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매는 부모사랑 확인도구
홧김에 휘두르는 회초리는 금물
언니 오빠들이 하나 둘씩 집을 나가고 나니까 너무나 심심하다고 혼자 남은 막내가 데리고 들어온 새끼 고양이를 한 식구로 키우기 시작한 것도 이미 아홉달째가 되어서 이제는 아주 떼어 놓을래야 떼어 놓을 수 없는 귀한 한 식구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재미 난 것은 아내도 그렇고 딸도 그렇고 집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그 고양이일 정도로 귀여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막상 키워보니 강아지보다 깔끔하고 부담도 적어서 이 고양이 덕에 정말 많이 웃고 또 그 재롱과 재주에 감탄하기도 하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막내마저 나가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미결로 남아 있지만, 그러나 새 식구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처음부터 그렇게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아무리 깔끔하다고 해도 집안에서 함께 키우기로 한 이상 먹는 것, 목욕시키는 것, 잠자리 등등의 배려도 따로 있어야 했고 또 긁고 물고 할퀴는 고양이 습성 때문에 몸 여기 저기에 할퀸 자국을 달고 다니며 오해도 받았고, 또 아무 곳이고 훌쩍 훌쩍 뛰어 올라가기를 좋아하는 습성 때문에 깜짝 깜짝 놀라기도 많이 했다. 고양이 음식은 따로 주었는데도 우리가 식사하는 식탁 위로 갑자기 사뿐 뛰어올라 와서 놀라게 하지를 않나, 또 도무지 보이지가 않아서 이리 저리 찾다가 보면 벽장 속 높은 곳의 수건 사이에 들어가서 자고 있지를 않나, 그리고 또 우리가 자다가 이상한 시선을 느끼며 올려 보면 한길이 넘는 문짝 위에서 우리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지를 않나, 원만한 공동생활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서로 훈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었다. 화장실의 화장지를 바닥에 하나가 되게 신나게 풀어 놓기도 하고, 멀쩡한 다림대를 갈기갈기 찢어 놓기도 하고, 부엌이고 어디고 가구를 다 긁어 대며 저지레를 많이 저질러 댔는데, 처음에는 다림질할 때 쓰는 물분수기로 다스렸고 점점 호기심이 늘어나고 또 체격도 커가면서는 결국 파리채를 사서 여기 저기 놓아두었다가 저지레를 할 때마다 그 자리에서 따끔하게 “맴매”를 해줌으로 다스릴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큰 무리 없이 평화 속에서 공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가구도 제일 후진 책상 다리 하나만 긁을 줄 알게 되었고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서 거의 파리채를 쓰지 않지만 그런 어느 하루 아주 재미난 행동을 보았다. 그것은 요것이 내가 보는 앞에서 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알만도 할 일을 일부러 하다고 밖에 생각이 안 되게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내 앞에서 저지른 것이다. 즉 부엌 카운터 위에서 컵을 밑으로 ‘툭’ 밀쳐 내린 것이다.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기다리기라도 하는 자세로! 처음엔 요놈을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그래도 저지를 텐데 하고 급히 파리채를 찾아 들고 나섰더니 바닥에 짝 엎드려서 고개를 싹 숙이고 “네, 때려 주세요!”하는 듯 다소곳이 앉아 있는 것이였다.
아직도 그때 왜 그랬는지 알 길이 없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그런 비슷한 일들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우리는 “매는 다 맞는 것이여 늘 맞지 않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2:8)라고 하는 말을 절대로 믿었기 때문에 애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회초리를 항상 상비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가차 없이 사용하고는 했었다. 단지 홧김에 휘둘러 댄 것은 아니고 사랑으로, 그리고 절제로, 그리고 분명한 죄목을 정해주고 우리 자신을 때리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회초리를 들었더니 아이들도 이것을 믿게 되더라는 것이다. 매를 맞음으로 인해서 그 어린 아이가 서러움보다도 “아, 나는 사생아가 아니고 정말 친아들이구나!”라고 믿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의 증거를 볼 수 있었다는 말이다. 분명히 잘못한 것을 가만 두어 보라! 그는 느낄 것이다. “요즘 나는 사랑을 받고 있지 않다고!”
아이들은 아이들마다 성격이 달라서 회초리에 대한 반응도 달랐는데 셋째 아들은 회초리를 놓자마자 금방 히히거리며 다시 장난에 빠지는 형이였나 하면 둘째는 아주 민감한 아이였기에 큰소리만 한번 들어도 금방 이기가 소침해져서 그 영향이 며칠이 갈 때도 있었다. 하루는 그 둘이 크게 싸움을 해서 둘 다 뒷방으로 불러놓고 잘못된 것을 알아들을 만치 설명을 해준 다음 벌로 회초리 찜질을 한번씩 해준 적이 있었다. 물론 동생은 회초리를 놓자마자 방을 빠져 나가서 다시 신나게 놀았지만 형은 워낙 민감해서 꼼짝을 않고 한참을 구슬프게 울기를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답답하기도 해서 달래느라 “그것 한대 맞고 무엇을 그렇게 구성지게 우냐”고 물었더니 그 형이 하는 말이 전혀 예상 밖이었다. 아직도 “흑흑”대며 하는 말이, “아빠는 우리를 이렇게 사랑해주는데 또 잘못한 것이 너무나 서러워서” 운다는 것이었다.” 매도 드는 방법에 따라서 매끝에 오히려 사랑을 느끼는 동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매끝에 정든다는 속담도 있지만 잘못된 것을 간절함으로 매를 들 때는 오히려 부모의 사랑을 확인하는 도구가 되는 것의 증거는 감옥에 잡혀오는 범죄자들 중 가장 흔한 유형이 우선 부모의 사랑을 전혀 못 받고 지낸 사람들이 많지만 너무나 규범이 없이 절제 없는 집에서 해달라는 것 다 해주고 매 한번 따끔하게 맞아보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도 꽤 많이 있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러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잠언 29:17)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보면 대개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부모를 숭배할 정도로 말을 잘 듣지만 그 때를 전후로 조금씩 자아가 뚜렷해지고 따라서 까딱 잘못하면 이때부터 곁길을 가기 시작하는 것을 보는데, 이때도 늦지 않았지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아이들이 아직 어릴 때에, 아직 귀엽게 재롱을 부리는 나이에 재롱이라고 다 규범 없이 받아 주는 것이 아니고 나이에 맞는 규범을 정하고 그것을 벗어날 때는 때로는 사랑의 매로도 다스릴 때에 그 아이들은 정말로 우리를 평안하게 하고 또 우리 마음에 기쁨도 주게 되는 아이로 성장해 주는 것이다.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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