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사회보는’치과의사
난감했다. 오늘의 주제로 삼으려던 ‘대합구이’집을 찾을 수가 없다. ‘사회 보는 치과의사’ 김학천 치과의가 던져준 숙제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고기 구이집, 일식집은 많은데 한인타운에 해물 전문집은 없다니 말이 되는가. 이곳저곳 전화해도 소용이 없었다. “싱싱한 것 아니면 먹지 말라”며 경고부터 한다. 오늘의 초대 손님은 ‘사회 보는 치과의사’로 잘 알려진 김학천 치과의다. 서울대 치대 동문회에 참석했다가 즉석에서 사회를 본 것이 인연이 돼 연말이면 4~5곳의 동창회, 봉사단체 송년파티에 초대돼 특유의 입담과 분위기로 좌중을 흔든다. 온타리오의 ‘아치 발드’ 덴탈 오피스와 최근 LA 한인타운 인근에 문을 연 ‘미라클 마일 덴탈 센터-김학천 종합치과’를 바쁘게 오고가는 그를 한인타운 내 한 구이집으로 어렵게 초대했다. 그는 로라 전 전 건강정보센터 소장의 남편이기도 하다.
<‘사회 보는 치과의사’ 김학천 치과의가 ‘대합구이’ 대체용으로 찾은 해산물 ‘주꾸미’가 김치, 버섯과 어우러져 지글대며 끓고 있다>
오동통 쫄깃… 짭짤한 육즙에 바다가‘와락’
알이 잔뜩 밴 봄이 제철 쌀쌀한 날 지글지글 구워
소주 한 잔 들이키면 몸도 마음도 피로가 싹~
갖은 양념 다져넣은 보글보글 대합구이도 일품
오동 통통 살이 오른 주꾸미. ‘대합구이’의 대안으로 찾은 요리다.
뜨거운 불에 살짝 구워 한입 입에 물면 짠 냄새 잔득 배인 육즙이 흘러나와 금방이라도 바다가 튀어나올 것 같다. 주꾸미는 봄이 제철인데. 겨우내 찬물에서 내공을 쌓은 주꾸미가 봄이 되면 머리에 알을 잔뜩 이고 배고…… 알배기 주꾸미가 싱싱하게 올라오는 요즘이 한국서는 ‘주꾸미 장날’이다. 소라통 미끼 속에 줄줄이 걸려드는 주꾸미를 굽고, 지지고 3월이면 서해안 곳곳에서 주꾸미 축제가 요란하다.
#주꾸미
김학천 치과의와 찾은 곳은 LA 한인타운 버몬트와 8가의 한 샤핑몰 내 고기 구이집 ‘북새통’(755 S. Vermont Ave). 것 보기엔 허름해도 안에서는 훈훈하게 인정 넘치는 한국의 선술집 분위기가 털털한 곳 좋아하는 주당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이 집을 찾은 이유는 주꾸미 구이가 별미로 올라오기 때문. 주꾸미 한 점에 소주 한 잔이면 하루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진다.
‘더 달라면 안 주고는 못 배기는’ 후덕한 여주인 ‘선화’씨가 주꾸미 듬뿍 담긴 쟁반과 소주병을 들고 나온다. 주꾸미는 추운 겨울날, 숯불에 지글지글 구워 먹는 맛이 일품중의 일품이지만 여기서야 어디 숯불구이 찾기가 쉬운가.
쫄깃쫄깃 통통하게 살이 오른 주꾸미를 뜨겁게 달아오른 불판에 깔아놓는다. 불 맛을 본 주꾸미가 마치 살아난 것처럼 꿈틀대며 말려든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짠물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속살이 하얗게 변해가는 주꾸미 한 토막을 젓가락으로 집어 초고추장 듬뿍 발라 한 입에 넣어 씹는다. 쫄깃한 맛, 흘러나오는 짭짤한 육즙이 입안을 개운하게 청소해 준다. 원샷으로 넘긴 소주와 어울리며……
주꾸미 맛에 빠져 두 번째 소주병이 올라올 무렵, 김학천 치과의의 ‘사회자’ 스토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다음은 그가 밝힌 회고담.
어려서부터 연예계 진출이 꿈이었다. 수려한 외모에 재치 있는 말재주 입담이 어우러져 연예인이 딱 체질에 맞을 것 같았다는 것. 그러나 세상사가 형통할 수만 있겠나. 7남매의 6번째인 그의 톡톡 튀는 발상에 미국 사는 큰 형님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산부인과 의사인 큰 형님이 “연예인 되겠다니, 학비 보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엄포를 놓았던 것. 결국 끼를 버리고 의술을 택했다. 하지만 끼라는 게 그렇게 잠재운다고 자는 건가. 잘 나가는 한국 치과병원 접어두고 미국으로 건너와 시험 준비하던 90년대 중반. 우연히 치대 동문회에 나갔다가 즉석 사회에서 발휘한 그만의 끼가 입소문이 퍼지면서 ‘사회 보는 치과의사’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또 있다. 그는 춤에도 일가견이 있다. 의사라는 신분을 모르던 주변에서는 한때 그를 직업 ‘제비’로 오인까지 할 정도로 춤발이 세다.
<주꾸미는 소라를 먹고 산다. 주꾸미를 잡을 때는 빈 소라통을 이용한다>
#대합구이
당초 그가 찾던 술안주 ‘대합구이’로 돌아가자.
커다란 대합을 불에 올려놓고 가위로 속살을 성둥성둥 자르고 파, 마늘, 깨 등 온갖 양념 다져넣어 보글보글 끓여 먹는 맛이 일품이다. 생물 좋은 한국서는 포장마차에서도 먹을 만큼 쉽게 맛보겠지만 이곳 사정으로는 어려운 일. 해산물로 바꾸어 주꾸미를 안주상에 올려놓고도 ‘대합구이’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한국서 치과병원 할 때는 가끔 요정에 들러 불에 올려 지글대는 대합구이 안주를 즐겼습니다.” 친구들과 대합 안주 찾아 기울이는 술잔 속에 하루의 스트레스가 확 풀리곤 했단다. 이 정도면 술 실력이 보통은 넘을 것 아닌가. 얼마나 마시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국서는 꽤 했지만 술좌석 쉽지 않는 미국서야 반주 정도 수준”이라며 “한국서는 다음날 술 냄새 풍겨도 환자들이 인정으로 넘기지만 이곳서는 어림없는 일”이라고 손을 내젓는다.
소주병이 3병째 비어지던 무렵, 북새통 여주인 ‘선화’씨가 슬그머니 대화에 끼어든다. “여기서 대합구이 잘못 먹으면 큰일 난다”는 그는 “하루 전에 전화 주면 새벽시장서 싱싱한 대합 사다가 구이요리 만들어주겠다”며 단단히 약속했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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