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얀거탑’이라는 MBC-TV 드라마가 인기이다. 야마자키 도요코라는 일본 작가가 1968년에 쓴 소설 ‘백색거탑’을 원작으로 일본의 후지TV가 드라마를 제작해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이번에 한국에서 다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거탑’의 주인공은 장준혁이라는 천재적 외과의사이다. 수술실에 들어서면 열 손가락이 본능적 전율을 느끼는 타고난 외과의사이자 야망으로 눈에서 불꽃이 튀는 야심가이다. 드라마에서 우리는 한손에는 메스, 다른 한손에는 출세를 위한 야심의 칼을 부여잡은 그의 현란한 ‘칼 솜씨’를 보는 셈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 냉철한 판단, 비굴한 아부, 냉혹한 배신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먹잇감을 쫓는 표범 같은 집중력으로 전력투구하는 인물이다.
드라마는 그 반대편에 최도영이라는 소명의식 투철한 내과의사를 세워 의사세계의 균형을 잡고 있다. 권력 싸움이나 출세에는 하등 관심이 없고 오로지 의학과 환자에만 정열을 쏟는 ‘진짜’ 의사이다.
‘거탑’이 인기를 끄는 첫째 이유는 드라마로서의 재미이다. 긴박감 넘치는 탄탄한 구성, 설득력 있는 캐릭터, 배우들의 열연 등으로 시청자들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 ‘거탑’의 또 다른 인기비결은 “어, 저거 우리 회사 이야기 아니야?”싶은 사실성이다.
무대만 다를 뿐 조직마다 그럴 듯한 겉모습 뒤에서 벌어지는 권력 암투 양상이나 구성원들의 유형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견제와 회유, 꼼수를 총동원하는 권모술수 형, 힘의 생리를 노회하게 요리하며 실리를 챙기는 능구렁이 형, 권력의 부스러기라도 얻으려고 이쪽저쪽 눈치 보며 양다리 걸치는 박쥐 형, ‘힘 있다’싶은 대상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납작 엎드리는 아부 형, 불이익을 당할망정 정도를 고집하는 원칙주의 형 등 드라마 속 인물들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실감나는 캐릭터들이다. 그래서 회사들마다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드라마의 저 인물은 우리 회사의 누구 …”식으로 짝 맞추기를 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모든 조직은 정점을 향한 사다리 구조이다. 그 사다리에서 서로 먼저 오르려고 아웅다웅하는 것이 권력싸움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높은 곳으로 오르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한다. ‘산이 거기 있어서’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올라갈 것이 있기 때문에 산에 오른다는 말이다. 조직의 사다리는 한층한층 올라갈 때마다 그 하위구조를 명령할 힘을 얻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꼭대기로 올라가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이 바로 출세이다.
출세는 어떻게 하면 할수 있을까. 얼마전 한국의 온라인 취업 전문 사이트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리더십, 일에 대한 열정, 업무능력, 도전정신·추진력 등이 출세에 필요한 자질로 꼽혔다. 자질들에 준해서 순서대로 출세가 결정된다면 세상은 이렇게 어수선하지 않을 것이다.
‘하얀거탑’이 보여주는 것은 현실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훌륭한 의사로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인물은 뒤로 처지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자리를 쟁취하려 드는 인물이 대개 출세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쓴 스티븐 코비는 세상을 보는 기본적 시각을 ‘풍요의 심리’와 ‘부족의 심리’로 나누었다. ‘풍요의 심리’란 평화로운 시각이다. 세상은 풍요로워서 모두가 충분히 나눠 가질 만하다고 생각한다. 맡은 일에 충실할 뿐 남을 밀쳐낼 일도, 먼저 앞서 갈일도 없다. 세상은 상생의 공동체이다.
‘부족의 심리’는 세상의 제한된 자원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는 시각이다. 남을 밟아야 내가 올라설 수가 있다. 그래서 권력의 중심부에 줄을 대고 기만과 술수를 동원해서라도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이다. 세상은 피곤한 경쟁의 장이다.
애석하게도 출세는 대개 후자의 몫이 되고 있다. 말없이 일만 해서는 권력쟁취를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사람들을 당하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세상은 공평한 부분도 있다. 올라가면 언젠가는 떨어지며,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지는 아픔은 더 크다는 사실이다. 권모술수로 남을 밀치고 올라서면 똑같은 방식으로 내가 밀려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출세는 못하더라도 자족하며 평화롭게 사는 우리 보통사람들의 삶도 나쁘지는 않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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