터 한글 신문을 통해 대 입정보를 수집하다보니 좋지 않은 환경을 극복한 학생들을 높이 평가하는 입시정책의 방향을 알게 됐다”며 “부모의 소신을 따르면서도 산만한 주변환경에 흔들지 않고 앞길을 찾은 딸이 너무 대견하다”고 말했다.
<김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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