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밸런타인스 데이에 신문사의 한 동료 앞으로 꽃이 배달되었다. 처음 그는 어리둥절했다. 결혼 20여년동안 꽃과는 담을 쌓은 남편이 새삼스럽게 보냈을 리도 없고 그렇다고 달리 꽃을 보낼 만한 사람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의아해하며 카드를 열어보니 백지 카드에는 ‘후배 일동’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후배 일동’이라면 어떤 후배 일동일까?” -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일동’의 정체는 잡히지 않았다. 그때 문득 그의 눈에 띈 것은 카드에 인쇄된 꽃집 전화번호였다. 꽃집에 전화를 걸어 알아보니 한 후배가 보낸 꽃이었다.
그 동료는 최근 상당히 낙심이 되는 일을 겪었었다. 어깨 축 쳐진 그에게 ‘힘내시라’고 평소 별로 가깝지도 않던 후배가 익명으로 꽃을 보내준 것이었다. 예상하지 못하던 곳에서 날아든 배려는 감동이 배로 커지는 법 -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워했다.
물질적으로 잘 살게 되면 사람들은 일을 덜해도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20세기 초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는 이런 장밋빛 예언을 했었다 - 앞으로 100년 후 영국은 경제적으로 8배는 더 잘살 게 될 것이다. 그래서 원하기만 하면 일주일에 15시간 정도만 일해도 될 것이다.
그가 말한 100년 후는 2030년이다. 지금 추세라면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지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20세기 초에 비해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까?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아울러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은 시대를 살고 있기도 하다. 보통 직장인들은 출퇴근 시간까지 합쳐 하루의 절반 이상을 직장일로 보낸다. 투자전문가 같은 특정 직종 종사자들은 일주일에 100시간씩도 일을 한다. 사회는 더 잘 살게 되었는데 일은 점점 더 많이 해야 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인생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지면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오순도순 어울리는, 사람 사는 가장 기본적인 재미를 잃어 가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 회의가 드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에 대한 답은 일에 대한 자세와 상관이 있다.
‘일과 인생’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은 ‘개미와 베짱이’우화이다. 이 우화는 보통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하라”는 교훈으로 이해하지만 이솝의 본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한다. 지금 열심히 일해서 미래를 보장 받을 것인가 아니면 지금 인생을 즐긴 후 나중에 그 대가를 치를 것인가 각자가 선택하라는 의미가 더 크다고 한다.
사실 이솝은 개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개미의 근면 절약을 나만 잘 살겠다는 욕심, 남과 나누지 않는 인색함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솝에 의하면 개미는 원래 농부였다. 시기심 많은 농부가 이웃의 수확을 시샘해서 농작물을 훔치곤 하자 제우스 신이 화가 나서 그를 개미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솝은 개미 보다 꿀벌을 좋아했다. 그의 다른 우화 ‘개미와 꿀벌’에서 개미와 꿀벌은 서로 누가 더 부지런하고 현명한지 논쟁을 하다가 아폴로 신에게 판정을 부탁한다. 아폴로는 꿀벌의 손을 들어주었다. 열심히 일한다는 점에서는 둘 다 같지만 개미는 저 한몸 먹는 데서 그치는 반면 꿀벌은 세상과 나눌 멋진 것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란다.
이솝의 우화는 직장을 무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 어느 직장이나 베짱이처럼 놀기만 좋아하는 직원이 있는 가하면 개미처럼 묵묵히 일하는 직원이 있다. 맡은 일 잘 하는 직원이 환영받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자기 몫의 일하고, 자기 몫의 보수·승진 챙기는 데서 끝이라면 아쉽다. 남과 나눌 꿀도 같이 만들어내는 꿀벌 형 직원이라면 금상첨화이다. 꿀은 관심, 배려, 동료애가 될까.
집보다는 직장이 삶의 주 무대인 시대이다. 가족보다 직장 동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현실이다. 가족들이 모르는 애환을 옆에 있는 동료들은 잘 아는 경우도 많이 있다. 직장은 이익추구 집단인 만큼 구성원 간의 관계에 제약이 있다. 하지만 매일 얼굴 마주 대하는 직장 동료들과 좀 더 마음을 연다면 직장생활은 그만큼 할 맛이 날 것이다. 일을 지향하는 이 시대에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같이 사는 사람들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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