훤칠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하며 부리부리한 눈매가 정말 잘 생긴 젊은이였다. 갈색의 긴 머리를 뒤로 묶고 있었는데 막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같았다. 얼굴과 손 팔뚝 그리고 작업복에는 흰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는데 그대로 들어오기가 조금 부끄러웠는지 밖으로 나가 대충 먼지를 털고 다시 들어왔다.
전에는 언제나 이 곳을 들렀었는데 마켓 뒤 동네 안쪽으로 이사한 뒤로는 수년 만에 처음 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마켓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정말, 몰라보게 변했네.”
전에는 마켓을 들어서면 쾌쾌한 냄새에 어둠침침하고 먼지투성이에다가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는데 너무 밝고 너무 깨끗하고 냄새도 하나 없는 것이 너무 좋아졌다고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리고는 99센트 캔 맥주를 열개나 사들고 나갔다.
그날부터 토니는 우리 마켓의 손님이 되었다. 단 하루도 안 거르고 가게를 찾았다. 토니는 올 때마다 점점 더 마켓이 좋아진다고 하면서 자기 누나도 데려와 소개를 시키고 그 동네 친구들도 데리고 왔다.
어느 날 저녁 토니가 한 여자와 귀엽게 생긴 어린 소녀와 함께 마켓을 들어오더니 싱글벙글 웃으며 소개를 했다. “내 아내와 딸입니다.”
토니의 아내는 피부가 백인처럼 희고 눈매가 고왔다. 딸 애니는 열두살이라고 했다. 아빠 엄마를 닮아 정말 귀엽고 예뻤다. 내가 환영한다고 하면서 애니에게 초컬릿 하나를 주니까 처음에는 사양하다가 수줍게 받아서는 얼른 호주머니에 넣었다.
토니는 맥주를 사고 아내는 고기와 반찬거리를 사고 애니는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초컬릿을 만지작거렸다. 손을 흔들며 나가는 토니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러던 토니가 몇 달 후 어느 날부터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매일 오는 누나도 오지를 않았다. 토니의 아내와 애니도 오지를 않았다. 토니의 친구들에게 물어보아도 아무도 무슨 일인지 모른다고만 했다. 궁금 속에서 한 달 반가량이 지나갔다.
한가한 오후였다. 정육부에 앉아 있었는데 문을 열고 한 사내가 들어섰다. 커다란 환풍기를 통해 내리 꽂히는 빛 때문이기도 했지만 99센트 캔 맥주를 꺼내며 손을 흔들고 있는 저 사내가 토니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키는 한 뼘 이상 줄고 얼굴도 몸도 반쪽으로 쪼그라져 있었다. 모자를 벗자 아름다웠던 갈색 머리칼은 다 사라지고 쥐가 뜯어먹은 머리가 드러났다. 눈만 휘둥그레 더 커 보였다.
토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눈물이 솟아나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이제 겨우 서른두 살. 고향을 떠나와 막노동판을 전전하면서도 한 번도 힘들다는 생각을 안했다는 토니. 이제 막 자립하여 자기 일을 하기 시작한 토니. 돈을 벌면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 형제와 함께 커다란 농장을 사서 가꾸기를 꿈꿔온 토니. 그 토니가 죽어가고 있었다.
애니와 아내는 고향 멕시코로 보냈다고 했다. 자기는 이곳 누나네 집에 당분간 더 머물면서 항암치료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으면 고향으로 돌아갈 거라고 했다.
의사가 맥주는 마셔도 된다고 했다며 99센트 맥주 3개를 집어 들었다. 나는 토니가 내미는 돈을 도로 건네주면서 다시 돌아와 기쁘고 어서 건강해져서 아내와 애니를 만날 수 있도록 하라고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고맙다고 웃는 눈에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토니가 다시 매일 맥주를 사 갈 때마다 나는 정말 의사가 토니에게 맥주를 마셔도 된다고 했는지 토니에게 맥주를 팔아도 되는 건지가 궁금했지만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지금 토니에게는 맥주만이 유일한 위로요 낙인 것 같았다. 점점 누나가 혼자 와서 토니의 맥주를 함께 사가는 날이 많아졌다.
일요일 아침, 마켓 뒤 파킹랏에 차를 세우고 내리는데 토니의 누나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를 보고는 잰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토니의 아내와 애니가 어제 다시 돌아왔다고 말했다. 마켓을 보면서 토니의 누나는 99센트 맥주를 한 박스 집어 들었다. 가족 재회 파티를 연다고 했다. 축하 한다고 하면서 애니에게 주라고 사탕 몇 개와 과자를 집어 주었다.
그날따라 올려다 본 하늘이 유난히 푸르렀다. 토니의 누나가 무거운 장 보따리를 양 손에 들고 저만치 길을 건너 집으로 가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토니가 가족과 함께 고향 멕시코로 돌아갈 수 있기를 빌었다.
이윤홍 시인·자영업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