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간직할 수는 없는 것. 무료이지만 값을 매길 수 없이 귀한 것. 한번 흘려보내면 다시 찾을 수 없는 것.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에서 잠자는 시간과 생계를 위해 바치는 시간을 제하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라이프스타일이 정해지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공기놀이라는 것을 많이 했다. 비슷비슷한 크기의 조그만 돌알들을 공기라 부르고 그것들을 흙바닥 위에 늘어놓고 따먹는 놀이였다.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순서를 정하고 위로 던진 공기가 내려않기 전에 재빨리 바닥에 있는 공기를 손바닥으로 집거나 긁어 모우면서 내려오는 공기를 받아함께 모아 쥐어야 한다.
이때 집어 오는 공기 외에 다른 공기를 건들이거나 던져 올린 공기를 때맞추어 받지 못하면 실격, 다음 사람의 차례로 넘어 간다. 바닥에 앉은 공기가 다 없어지면 각자 앞에 놓인 공기를 세어서 누가 이겼나를 정했다. 진 사람은 순서대로 손등을 포개 얹고 이긴 사람이 포개진 손등을 내려치는 영광을 행사했다. 우리들의 손톱 밑은 흙으로 가득 차 있었고 어두워서 공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놀았다. 너무도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보다 더 어릴 때 시골 외가에서 지내던 때는 길옆이나 논두렁에서 잘 자란 풀을 뽑아서 각시를 만들기도 했다. 손바닥보다 약간 긴 나무 꼬챙이 끝에 숨을 절인 풀을 매달고 거꾸로 뒤집은 후에 가르마를 타고 눈, 코, 입을 그리면 각시가 되었다. 동네 가시내들은 각시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림 놀이를 하고 각시 시집보내는 놀이도 하면서 놀았다. 아이들의 장난감이 귀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단 한 번도 부족감을 느껴 본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함께 가난하던 시절에는 다 함께 행복하지 않았나 싶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여 무엇인가 모자라고 후지다는 비교 의식은 괜찮은 장난감을 갖고 놀기 시작한 이후에 생긴 버릇인 것 같다. 더 예쁘고 더 큰 인형을 갖고 싶었고 새로운 노리개를 갖게 되면 다음날 뽐내고 싶은 마음에 잠을 설치기도 하던 유년 시절의 기억. 참으로 유치하고 천진하던 그 시절에는 시간을 그렇게 보내기도 했다.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린 지금 뒤돌아보면 시간 보내기의 역사도 나이테와 함께 변천해 왔다. 틴 에이지 시절은 해서는 안 되는 일로 인생이 가득 찬 시기였다. 옷도 교복 이외는 입어서는 아니 되고, 영화관에 가면 정학 맞고 남학생 만나면 퇴학당하고 머리길이도 맘대로 못했다. 어설프게 번역된 서양 소설과 국정 교과서와 친구들에게만 매달리던 괴롭던, 그러나 그리운 그 시절에 보낸 시간들.
대학생활은 절반은 생산적이었고 절반은 낭비였다. 음악실과 다방의 담배 연기 속에서 끝없이 품을 잡고 앉아 시간을 보냈다.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은 조조할인 영화관에 모두 바쳤다. 정말 심각하게 공부하고 시간 경영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유학생활 덕택이었다. 불면제를 먹어 가면서 지독히 공부도 했고 수영도 배웠고 스키도 배웠다. 버클리 캠퍼스 뒷 편에 있는 코트에서 후에 남편이 된 남자와 테니스도 쳤다.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데이트도 했고 축구의 룰도 배웠다.
결혼과 가족생활을 통해 시간 보내기가 더욱 다채로워졌다. 아이들과 함께 배운 것도 있고, 아이들 때문에 배운 것도 많다. 남편 때문에 배운 것도 글쎄, 더러 있다. 테니스와 근년에 시작한 골프라고나 할까? 주말마다 영화를 보고 외식을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샤핑 몰을 배회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간 보내기는 재미롭지가 않다. 아이들도 이제 우리와 함께 시간 보내기를 하지 않는다. 이제는 기쁘게 매일을 사는 것만이 내 손 안에 시간을 오래 잡아 두는 비법이 아닐까 싶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이 세상에는 우리를 기쁘게 하는 일이 참으로 많다. 남을 기쁘게 하는 일도 우리를 기쁘게 한다. 그런 일들을 찾아보면서 시간 보내기를 하는 사치를 누리고 싶다.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재고 정리 조정해 볼 때가 온 것 같다.
송정원 베벌리힐스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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