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가구업체 주가를 유심히 지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보수와 진보 언론들이 침대 세일즈에 열심히 나서고 있으니 말이다. 브랜드명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도적이다. 그는 지나가는 여행자에게 “누가 드러누워도 꼭 맞는 침대가 있으니 자고 가라”고 꾄다. 여행자를 쇠침대에 눕힌 후 침대보다 키가 더 크면 다리를 잘라 버리고 반대로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목을 늘려 침대에 맞춘다. 이 엽기적인 도둑의 침대는 “무리하게 자기 기준에 맞추는 혹은 억지로 획일화하는”이라는 뜻으로 사전에 올라 있다. 어떤 사회적 현상을 억지로 특정 이론이나 입장에 맞추려는 경향을 그래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 부른다.
보수와 진보 언론은 도저히 메울 수 없을 듯한 이념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가지는 효용성에 관해서는 같은 태도를 보여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더니 최근 한미FTA를 기점으로 그 도가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보수와 진보 언론들이 보이는 행태는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보수매체들은 FTA 타결에 대해 ‘제2의 개국’이니 ‘제3의 개국’이니 하면서 한 목소리로 극상찬을 늘어놓고 있다. 무엇을 기준으로 ‘제2의 개국’과 ‘제3의 개국’이 갈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들 언론은 FTA가 나라의 문을 새롭게 여는, 또 다른 건국의 의미까지 지닌 역사적 사건이라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 반면 일부 인터넷 매체를 중심으로 한 진보언론은 어떠한가. 어떤 매체는 FTA 협상을 매국행위로까지 매도하고 나선다.
보수언론들은 협상팀을 월드컵 영웅 묘사하듯 ‘태극전사’라고 부르고 다른 쪽에서는 같은 협상팀을 일본에 나라를 팔아 넘긴 이완용을 빗대 ‘×완용’이라고 비난한다. 한미 FTA 협정은 분명 하나인데 이처럼 두 진영 매체들은 병존하기 힘든 인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왜 이런 혼란스런 일이 생겨나는 걸까. 그 대답은 바로 이들이 갖고 있는 무쇠처럼 튼튼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있다. 협상 결과를 ‘친미’와 ‘반미’라는 자신들의 침대에 맞춰 재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협상에 대한 평가는 그 결과물이 나온 뒤에 냉정하고 차분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보수와 진보 언론들은 협상이 개시되기도 전부터, 그리고 협상이 한창 진행중일 때 벌써 협상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정해놓고 있었던 듯하다. 사안의 흐름을 보고 입장을 정하면서 건강한 토론을 유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일단 입장을 정한 후 그에 맞는 내용들만 추려내 자신들의 논조와 입장을 합리화하는데 열심이다.
국가간의 협상은 쌍방의 양보와 타협으로 이뤄진다. 미국으로서 아쉬운 부분이 있을 것이고 한국이 양보한 내용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양측의 득실이 정확히 50대50으로 나뉘지는 않더라도 40대60 정도는 됐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래서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한 평가도 “그런대로 괜찮았다”라든가 아니면 “조금 아쉽다”는 정도로 내려졌어야 했다. 그런데도 이런 논조와 목소리는 극단의 여론몰이에 파묻혀 잘 들리지 조차 않는다.
신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려면 뼈와 뼈의 부딪힘을 막아주는 연골조직이 튼튼해야 하듯이 사회와 국가가 건강하려면 이념의 충돌로 생기는 진동을 완화시켜 주는 완충구조가 튼실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말하자면 중산층일 것이고 이념적으로는 중도가 그렇다. 균형잡힌 시각을 제시하는 언론들이 더욱 많아져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조금 엇나간 얘기지만 현재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진영이 갈수록 삐걱거리는 것도 그동안 완충역할을 해 주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진보주의자들은 낙태법을 손봐서 원치 않는 아이들을 태어나기 전에 없애려 한다. 그에 반해 보수주의자들은 사회보장법을 손봐서 원치 않는 아이들이 태어난 후 굶어 죽도록 한다.” 언론인 샐리 해스의 비유인데 경직된 이념이 가진 독소를 실감나게 경고하고 있다.
과연 우리 마음속에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놓여 있지 않은가. 세상사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이에 맞춰 재단하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번 자문해 볼 일이다.
그렇다면 프로크루스테스의 최후는? 그는 테세우스에 의해 자신의 침대 위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다. 이것이 신화의 교훈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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