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펠링비 경연대회서나 출제될 법한 ‘Schadenfreude’는 독일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영어단어다. ‘damage’를 뜻하는 ‘Scha- den’과 기쁨을 의미하는 ‘freude’가 합쳐진 단어인데 번역을 하자면 ‘남의 불행이 기쁨이 된다’는 뜻 정도가 된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니 무슨 비뚤어진 심보냐고 할지 모르지만 인간의 마음속에는 어느 정도 이런 심리가 자리잡고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자. 특히 강자의 비척거림은 왠지 모를 고소함과 통쾌함을 안겨 준다.
심리학자들은 스포츠 팬들이 ‘Schadenfreude’에 의해 많이 지배된다고 말한다. 이런 심리는 보통 언더독, 즉 약자에 대한 응원으로 표출된다. 세계 최강 브라질 축구가 약체팀에 무너졌을 때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의외의 결과에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또 몇 년전 프로농구 스타들로 구성된 무적의 미국 드림팀이 유럽과 남미팀에 연패했을 때도 미국 농구팬들은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고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반응은 왜곡된 의식의 표출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다. 일방적일 것 같던 선거가 박빙의 승부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현실세계에서는 강자가 쓰러지는 경우를 별로 찾아볼 수 없다. 강한 사람이 예외없이 이기고 많이 차지한다. 불공평하다고 느끼지만 세상은 대개 그렇게 흘러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실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약자 승리의 스토리를 가진 드라마나 영화에서 대리만족을 찾는다. 작위적인 구도인 줄 알면서도 현실에서의 좌절을 배출시키는 통로로서 이런 것에 빠져드는 것이다. 성경의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불멸성을 지니고 있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만약 골리앗이 다윗을 눕힌 이야기였다면 단 한줄로 기록된 채 잊혀지고 말았을지 모른다.
드라마의 재미가 ‘반전’에 있다면 스포츠의 묘미는 ‘이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각본이 없기 때문에 드라마보다 더욱 ‘드러매틱’하다. 스포츠 팬들이 특별한 연고가 없는 한 보통 언더독을 응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드라마에 대한 기대심리라고 할 수 있다.
‘3월의 광란’이 돌아왔다. 연중 최고의 아마추어 스포츠 제전이랄 수 있는 대학농구 토너먼트(NCAA tournament)가 이번주 목요일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64개팀이 정상에 이르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3주간의 장정에 들어간다. 프로스포츠는 팬들에게 최고의 기량을 선사하지만 순수한 열정과 열기에 있어서는 대학농구를 따라갈 수 없다.
내가 NCAA 토너먼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참가팀 선정 방식이다. 기계적 형평의 논리라면 미국의 수많은 대학들 가운데 1위부터 64위까지의 팀들이 참가해 경쟁하는 것이 옳겠지만 간혹 20위권의 팀들이 밀려나고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작은 대학들에 참가권이 주어진다.
정규시즌 동안 언론 보도와 중계에서 소외돼 있던 군소 컨퍼런스 팀들에게도 대학농구 최대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기회의 균등이라는 점에서 ‘어퍼머티브 액션’의 정신이 반영된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미국적인 합리성을 엿보게 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토너먼트의 백미는 이변속출에 있다. 토너먼트는 한번 지면 짐을 싸야 하는 경기 방식이다. 아무리 강팀이라도 자칫 실수하면 그만이다. 더구나 마음 여린 대학선수들은 큰 무대에서 많이 긴장한다. 그래서 언더독이 오버독을 무너뜨리는 이변이 이어지는 게 NCAA 토너먼트이다. 지난 1985년 토너먼트 결승에서 펜실베니아의 작은 대학 빌라노바가 패트릭 유잉이 버티고 있는 거함 조지타운을 침몰시키고 정상에 올랐을 때 농구팬들은 경악했다. 또 지난해에는 조지메이슨이란 군소대학이 랭킹1위 코네티컷 등을 연파하며 4강까지 올라 ‘신데델라 팀’이 됐다.
미국인들이 직장에서 내기를 가장 많이 하는 스포츠 이벤트가 ‘3월의 광란’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해박한 농구전문가보다는 오히려 문외한들이 돈을 따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한국일보 편집국에서도 스포츠 기자들은 보통 돈을 잃는다. 토너먼트 전체 경기의 승패를 맞추는 사람에게 수백만달러를 주는 이벤트들이 시행되고 있지만 수십년간 단 한명의 당첨자도 없었다. 그만큼 실력 외에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것이 이 토너먼트이다.
올해는 과연 어느 팀이 신데렐라가 될까. 어설픈 농구지식을 앞세워 어차피 틀릴 확률 높은 전망을 운운하고 싶지는 않고 단 한가지, 올해는 절대강자가 없어 어느 해보다도 언더독들의 반란이 더 많이 속출할 것 같다고는 말할 수 있다. 뻔한 승부 같은데 뻔하지 않은 결과. 이 얼마나 짜릿한가. 그 맛을 심심치 않게 느끼게 해 주는데 바로 스포츠의 묘미가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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